2006 송년특집
흔들리는 대한민국 밤
무너지는 10대


“설사 단속에 걸리는 한이 있더라도 놀 땐 화끈하게 놀겠다.”
연말연시를 맞아 일탈을 일삼는 10대 청소년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들 중에는 최근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 또한 빠지지 않는다. 수능이 끝난데 이어 수능성적발표까지 마친 이후 일부 수험생들의 탈선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때문에 ‘흥청망청대는 음주문화는 이제 옛말’이라는 그간의 추세를 뒤로 하고, 최근 연말연시를 맞은 유흥가는 또다시 흥청대고 있는 분위기다. 경찰청에 따르면, 청소년들의 밤문화는 성인들의 퇴폐적인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술·담배는 기본이고, 신분증을 위조해 나이트서 부킹(즉석 만남)을 하는가 하면, 이른바 ‘2차’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룸살롱이나 노래방 등에서 접대부 혹은 도우미 아가씨로 일하는 이른바 ‘퇴폐알바’는 물론, 인터넷 채팅을 통해 낯선 성인 남성과 일일 ‘원조데이트’를 하며 유흥비를 마련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일요서울>은 ‘막나가는’ 청소년들의 유흥문화, 그 현주소를 집중 취재했다.


최근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의 탈선을 막기 위해 경찰이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단속 때문에 유흥업소에 수험생을 비롯한 청소년들이 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이미 청소년들 사이에선 “인터넷에서 손쉽게 신분증을 위조할 수 있다”면서 “성인신분증 하나만 갖고 있으면 유흥업소, 룸살롱 등 출입이 자유로운 것은 물론, 일명 ‘나가요 걸’, 노래방 도우미 등 고소득 아르바이트도 문제없다”라는 얘기가 떠돌면서 성인신분증 위조 행위가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는 형편이다.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이들은 화공약품으로 자신의 주민증 번호를 지운 뒤 숫자 스티커를 덧붙여 출생연도를 조작한 주민증을 만들어 유흥업소에 출입한다는 것. 게다가 주민증의 홀로그램 위조까지 감쪽같아 웬만한 업주들의 눈을 속이는 데는 무리가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모르긴 몰라도 요즘 대부분의 유흥업소에 청소년들이 없는 곳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며 “신분증을 위조하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신분증을 빌려와 운 좋게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더욱이 최근 수능성적표를 받은 수험생들이 스트레스를 풀고 해방감을 맛보기 위해 ‘뒤풀이’를 제대로 하는 것 같다”며 “나이트 등 유흥업소서 음주가무는 물론 밤늦은 시간에 길거리서 고성방가도 서슴지 않는 실정”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나이트서 부킹… 2차로 이어지기도
“이 같은 풍경은 강남 일대 유흥가만 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는 경찰의 말에 따라 기자는 강남역 근처에 물 좋기로 소문난 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이곳에서 기자는 최근 수능을 마쳤다는 수험생 A(18)양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이곳 일대 나이트가 물 좋기로 소문나면서 청소년은 물론, 유학생, 부유층 자제 등 소위 잘 논다는 사람들은 거의 이곳을 찾는 실정”이라며 “더욱이 연말인 요즘, 평소 나이트를 즐기는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송년회도 아예 나이트에서 치르자’는 제의가 오가고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타인에게 빌리거나 혹은 위조한 신분증으로 유흥업소 등을 맘껏 출입, 술도 마시고 춤도 추며 부킹까지 즐기면 ‘일석삼조’라는 것이다.
이어 A양은 “지금까지 나이트에서 부킹만 수십 번 해왔다”며 요즘 청소년들의 부킹 문화에 대해 설명했다. A양에 따르면, 담당 웨이터가 여성들의 취향을 파악한 뒤 즉석 만남을 주선, 알아서 짝짓기를 해준다고. 그는 “룸에서는 노래와 게임 등을 하기도 하는데 부킹하는 남성이 마음에 들 경우 키스와 스킨십 정도는 기본”이라고 전했다. 또 “룸 내부에서 관계를 맺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치다가 “호텔로 ‘2차’를 간 적은 몇 번 있다”고 고백했다.
이 업소에서 일한지 8개월이 조금 넘었다는 한 웨이터는 “부킹이 원나잇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사실 그리 흔한 경우는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술을 마신 후 만취해 이리저리 불나방처럼 돌아다니는 이른바 ‘골뱅이’ 여성들은 룸 내에서 문란하게 놀고, 바로 원나잇으로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골뱅이 중에는 앳돼 보이는 여성들이 많은데, 아무래도 이들이 익숙지 않은(?) 술을 마셔 몸을 못 가누는 청소년들이 아니겠느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퇴폐알바’도 서슴지 않아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 중 일부는 큰 돈을 벌기 위해 이른바 ‘퇴폐알바’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이 신분증을 위조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신분증 위조 바람’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평범한 알바(아르바이트)는 이제 성에 차지 않는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라고 한다. 즉, 룸살롱 접대부나 노래방 도우미 등 퇴폐적인 알바를 통해 쉽게 돈을 벌려고 한다는 것이다.
신촌에 위치한 한 룸살롱에서 5개월째 일하고 있는 B(17)양은 “빨리 돈을 벌어 이달 말에 친구들과 여행을 갈 것”이라며 “고3이 되기 전에 제대로 놀아볼 요량으로 돈을 벌고 있다”고 전했다.
B양은 친구 2명과 ‘명품 품앗이’를 하고 있기도 하다. ‘명품 품앗이’란 서로 다른 물건(명품)을 사서 바꿔 쓰는 것을 말한다. B양은 “룸살롱서 일하면 외모도 외모지만 스타일이 중요하다”며 “또 앳돼 보이지 않기 위해 겉모습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업소에 나올 때마다 친구들과 명품을 서로 돌려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친구 셋이 모이면 일석삼조”라며 “5명이 한 조로 한 달에 10만원씩 모아 ‘명품계’를 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돈은 적게 벌더라도 더러운 꼴은 사양’이라는 청소년들은 노래방 도우미로 일한다고 한다. 수입이 룸살롱보다 상대적으로 적지만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어 이곳에서 일한다는 C(18)양은 수능 이후부터 이 일을 시작했다. 그는 “노래방에는 그나마 진상손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강제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돼서 좋다”면서 “게다가 노래 부르고 춤추면서 신나게 놀고 돈까지 버니, 이거야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격”이라며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밤일을 하는 것을 부모님이 알고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들은 각각 ‘24시 편의점’과 ‘동대문 옷가게’에서 새벽에 일한다고 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청소년들이 알바 목적이 아닌 단순히 놀기 위해 찾는 곳은 다름 아닌 PC방이다.

