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일각에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2017년 대권후보 러브 콜(구애)을 보내고 있다. 지난 달 29일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들로 구성된 국가경쟁력강화포럼에서는 반 총장의 대선 출마를 띄웠다. “반 총장은 야당성향은 아니다. 정권 재창출을 위해 영입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가하면 새정치연합 측에서는 지난 4일 “반 총장 지인들이 반 총장을 차기 대통령 후보로 새정치연합에서 검토하면 어떠냐는 의사를 타진해왔다.”며 “그만한 훌륭한 분이 없다”고 했다. 실상 반 총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유엔 사무총장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는 데서 새정치연합에 빚을 진 셈이다.

반 총장이 차기 대선 후보로 여야의 영입 입길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0일 이후부터 였다. 그 날 한길리서치가 발표한 차기 대선 후보 선호도에 따르면, 반 총장 39.7%, 박원순 서울시장 13.5%, 새정치연합 문재인 9.3%,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4.9% 순이었다. 반 총장이 압도적으로 앞서가자 여야가 다퉈가며 서로 그를 대선 후보로 구애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여야 정치권이 여론조사 발표만 보고 반 총장을 대선 후보로 영입하려 한다는 데서 정치권의 경박성을 또다시 드러냈다. 여론조사는 바람개비처럼 수시로 변화한다. 오늘 39.7%가 내달 3%로 급전직하 할 수도 있다. 그런 팔랑개비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집권여당과 제1야당이 반 총장을 대선 후보로 끌어내려 한다는 것은 팔랑개비보다 더 가볍다는 인상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들이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 정당인지 한심스럽다.

더욱 실망을 금할 수 없게 하는 대목은 반 총장이 대통령으로서 자질을 갖췄는지 실증도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반 총장이 한국인으로 처음 유엔 사무총장에 올랐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쾌거이다. 그러나 사무총장 진출 자체가 대통령 자질을 갖췄다고 보증한 것은 아니다. 반 총장은 단지 외교관으로 그친다. 그는 1944년 충북 음성 출생으로 외교부 유엔과장, 미주국장, 외교정책실장, 대통령안보수석비서관, 외무장관을 지내는 등 국내문제와는 무관한 외교전문가이다. 그는 “깡패 국회”로 이름난 정치권과 부딪친 경험도 없고 “조폭 국가”로 막가는 도발집단 북한과 맞서본 적도 없다.

반 총장의 유엔 사무총장 직책수행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문제 전문 일간지 ‘인터내셔널 뉴욕 타임스’ 20013년 9월25일자에 실린 조타던 테퍼만의 칼럼을 상기코자 한다. 그는 ‘반기문, 당신 어디에 있나?’ 제하의 글을 통해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으로 존재감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 총장은 전임 코피 아난처럼 카리스마가 없고 뉴스 현장으로 뛰어들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반 총장은 ‘유엔 역사상 가장 무능한 사무총장들 중 하나“로 꼽힌다고 주장했다. 반 총장은 성격이 온건하고 부지런하게 움직이지만 피동적이어서 직무 성취에서는 목표량 미달로 그친다고도 했다. 반 총장이 개인적으로는 품위 있는 인물이지만 대화에는 서툴다고도 했다. 반 총장에 대한 테퍼만의 부정적 칼럼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대선 후보의는 검증 자료로 참고될 수 있다.

여야는 한국의 정치적 현실과 반 총장의 개인적 자질 분석 없이 그를 한국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이름만 보고 대선 후보 운운 한다. 너무 경솔하다. 그의 사무총장 직무수행에도 방해가 된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허명(虛名)에 놀아난다는 사실을 확인케 한다. 요즘 고교 졸업반 학생만 해도 대학을 지원할 때 1류 대학의 허명보다는 실속있는 대학의 학과를 선택한다. 정치인들이 허명에 사족을 못쓴다는 데서는 고교 3년생만도 못하다. 국가의 장래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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