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행정발전유공특진자
특혜 의혹

경찰의 승진인사 정책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28일 실시한 행정발전유공특진자(행발특진) 명단을 발표했다. 경찰청은 이날 전국 경찰청 국관에서 추천된 이들 가운데 총 8명을 선발해 행발특진을 단행했다. 하지만 확인결과 특진자들 가운데 5명이 서울 지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고 나머지 3명만 지방청 소속 경찰관이었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는 행발특진 대상자에 대한 심사가 편향적이라는 불만과 함께 그 기준 또한 명확하지 않아 부정이 개입될 소지가 높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행발특진을 통해 특정 인사들을 ‘특진’으로 밀어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행발특진이 청탁인사의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에 대해 경찰청의 입장은 단호하다. 객관화된 자료를 통해 엄정한 심사를 거쳐 특진 인사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이에 행발특진을 둘러싼 의혹은 과연 무엇인지 그 내용을 추적해 보았다.


경찰 특진에 대한 관련법에 따르면 특진대상자선정은 각 지방 경찰청 국관에서 추천 받은 이들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또 특진은 경감까지만 이뤄지며 경감특진은 전체 경찰인원의 5%이내, 경위특진은 15% 이내, 경사 특진은 20% 이내에서만 가능하다.


승진에 죽고사는 경찰
이처럼 극소수의 인원들만 특진의 영광을 누리다 보니 특진에 대한 경쟁은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하다. 일선 경찰들은 특진을 위해 잠 못 자고 범인 검거를 위해 뛰어다니고 위험천만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지난 7일 발생한 오락실 난투극 사건이다.

형사들이 오락실 단속을 나갔다가 야구방망이 등을 휘두르며 오락실 측 관계자와 난투극을 벌이다 양측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 사건이 발생하자 이택순 경찰청장은 “일부 경찰관들의 성인오락실 단속 의욕이 넘친 것이 사실”이라며 “진급심사를 앞두고 특진을 노린 일부 경찰관들이 공을 세우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 생긴 불상사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해 특진에 대한 과욕을 경계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특진제도에 대한 경찰의 인사정책은 허술하기만 하다.

특히 행정발전유공자 특진은 그 심사 기준이 명확지 않아 경찰 내부에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심사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먼저 각 지방 경찰청 국관에서 행발유공자를 선정, 이를 서울 본청으로 상신한다. 이를 접수한 본청에서는 행발특진 심사위원회를 열어 대상자를 선정한 뒤 발표한다.

여기서 문제는 특진에 대한 인사평가 자료는 모두 해당 지방 경찰청에서 제공하고 본청에서는 그 적절성 여부만을 평가한 뒤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경찰청 인사과에 따르면 본청에서는 추천자를 평가할 수 있는 그 어떤 자체 근거도 없이 상신돼 온 내용만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각 지방청 국관에서 보내온 인사평가 내용은 대부분 주관적인 평가라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다분하다.

경찰청 인사과의 도준주 경감에 따르면 행정발전이라는 것은 범인 검거, 범죄조직 일망타진, 미제사건 해결 등과 같이 눈에 보이는 공로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효율성, 업무성실도 등과 같은 무형의 공로를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경찰 내부에서는 인사평가에서 주관적인 견해가 개입될 소지가 많으면 많을수록 공정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청탁인사 등 비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이에 행정발전유공자 특진자 명단과 공적내용을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경찰청 인사과에 자료를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청은 이를 거부했다. 일반인들에게 공적내용이 공개될 경우 행발특진 수혜자들이 생각지 못한 곤경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경찰청 관계자의 궁색한 변명이다.

이어서 행발특진의 심사 기준을 보다 정확히 확인해 보기 위해 심사위원과 접촉도 시도해 보았다.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보안상 외부에 심사위원을 노출시킬 수 없다는 이유로 접근을 차단했다.

이에 대해 한 현직 경찰관은 “다른 특진인사는 그 공적을 모두 공개하면서 유독 행발특진만 공적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다”며 “행발특진자의 공적을 살펴보면 공적이기는 하지만 특진할 정도의 공적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청 인사과 도준주 경감은 행발특진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에 대해 “현재 경찰 인사는 과거에 비해 상당히 투명해졌다”며 “이번 특진자는 모두 순경에서부터 경찰생활을 시작한 이들이다. 철저한 검증을 통해 인사평가가 이뤄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고 일축했다.


사투명성 견해 엇갈려
또 도 경감은 “행발특진자를 선정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소리가 간혹 들리지만 이것은 절대 아니다”며 “행발특진 심사 기준은 대표적으로 예산절감 기여도, 행정효율성 확립 등이 있다. 말 그대로 경찰행정에 얼마나 공로를 세웠는지를 판단한 뒤 특진 여부를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경찰청의 입장에 대해 경찰 관계자들은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을 보인다.

일선 경찰관인 A경장은 “행정발전이라는 말 자체가 논란의 소지를 품고 있다. 경찰행정의 발전 요소는 너무나 방대하기 때문이다. 범인검거, 불우이웃 돕기뿐 아니라 심지어 평소 근태도 행발로 연결될 수 있다”며 “그런데 마치 행발을 어떤 특정 영역인 것처럼 정해놓고 이 영역의 특진자를 따로 선정하고 있으니 그 선정방식에 문제제기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이번 행발특진 경감 승진 대상자 8명 가운데 서울 지역에서 근무자만 5명에 이른다. 이 점도 형평성 논란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도 경감은 이에 대해 “서울은 치안수요가 많아 경찰관들이 공적을 세울 기회도 많은데 반해 그만큼 고생이 많기도 하다”며 “지방은 서울보다 사건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아무래도 인사평가에서 유리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또 도 경감은 “최근 경찰도 3D에 대한 기피현상이 뚜렷해서 다소 덜 힘든 지방으로 발령을 원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며 “개인적인 견해지만 이런 분위기를 감안할 때 사기 진작을 위해서라도 서울 경찰들이 특진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울은 특진자 배출 명문지역
하지만 지방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서울이 사건이 많기 때문에 특진자도 많아야 한다는 것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

대전의 모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 관계자는 “주요사건은 서울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개구리소년사건, 부천초등생실종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 등에서 알 수 있듯 굵직한 강력사건은 서울보다 지방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며 “고생은 서울경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의 대도시 경찰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더 힘든 점도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서울에서 근무해야 승진할 가능성이 크다면 지방에서 근무하려는 경찰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지방 근무 인력에 대한 경찰청의 배려가 없이는 경찰 사기진작은 탁상공론일 뿐이고 승진에 대한 불만은 계속 불거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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