채팅 ‘원조만남’ 인기
인터넷 채팅을 통해 연말에 ‘펑펑’ 쓸 유흥비를 마련하거나 혹은 공짜로 놀아보려는 속셈이다. 실제로 몇몇 채팅사이트에는 ‘연말을 함께 보내자’는 10대들의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이들은 ‘함께 놀아줄 테니 술값 등 모든 유흥비용은 남자가 부담하라’는 식으로 일일 ‘원조데이트’를 제안하고 있다. 채팅을 통해 ‘원조데이트’를 하려는 10대들은 대개 2∼4명이 한 팀을 이뤄 적당한 상대를 물색한다. 10대들의 이 같은 ‘제안’에 솔깃해 러브콜을 보내는 남성들은 부지기수. 그중에는 이들의 삼촌이나 아버지뻘인 20대 후반∼30대 중후반 남성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든든한 후원만 받을 수 있다면 10대들도 나이에 상관없이 ‘OK’ 사인을 내게 마련. 최근 채팅 사이트에선 연말연시를 맞아 이런 방식으로 ‘번개’ 만남을 가져 데이트를 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10대와 하룻밤을 즐기기 위해 혈안이 된 ‘엉큼한 어른들’이 그 만큼 많다는 얘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른바 ‘연말연시 밤문화’가 이뤄진다고 한다.
한편, 경찰과 도교육청은 청소년들의 음주와 흡연, 고성방가, 성매매 등에 대한 단속을 강화키로 하고, 교육청과 청소년보호단체 등과 함께 지속적인 캠페인도 전개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 청소년들의 인기 놀이문화는?

미니홈피와 블로그 사랑 ‘톡톡’

수능을 마친 수험생들의 놀이문화가 최근 관심사다.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비디오방, 만화방, 당구장, 숙박업 등의 유해업소에서의 청소년 출입이 불가능한 가운데 이들의 주 무대는 과연 어디일까.
업계에 따르면, 이른바 청소년들의 ‘스리방’으로 알려지고 있는 피씨방, 노래방, 찜질방은 요즘 같이 ‘큰 일(수능)’을 치르고 난 뒤면 더욱 문전성시를 이룬다고 한다.
놀이공원과 패밀리레스토랑 등은 물론 문화공연(영화, 연극, 콘서트 등)도 이들이 즐기는 문화 중 하나다. 때문에 업계들은 일명 ‘선착순 모집’ 등의 광고로 수험생을 유인, 각각 놀이기구 무료이용, 무료 음식제공, 무료 영화 관람을 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돈도 벌고 좋아하는 연예인도 보겠다는 요량으로 방청 아르바이트 및 엑스트라 아르바이트도 청소년들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은 추세다.
인터넷 미니홈피 등을 통해 연애를 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의 놀이문화다. 최근 미니홈피와 블로그 열풍은 단순한 유행을 넘어 새로운 온라인 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싸이질(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사진이나 글 등을 올리는 것)’이라는 유행어가 생기고, ‘랜덤질(전혀 모르는 사람의 홈피를 무작위로 방문하는 것)’이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다.
이러한 열풍은 청소년들 사이에 연애 방식을 ‘확’ 바꿔 놓고 있다. ‘개인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면서도 ‘커플 매니저’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미니홈피와 블로그의 매력에 요즘 청소년들은 중독되어 있는 실정이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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