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기자] 한국 현대사를 온 몸으로 맞섰던 시인 김수영의 정신과 발자취를 따라가는 연극이 1130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된다. 극 제목인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김수영의 시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1965)’의 첫 소절이다.

드림플레이 테제21의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에 이어 두 번째로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이라는 흥미로운 형식으로 발표하는 이번 작품은 단순한 시인 김수영의 일대기 재현이 아니라 김수영을 매개로 한국 현대사와 동시대가 만나는 지점, 예술가와 우리 자신이 만나는 순간을 다큐멘터리 드라마 형식으로 그리고 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연극 안에서의 배우와 실제 삶에서의 배우가 공존하며 연극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든다. 출연 배우로는, 현재 연극뿐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배우 강신일(강신일 역)을 비롯해 <알리바이 연대기>에서 재엽역을 맡은 배우 정원조(재엽, 원조 역)와 오대석(김수영 역)이 등장한다.
 
 
이번 작품에서 연출을 맡은 김재엽(41, 극단 드림플레이 대표)김수영의 시는 우리에게 자신으로 살고 싶은 소망을 들여다보게 만든다우리 안의 김수영을 만나게 되는 순간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발견할 수 있도록 관객과 소통하는 공연을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지난 해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를 통해 ‘2013 동아연극상 작품상희곡상‘2013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등 연극계의 주요 상을 수상한 김재엽은 <장석조네 사람들>(2011), <풍찬노숙>(2012)에 이어 남산예술센터에 세 번째 작품을 올린다.
 
1921,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대사를 살아온 김수영은 서정적 모더니스트이자 자유와 저항을 부르짖던 작가다. ‘구름의 파수병’(1956), ‘...그림자가 없다’(1960), ‘’(1968), ‘시여, 침을 뱉어라’(1968) 등 수많은 시와 산문을 남겼다. 일제 강점기부터 419혁명과 516군사정변 등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김수영은 거칠고 힘찬 어조 속에 자기반성과 폭로,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을 하게 된다. 1968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48살의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현실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는 그의 시, 산문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로 어떤 순간에 그 작품을 쓰게 되었는가를 무대 위로 끌어들이고자 했다. 관객들은 이 작품을 통해 시와 함께 격랑의 현대사를 견뎌온 한 소시민의 일상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줄거리-
작가 재엽은 시인 김수영에 관한 작품을 구상 중이다. 재엽은 배우들을 설득하여 그들 안의 김수영을 찾아가는 연극을 만들고자 한다. 아직 대본도 없는 상태에서 배우들은 선뜻 공연 출연을 결정하긴 힘들다. 어쨌든 김수영의 시를 이해하면 김수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김수영의 시를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광복 후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삶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젊은 김수영을 만나기 시작한다.
 
 
-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1965) / 김수영 -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hoj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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