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조선왕조시대의 폭군, 하면 연산군이 대표적이고 성군, 하면 세종임금과 성종임금 정도를 반열에 올리고 개혁군주, 하면 단연 정조임금을 꼽는다. 세종임금의 한글창제를 비롯한 대표적인 업적은 대왕의 뜻을 받든 집현전 학사들에 의한 성과였음은 더 말할 여지가 없는 터고, 성종임금의 두드러진 치적은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의 ‘삼사제도’의 확립이다.

국정 전반에 걸친 포괄적이고 강력한 비판과 감찰을 수행하는 3사의 역할은 때로 왕권을 앞지를 만큼 대단했다. 대제학, 대사간, 대사헌의 ‘대간’으로 불린 이들 3사 수장들이 반대하면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을 정도였다. 유교정치의 기틀을 마련해 선비정신을 싹틔운 시기였다.

정조 때의 ‘각신’으로 불린 규장각 신하들을 중심으로 한 개혁정치는 현대사에 이르도록 우리 역사에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정조께서 한 10년만 더 재위에 있었다면 조선의 역사는 아주 판이해졌을 것이다. ‘신해통공’으로 표현되는 난전 상인들의 권리를 보호키 위한 ‘금난전권’폐지는 괄목할 만한 규제개혁이었다. 금난전권은 시전상인들에게만 장사를 허용하는 기득권적 경제 정책이었다.

이를 보면 백성의 나라 아닌 군주의 나라에서도 폭정 말고는 군주 스스로의 의지만으로 훌륭한 업적 가꾸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면 주권재민(主權在民)의 민주사회에서 통치권자 한사람의 의지와 역량에 힘입어 이룰 수 있는 성공 범위는 불가능할 만치 협소하다. 독선에 의한 독불장군 되기가 여반장이다. 그만큼 지배자의 주변 환경이 중요한 것이다.

현 박근혜 대통령이 권좌에 닿기까지 유권자들을 휘어잡은 힘은 정치 불신의 깊은 늪에 빠져있는 대한민국 사회에 불어넣은 신비스런 믿음의 향기였다. 본인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박근혜, 하면 원칙과 신뢰의 아이콘이었다. 그래서 지금 더 힘들어 보인다. ‘증세 없는 복지공약’에 발목이 잡히고, 다른 핵심 대선공약도 줄줄이 파기되거나 축소됐다.

‘원칙과 신뢰’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는 비판이 강하다. 내년에 처음 시행될 예정이었던 고교 무상교육도 교육부 예산에 지원예산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아 사실상 물 건넌 공약이 돼버렸다. 예산 문제와 관련 없는 검사의 청와대 파견 제한 공약마저 공수표로 만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를 위해 검사의 외부기관 파견을 제한하겠다고 공약하고 취임 후 국무회의에서 ‘법무부 및 외부기관 파견 검사의 단계적 감축’ 국정과제를 확정한 바 있다.

박근혜 대선 후보 때의 공약집을 외국에서 수입해 오지 않았다. 그런데 한마디 책임을 말하는 사람이 없다. 야당은 온 힘을 다해 정부 여당 발목잡기에 혈안이면서 입은 침도 안 바르고 박근혜 정부가 성공해야 한다는 소가 웃을 소리를 복음처럼 뱉고 있다.

이러한 정치 환경에서 세종임금과 성종임금이, 또 정조왕이 환생해 온들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언제나 국민 편에 서 있다는 야권이 민생은 안중에 조차 들지 않는다. 오직 정권 흔들어대는 일이 능사일 뿐이다. 그런 지경에 여권의 힘 있는 사람들은 눈 부릅떠 대통령이 가리키는 달은 쳐다보지 않고 움직이는 손가락만 보고자 한다. 성군은 스스로 이루는 게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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