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혼인자들의 애환 >
지난 3월 초 독일에서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어릴 때 헤어졌던 두 남매가 성인이 된 후 다시 만나 근친혼을 맺은 것이다. 파트리크 스튜빙(30)과 수잔 카롤레프스키(22)가 그 주인공이다. 둘은 사랑에 빠져 6년간 함께 살며 네 아이를 낳고 살았지만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져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근친혼은 독일에선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근친혼에 대한 유럽지역의 찬반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같은 사정은 한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내에서도 근친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근친혼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공식적으로 파악된 바는 없다. 대부분의 근친혼 커플들은 그 사실을 철저히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근친혼 관련 인터넷 카페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회원 수를 미루어 2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아직 제대로 드러난 바가 없을 뿐 근친혼에 관한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에 근친혼 커플들과 직접 접촉해 그 충격적인 실태에 대해 직접 들어 보았다.


고대·중세에는 근친간의 결혼이 허용된 예도 있다. 고대 로마나 이집트 그리고 유럽왕실 등에서는 혈족보존을 위해 근친혼을 맺는 경우가 있었다.

또 하와이의 귀족이라든지 잉카의 왕족들은 형제자매 사이에, 동아프리카 아잔데족의 귀족은 아버지와 딸이 결혼하는 사례가 있었다는 보고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특수계층의 혈통보존 목적에 따른 것일 뿐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시대와 나라를 불문하고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 형제자매, 조부모와 손자 사이의 성관계라든지 통혼은 터부(taboo: 금기)로 여겼던 것이 사실이다.

또 과학적으로도 근친혼은 인류의 금기사항이다. 근친혼을 통해 태어난 2세는 염색체 이상으로 유전적 결함을 갖기 쉬운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근친혼자의 자녀들은 장애아로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처럼 근친혼에 대한 부정적인 요소들로 인해 근친혼을 맺은 이들의 삶은 쫓기는 범죄자에 다름 아니다. 근친혼 당사자를 포함한 그 가족들은 가족과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다. 때문에 이들은 근친혼 사실과 자녀들의 출생을 둘러싼 비밀을 죽는 그 순간까지 숨기고 살지 않으면 안된다.


“근친혼은 신의 저주”

지난달 27일 캐나다 영주권자 김모(36)씨를 만날 수 있었다. 단정한 차림새로 약속장소에 나타난 김씨는 생각보다 표정이 밝아 보였다.

그 이유를 물으니 김씨는 “외국에서는 자신의 가족들이 움츠리고 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며 “한국에 있을 때는 정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김씨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이모의 딸인 조모(32)씨와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지방에서 거주하던 조씨가 월드컵 관람을 위해 서울을 찾았을 때 함께 경기장에 갔다가 사랑이 싹텄다고 김씨는 설명했다.

김씨는 “그날 이후 우리는 시련의 나날을 보내야 했다”며 “처음에는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서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아보려 했지만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양쪽 부모 몰래 만남을 계속해 왔으나 어느날 조씨의 부모가 두 사람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눈치 채는 바람에 위기를 맞게 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조씨는 임신까지 해 김씨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정말 둘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며 “숙고 끝에 우리는 결코 떨어질 수 없다고 뜻을 모으고 집에서 도망쳐 나와 살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두 사람은 끝내 2세를 출산했으나 이를 수치스럽게 여기는 가족들을 찾아 갈 수는 없었다. 이에 김씨는 고민 끝에 이민을 생각했고 지인의 도움으로 해외로 나가 취업을 할 수 있었다고 김씨는 전했다.

김씨에 따르면 김씨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다. 현재 근친혼으로 숨어 지내는 이들뿐 아니라 근친상간(近親相姦)으로 죄의식에 빠져있는 이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는 게 김씨의 설명.


인터넷 카페서 서로 위로

김씨에 따르면 근친혼에 대한 냉대는 철저하다. 인터넷 카페에서 조차 ‘근친’이라는 단어는 금지어로 지정돼 있을 정도다. 때문에 근친혼관련 카페를 개설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에 김씨가 알려주는 모 포털 사이트의 OOO카페를 찾아 들어가 보았다. 이 카페는 회원수가 500여명에 달했다. 게시판의 내용을 살펴보면 근친혼 또는 근친상간에 대한 고민이 대부분이었다. 근친혼에 대한 법적 자문이나 정식 부부가 될 수 있는 방법 등을 묻는 내용이 많았다.

이 카페의 회원인 닉네임 XXX는 “가까운 친인척과 수년째 함께 살고 있는데 이제 자녀를 갖고 싶다”며 “근친혼으로 자녀를 가질 경우 기형아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춘기시기에 놓인 10대 청소년 가운데 근친혼이나 근친상간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도 많다는 점이다. 이 카페의 질문 게시판에는 자신을 남자 고교생이라고 밝힌 한 회원이 “6촌 아저씨의 딸인 누나와 진지하게 교제 중”이라며 “근친상간이라고 들었는데 이것이 불법이라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글이 올라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학생은 근친혼이 왜 잘못된 것인지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다.

한편 김씨는 현재까지도 가족을 비롯한 일가 친척 그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자신들의 소식이 전해지면 가족들이 오히려 불편해할 것 같다는 게 그 이유였다. 김씨와 조씨는 말 그대로 ‘버려진 자식들’이었다.

그러나 김씨는 “얼마 전 아내가 두 번째 아이를 출산했다”며 “그러나 신의 축복인지 두 아이 모두 기형적 요소 없이 정상인”이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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