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이혼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이혼률이 높았나 싶을 때가 많지만 상담을 하러 오는 고객들을 보면 정말 다양하 사연들을 가진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간혹 특이한 질문을 해 오는 경우도 있다. 이혼하지 않고 재산분할을 할 수 없느냐는 질문이 그 중 하나다.

이혼을 하지 않고 재산분할을 하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이혼을 원하지 않지만 재산을 나누고 싶다면 부양을 원인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다른 주장을 전제로 한 판단(판례)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게 아니라 가족법(민법) 규정을 찾아보고 현실성 있는 해석을 하고 재판부를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법률가의 법 발견 의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 혼인 파탄에 즈음하여 남편이 자신의 외도를 무마하기 위하여 처에게 재산을 증여한 경우, 남편은 다시 재산분할을 통하여 찾아올 수 있을까? 찾아올 수 있다면 남편 또는 아내가 외도를 하다가 발각되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상대방 배우자에게 증여를 하고, 재산분할로 되찾아오니 참으로 편리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모두 내 편리한 대로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증여를 한 후 20~30년 후에 이혼을 하는 경우라면 재산분할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증여를 한 후 단기에 이혼을 한다면 직전에 증여한 재산은 증여받은 배우자의 특유재산으로 보아야 하고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에 대해서는 6개월이 지나면 이혼청구도 하지 못하고 위자료도 받지 못할까? 이것은 법과대학 1학년을 대상으로 한 O·X 문제에 대한 답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법전에는 그렇게 되어 있으니까.

다만, 법률전문가라면 이런 답변은 무책임할 수 있다. 부정행위가 지속되는 경우라면 6개월이라는 기간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배우자의 외도가 발단이 되어 불화가 깊어지고 결국 혼인파탄에 이르렀다면 배우자의 부정행위(민법 제840조 제1호)를 이유로 이혼을 청구할 수 없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타 사유(민법 제840조 제6호)로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 오히려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가 있은 후 6개월이 지나고 나서 이혼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 6개월이 지났다고 하여 재판상 이혼사유로서 ‘부정한 행위’가 배척되거나 이혼청구가 기각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법은 교과서에서만 발견하려 하면 타당성이 결여될 수 있다. 추상적 재판규범으로서 법은 법원의 판결을 통해 구체적 행위규범으로 거듭난다. 가족법은 가정법원 법정에서 확인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전 임신 결혼, ‘다른 남자 아이’라면 혼인취소

혼인을 하기 전에 임신을 하는 사례가 이제 낯설지 않다. ‘출생의 비밀’을 다룬 드라마는 시청률 고공행진을 하고 많은 ‘불륜드라마’를 양산하고 있다. 불륜, 점잖지 않은 주제지만 불구경하는 것만큼 관심이 집중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이제는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의아할 정도다.

청춘남녀가 결혼을 결정하는 이유와 계기는 다양하겠지만, 이른바 속도위반으로 임신을 하게 되어 결혼을 결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2012년 부산가정법원 가사5단독 백주연 판사는 ‘아이를 임신하고 있다는 이유로 결혼했으나, 다른 남자의 아이임이 밝혀진 경우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서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자녀를 포태하였다고 하므로 아내와의 혼인에 이르게 된 것인데, 실제로 아내는 다른 남자의 자녀를 포태하고 있었는바, 남편과 아내의 혼인 경위에 비추어 볼 때 이와 같은 사실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고, 남편은 이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이러한 사정은 민법 제816조 제2호에서 정한 혼인취소의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시하면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은 아내는 남편에게 위자료로 1,000만원을 지급할 것을 명했다.

한편, 이 사건에서 재판부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 혼인신고가 이루어진 경위 및 남편이 아내의 출산준비를 돕고 그 가족들이 아내의 출산일에 아내를 찾아오기도 했던 점 등에 비춰 보면, 아내 일방이 혼인신고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위 신고 당시 남편의 혼인의사가 부존재했다는 점을 인정하기 부족하므로 이에 관한 남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하여 남편이 주위적으로 청구한 ‘혼인무효’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법 제816조’는 ‘혼인취소 사유’로 3가지를 규정하고 있다. 즉, ①혼인이 제807조 내지 제809조(만 18세 미만의 혼인, 미성년자 등이 부모 등 동의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혼인한 경우, 일정 범위내의 근친혼) 또는 제810조(배우자 있는 자가 다시 혼인한 경우-중혼)의 규정에 위반한 때, ②혼인당시 당사자일방에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 사유있음을 알지 못한 때, ③사기 또는 강박으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 혼인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한편, ‘민법 제815조’는 ①당사자간에 혼의의 합의가 없는 때와 ②8촌 이내의 혈족을 비롯해 일정한 범위 내의 근친혼을 혼인무효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혼을 원하는 당사자 대부분은 이혼 기록이 남지 않게 하기 위하여 ‘혼인무효’나 ‘혼인취소’를 선호하고 있으나, 민법이 정한 엄격한 요건을 충족해야 혼인무효나 혼인취소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혼인무효나 혼인취소가 된다고 하여 가족관계등록부에 그 기록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혼인은 인륜지대사인만큼 신중하고도 순수해야 한다

가족관계등록 실무상 배우자 일방이 서류를 위조하는 등 범죄행위로 인하여 혼인신고가 된 경우 형사처벌이 확정되는 등 요건을 충족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족관계등록부에 혼인 기록 자체가 없어지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혼인 기록을 없앨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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