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규제개혁에 대한 열정은 지난달 초 제2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때 밝힌 “지금 우리경제는 중대한 골든타임에 들어서 있으며 골든타임에 주어진 기간이 많지 않다, 너무 안이하고 더딘 것은 아닌지 모두가 생각해봐야 한다”는 대목에서 더 적나라해졌다. “규제를 풀려면 눈 딱 감고 화끈하게 풀어라” “웬만큼 풀어서는 간에 기별이나 가겠는가”라는 듣기에 따라서는 민망할 정도로 장관들 질책까지 했다.

이날 대통령 앞에서 한 여성 민원인이 상수도보호 관련 규제를 풀어 한과공장을 짓게 해달라고 요청한 문제에 대해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내년에 법 개정과 관련법령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답하자 “내년요?”하고 대화에 끼어들어 “법 개정해서 하려면 내년에도 되겠습니까”라며 회의감을 나타내고 “아”하는 탄식까지 터뜨렸다.

박 대통령의 탄식은 적중했다. 그 민원인은 결국 규제의 ‘올가미’에 발목이 잡혔다. 당초 공장을 지으려던 곳을 포기하고 공장 부지를 다른 데로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앞에서의 하소연도 통하지 않았다. 제발 규제를 풀어 귀농을 도와달라고 했던 몸부림이 무위가 됐다. 박 대통령이 탄식을 터뜨린 이틀 뒤 이 민원인의 집에는 환경부, 국무조정실, 대통령비서실, 홍천군청 등 여러 정부기관의 공무원 20여명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환경부에 줄기차게 요청해도 마이동풍이던 공무원들이 대통령의 한마디에 ‘한 부대’로 몰려오니 금방이라도 규제가 풀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상황은 전혀 그렇게 돌아가지를 못했다. 안 되는 이유들만 줄줄이 설명하고 상황 종료였다. 모르긴 해도 그에게 주위 여건만 허용 된다면 이민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을 것이다. 국가가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는 게 없고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인가.

온갖 정부 규제가 우리경제의 걸림돌로 지목된 지 오래됐다. 1960~70년대 경제개발과정에서 불거진 많은 폐해들을 방지할 목적으로 마련된 임시방편적인 광범위한 규제 틀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진작부터 제기됐다. 정부주도형 경제운용을 하다 보니 공무원 사회의 ‘갑(甲)질’은 아주 당연한 놀음이 돼왔다.

법률 아래 시행령, 시행세칙, 조례 등으로 튼튼한 그물망을 치고 오늘까지 우월적 지위를 보장받은 대한민국의 공무원들이다. 이런 뿌리 깊은 적폐가 대통령의 열정 하나로 허물어질 장벽이 결코 아니라고 본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그늘을 벗어나자면 규제개혁에 앞서 공무원 사회의 인식개혁이 먼저일 것이다. 다만 인식개혁을 이룰 수 있는 길을 만들어야하는 과제가 가로놓여있다.

일본 아베노믹스가 별 성과 없이 비틀거리고 있는 것도 규제개혁과 규제완화가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을 이루겠다는 열정이 공무원 사회의 인식개혁으로 점화돼 실직적인 추동력을 받아야만 창조경제가 전진할 수 있다. 세계경제는 유로존 경제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금 최악 상황에 빠진 데다 유로존을 떠받쳐 온 독일마저 산업생산이 크게 감소해 3분기 두드러진 마이너스 성장 전망까지 나왔다.

규제개혁이 돈 들이지 않고 경제혁신으로 재도약을 이끌어낼 확실한 방안이면 조금도 망설일 일이 없다. 규제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공무원에게는 백번 말보다 과감한 인센티브를 보장해줌으로써 공무원 조직에 새바람을 통(通)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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