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7일 이중섭, 박수근 위작사건 관련 수사결과 발표.

“본건은 우리 미술계 역사상 최대의 위작 분쟁사건으로 불릴 만큼 각계의 관심이 지대한 점을 감안, 객관성과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철저한 조사와 압수수색 및 과학적인 감정이 시행되었던 바, 위작으로 의심된다는 취지의 감정결과가 회신되었다.”
이로부터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 검찰의 수사는 변한 게 없을 정도다. 물론, 위작범도 잡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감정 평가 과정에서 여러 허점이 노출됐다는 지적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이에 따라 김용수 고문서협회 회장과 ‘이중섭 50주기 준비위원회’는 2,740여점의 작품 반환을 요청한다는 방침이다. 또, 압수수색에서 빠진 이중섭 작품을 입수해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에게 의뢰할 예정이다. 검찰의 ‘위작 추정’ 발표로 이중섭, 박수근 작품의 신뢰성이 크게 하락한 가운데, 준비위가 예상 밖의 성과를 거둘 경우 파문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준비위 핵심 관계자들은 “또 다른 작품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법적 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탓이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중섭, 박수근 화백의 그림들이 위작논란에 휩싸여 방치된 지 1년 9개월이 지났지만, 검찰이 위작범을 잡아내지 못하면서 수사가 난관에 봉착했다.
반면, 김용수 고문서협회 명예회장과 ‘이중섭 50주기 준비위원회’는 검찰이 압수해간 2,740여점의 그림에서 제외된 작품을 입수하고 극비리에 외국 전문가들에게 진위여부를 타진하고 있어 그 결과에 따라 엄청난 파장이 예상된다.


진품 입증할 과학적 자료 준비
<일요서울>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중섭 작품 2~3점 정도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위측은 이에 앞서 “감정협회 등이 제시하고 있는 위작논리가 억지임을 밝히는 과학적인 자료들을 조만간 공개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검찰은 그동안 공정성이 확보된 제3의 기관에서 작품을 다시 검증하자는 김 회장측 주장을 사실상 거부해 왔다. 게다가 2005년 10월, ‘위작으로 추정된다’면서 중간 조사결과를 발표해 놓고 1년이 지나도록 위작범을 잡아내지 못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었다. 중간 수사결과 발표 이후 변한 것은 담당 검사뿐이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4월 담당검사였던 노상길 검사를 시작으로 김철, 유성열 검사를 거쳐 현재 김용정 검사가 위작 논란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준비위가 최근 조심스럽게 ‘반전카드’를 준비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검찰이 진위여부를 가릴 수 있을 만한 구체적인 조사활동을 벌이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은 객관적인 검증을 다시 실시하겠다는 의중을 피력하기도 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오히려 수천여점의 작품이 시장에 쏟아질 경우, 미술품 시장이 붕괴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을 상대로 싸움을 준비 중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조심스럽다’는 반응이다. 지난해 12월 28일 준비위 핵심 관계자는 “검찰이 모든 작품을 회수해 갔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인데, 김 회장이 소유했던 그림이 몇 점 더 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논란이 불거질 게 뻔하다”며서 우려감을 피력했다. 그는 특히, “이 작품은 김 회장이 위작논란이 불거지기 한 참 전에 지인들에게 선물을 했던 것으로 압수수색에서 제외될 수 있었다”며 “이러한 내용이 알려지게 되면, 검찰이나 감정협회에서 김용수 회장의 작품이 아니라는 반론을 펼 수 있기에 증거자료를 확보해둔 상태”라고 주장했다. 준비위측은 서울대에서 실시한 방사성 연대측정 방식이 잘못됐다면서 미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에게 평가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준비위 소속 한 교수는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는 사실이 아니다. 서울대에서 사용한 기법은 오차범위가 30년에 달하는 기기이며 그 결과는 법적 용도로 사용할 수 없다고 전제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는 연대측정의 기본 요소인 나무의 수명, 당시 환경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감정을 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또, “우리는 공증을 받을 준비가 다 돼 있다. 작품 중 일부라도 반환해서 감정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애원했다. 한서대 김태원 교수가 <일요서울>에 보낸 자료에 따르면 검찰은 그림을 즉시 반환하고 박성남씨 등이 제기한 소송도 기각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 교수는 “준비위 소속 위원들은 위작범이 아니라, 각 대학의 화학 전공교수, 언론 관계자, 미술품 소장자 등이다. 우리가 혐의가 없다면, 검찰은 체면을 생각하지 말고 사건을 마무리지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1년이 지나도록 개인 사유재산을 검찰이 압류하고 있는 것은 공권력이 개인의 재산권을 침범하는 사례라며 울분을 토했다. 준비위측은 나아가 14명의 안목 감정단 명단을 공개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안목 감정에 나선 인사들이 이중섭, 박수근 작품을 위작으로 몰고 가는 게 아니냐는 업계 일각의 시선을 반영한 결과다. 이제 관건은 검찰의 과학적 검증이 아닌, 준비위측이 추진 중인 국제기관의 검사 결과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 한 관계자는 “위작은 위작범이 잡혀야 하는 건데, 국내를 다 뒤져도 위작범이 나오지 않는다면 작품을 돌려주는 게 수순”이라며 “대선자금 등 대형 사건도 아닌데, 사안을 너무 오래 끌고 있다는 느낌”이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유례없이 장기간 이어진 수사
한편, 한국화랑협회와 한국미술품감정협회에서 따로 하던 근현대 미술품 감정 업무가 하나로 통합된다. 지난 1월 1일부터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라는 통합기구를 통해 감정 업무를 일원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중섭 작품의 위작시비가 불러온 또 다른 변화지만, 일각에선 기득권 세력의 입김을 더욱 공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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