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박근혜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 직후 열린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3자회동에서도 개헌 문제가 또 제기되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과 우윤근 원내대표는 “개헌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며 분권형 권력 개헌의 절박성을 강조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2주일 전 중국 방문 중 “이번 정기국회가 끝나면 봇물 터질 것”이라며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二元執政府)로의 개헌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3주일 전인 10월6일 개헌 논의에 대해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며 단호히 반대한 바 있다. 김무성 대표는 개헌 발언에 대한 박 대통령 측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자, 다음 날 박 대통령에 대한 “예가 아닌 것 같아 죄송”하다고 물러섰다. 하지만 즉각 새정치연 측에서는 국회의원 3분의2, 국민 70% 이상이 개헌 필요성에 공감한다며 압박했고 29일엔 또 “개헌에도 골든 타임”이 있다며 거듭 개헌을 촉구했다.

설사 국민의 70% 이상이 개헌에 공감한다 해도 지금은 개헌을 강행할 때가 아니다. 우리의 4류 정치는 개헌한다고 해서 1류로 도약하지 못한다. 개헌 하기 전에 먼저 4류 정치부터 개혁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5년 4월 중국 방문 중 “정치는 4류”라고 비판한 지 19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정치는 4류를 벗어나지 못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1948년 제정된 지 66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개헌은 무려 9차례나 되풀이되었다. 국회 간선 4년 대통령 중임제, 대통령 부통령 직선제, 대통령 중임제한 폐지, 내각책임제, 대통령 중심제, 대통령 3선 허용, 대통령 간선제, 대통령 간선 7년 단임제, 대통령 5년 단임 직선제 등 왔다갔다했다.

그러나 한국 정치는 아직도 옛날 그 타령이다. 국회는 “깡패 국회”아니면 “식물 국회” 상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헌법은 225년의 긴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대통령 권력과 관련, 단 한 차례도 개헌된 바 없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대통령 중심제의 모범이 되고 있다. 정치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헌법을 10번째로 뜯어고친다고 해서 한국 정치가 하루아침에 오스트리아로 바뀔 수는 없다.

김무성 대표는 대통령 중심제로는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며 “2원집정부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도리어 2원집정부로 개헌하면 더 “아무것도” 되는 게 없을 수 있다. 김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다른 선진국처럼 연정”으로 가게 되면 “올 오어 너싱(all or nothing: 전부 아니면 전무)의 권력 쟁취전 게임”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단을 막고 “권력분점”과 여야 “연정(聯政)”을 통해 극한적인 대결정치를 막자는 말이다.

하지만 굳이 개헌을 하지 않고 대통령 5년 단임제 하에서도 “올 오어 너싱”을 피하고 상생 타협정치로 얼마든지 갈 수 있다. 미국은 대통령 중심제이지만 상생정치로 잘 가고 있으며 한국처럼 “깡패 국회”나 “식물 국회”로 망가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국회의원들의 정치의식이 높은 데 기인한다. 우리나라는 4.19 혁명 직후 내각총리제로 갔었으나 집권 민주당내 신(新)·구(舊)파간의 싸움으로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후진적 정치의식 탓이었다. 4류 정치에선 2원집정부로 가면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대결, 결국 2개 정부로 쪼개질 수도 있다.

물론 잘못된 제도와 법은 고쳐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고쳐야할 것은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아니다. “식물 국회” “세월호 국회”로 타락, 제구실을 못하는 정치인들의 4류 정치의식이다. 헌법을 개혁하기 전 4류 정치부터 먼저 뜯어고쳐 정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운 시기엔 더욱 그렇다. 모두 힘을 합쳐 경제부터 살려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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