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출연 미끼 억대 사기극
드라마 출연을 미끼로 억대의 사기극을 벌인 20대 남성이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조주태 부장검사)는 지난 9일 TV드라마에 출연시켜주겠다고 속여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로 원모(26)씨를 구속기소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원씨로부터 사기를 당한 피해자는 모두 25명. 피해 금액만 1억5,000여만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원씨가 사기극을 벌인 1년여 동안 피해자 대부분은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분홍빛 기대감에 부풀어 돈 뭉치를 갖다 바친 것. ‘스타’가 되고 싶다는 청소년들의 일그러진 허영심이 완벽한 한 편의 사기극을 만들어 낸 셈이다.


“당신도 스타가 될 수 있습니다!”
지난 9일 검찰에 구속기소 된 원모(26)씨가 연예 지망생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꾸미기 시작한 것은 2004년 6월부터다. 연예기획사에서 잡일과 로드 매니저 등으로 1~2개월 일한 경험이 전부인 그는 스스로 ‘잘 나가는’ 연예기획사 대표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준비는 치밀, 실행은 신속
원모씨는 우선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연예기획사 사무실부터 차렸다. 완전범죄를 위해 연예기획사에서 근무한 경력자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대
범함도 보였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해외 유명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연예기획사 대표’라는 그럴싸한 타이틀을 사칭했다.

‘먹잇감’을 물색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넘쳐 나고 있는 ‘캐스팅 카페’는 원모씨에게 그야말로 풍부한 ‘식량창고’였다. 캐스팅 카페에는 연예인을 꿈꾸는 회원들의 사진과 프로필로 가득 차 있었다. 미끼만 던지면 줄줄이 걸려들 상황이나 다름없었다.

원모씨는 일단 캐스팅 카페에 “드라마와 뮤직비디오에 출연할 예비 스타를 모집한다”는 내용의 광고 글을 올렸다. 그의 예상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모집 광고를 올린 지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연예인 지망생들로부터 ‘줄줄이’ 연락이 오기 시작한 것.

그는 연기 지망생들로부터 걸려오는 모든 문의전화를 사무실 직원을 통해 받게 했다. 믿음을 주기 위해서였다. 실제 기획사 사무실을 찾아오는 청소년들에게 면접과 오디션, 카메라테스트도 실시했다.

또 “지원자가 너무 많아 드라마 출연을 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로 지망생들의 애간장을 녹이기도 했다. 하루라도 빨리 연예계에 진출하려는 10대 청소년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한 것이다.

원모씨는 자신이 연예계에 몸담던 시절, 잠시나마 알고 지낸 연예관계자를 연예인 지망생들에게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순진한 연기 지망생들은 훗날 드라마에 출연할 ‘핑크빛 환상’에 사로잡혀 그의 달콤한 거짓말을 고스란히 믿었다.

그의 말 한 마디면 모든 게 가능했다. 연기 지망생들은 ‘드라마에 출연시켜 주겠다’는 말에 원모씨에게 뭉칫돈을 갖다 바쳤다. 명목은 대부분 출연섭외비.

그는 “MBC 시트콤 ‘논스톱5’에 자리가 하나 생겨 출연시켜주고 싶은데, 신인들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운을 뗀 뒤 “담당 PD를 설득하려면 술값이라도 쥐어 줘야 되지 않겠느냐”고 연예 지망생들을 꾀었고, 이에 지망생들은 수 백 만원에서 수 천 만원에 달하는 돈을 거리낌 없이 상납했다.

원모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2004년 6월부터 2006년 9월까지 약 2년 동안 25명의 연예 지망생들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아 챙겼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끊임없는 거짓말을 수상하게 여긴 몇몇 연기 지망생들이 경찰에 신고하면서 원모씨의 사기행각은 결국 막을 내리게 됐다.


완벽한 사기극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에 따르면 원모씨가 연예 지망생들로부터 갈취한 금액은 모두 1억5,000여만원. 대부분 작가나 감독 소개비로, 한 사람 당 100만원에서 최대 2,000만원까지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그러나 조사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는 원모씨의 엽기적인 범행수법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원모씨는 심지어 피해 연예 지망생들로부터 연예인 협회와 노조 가입비까지 요구하기도 했다”면서 “드라마·CF 촬영을 빌미로 여러 연예 지망생들에게 입국보조금 수십만원을 받아 챙기기도 했다.

특히 피해자 박모(21)씨는 “원씨의 권유로 1,500만원을 들여 실제 성형수술까지 받았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관계자는 이어 “이들 피해자들은 드라마나 CF에 캐스팅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모씨의 사기행각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면서 “원모씨가 연예계의 시시콜콜한 일을 알고 있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피해자들이 ‘모처럼 찾아온 행운을 놓칠 세라’ 원모씨의 사탕발림을 순진하게 맹신했기 때문”이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편 검찰 관계자는 “연예인을 꿈꾸는 젊은 청소년들의 심리를 이용, 제작자·기획사 대표 등을 사칭한 사기사건이 날이 갈수록 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하면서 “방송 출연을 미끼로 돈을 요구할 경우 일단 의심할 필요가 있다. 반드시 부모나 친인척 등 어른과 함께 동행하고 결정해야 하며 ‘노출’을 강요당하거나 ‘금품’을 요구받으면 바로 경찰에 신고해야한다”고 당부했다.



‘연예관계자’ 한 마디에 외상도 척척

원모씨의 범행 대상은 ‘순진한’ 연예 지망생들만이 아니었다.

검찰에 따르면 원씨는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사무실에서 중학교 동창인 현모씨에게 “회사 운영 자금이 부족하니 돈과 신용카드를 빌려주면 꼭 갚겠다”고 속여 4차례에 걸쳐 3,4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원모씨는 지난해 11월~12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소재 유흥주점에서 8차례에 걸쳐 2,700여만원의 술과 안주를 제공받은 뒤 돈을 지불하지 않고, 지난 2월에는 서울 용산 전자상가 K컴퓨터 운영자 이모씨에게 “PC방을 열 예정인데 컴퓨터와 부품을 외상으로 주면 곧 돈이 들어오니 갚겠
다”고 속여 12차례에 걸쳐 750여만원의 물품을 뜯은 혐의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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