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사무실직원 왜 조폭에 영장 넘겼나”

조직폭력배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경찰이 신청한 체포영장이 발부와 동시에 조폭들 손에 넘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발생 했다.

그동안 국민들의 끊임없는 사법비리 척결 목소리에도 ‘사법부 이상무’라는 입장만 되풀이 해온 사법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지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법부의 권위와 위엄을 상징하는 구속영장은 정해진 절차와 경로를 거쳐 검찰과 경찰에 바로 전달되기 때문에 외부인이 중간에서 훔쳐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검찰과 경찰은 이번 사건에 법원직원이 개입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경찰은 만약 법원직원이 중간에서 영장을 빼돌린 것이라면 거액의 사례비가 이 직원에게 건네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의 핵심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은 조폭에게 영장정보를 직접 건넨 것으로 보이는 A변호사 사무실 직원 B씨다. 경찰은 그를 통해 영장의 유출경로를 캐고 있지만 아직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B씨의 침묵 뒤엔 추악한 법조계 비리가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닐까.

사건은 지난해 10월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경찰청과 경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때 합동으로 수사를 벌이며 평택지역 폭력조직 청하위생파 조직원 53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번기회에 청하위생파를 괴멸시키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체포 작전을 준비했다.

그러나 체포영장 발부 직후 검거에 나선 일선 형사들은 어찌된 일인지 번번이 허탕 쳐야했다. 조폭들은 경찰의 움직임을 미리 간파하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같이 잠적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조폭의 가공할 정보력

경찰은 최근까지 수사를 계속 벌인 끝에 38명을 검거했지만 15명은 아직 검거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형사들이 허탕 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따로 있었다.

수원지검 평택지청과 경찰이 지난 16일 밝힌 바에 따르면 조폭들은 경찰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고 달아났던 것이다.

경찰은 지난 4월말 조폭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조직원 윤모(39)씨가 소지하고 있던 한 장의 A4용지를 발견했다. 이 종이엔 체포영장에 명기된 조직원의 명단과 수사관련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그 메모는 영장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장과 내용이 일치했다”며 “너무 기가 막혀서 처음엔 우리 눈을 의심했다. 지금 검찰이 윤씨를 상대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우리나라 법질서의 근간을 흔드는 중요한 사건이다. 반드시 영장의 유출경로를 추적해 관련자들을 모조리 색출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뒤 윤씨는 검찰조사에서 "명단은 평택의 A변호사사무실 직원으로부터 넘겨받았고 시점은 체포영장이 발부될 즈음"이라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A변호사사무실 직원 B씨를 불러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 하지만 B씨가 영장유출 사실에 대해선 일부 인정하면서도 영장 입수 경위에 대해선 일체 함구하고 있어 조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은 집중적인 조사를 위해 B씨에 대해 범인 도피 혐의로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검토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B씨가 영장 유출경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 조사가 쉽지 않다”며 “하지만 그가 평소 가깝게 지냈거나 자주 접촉했던 법원직원들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 중이기 때문에 조만간 유출경로가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관출신 일부 변호사 조폭에 시달려

B씨는 왜 영장을 유출한 것일까. 사례금조로 받는 돈 때문이었을 것이란 추측이 적지 않지만, 일부 법조인들 사이에선 조폭의 협박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나와 눈길을 끈다.

청주의 한 변호사사무실에서 근무한다는 김성욱(가명.36)씨는 “서울은 어떤지 몰라도 지방의 경우 일부 변호사들이 조폭에 시달리고 있다”며 “조폭들이 변호사사무실로 찾아와 사건을 수임할 수 있게 해줬으니 돈을 달라거나 검찰 정보를 알아보라며 협박하는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변호사들이 사건을 수임하다보면 조폭들이 연루된 각종 사건을 맡게 된다”며 “처음에는 매우 정중하게 사건을 의뢰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본색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이 제공하는 각종 금품이나 접대를 멋모르고 받았다가 이로 인해 발목 잡히는 변호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조폭들이 검찰이나 경찰의 내부 정보를 빼내는 방법 중 하나가 변호사를 통하는 것이라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또 대전의 한 법무법인에서 근무하는 이모 변호사는 “검사나 판사 출신 변호사 중 조폭에 시달리는 이들이 내 주위에도 두 세 명 있다”며 “이들이 재직시절 조폭에 불리한 조사나 판결을 했다는 이유로 조폭들이 악질적으로 괴롭힌다. 하지만 이 사실이 주위에 알려지면 변호사 업무에 지장이 생길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창피한 일이기 때문에 속병만 앓고 있다”고 말했다.

검찰도 이런 일부 변호사들의 이런 사정을 대충 짐작하고 있다.

검찰은 이런 점을 비춰볼 때 B씨 역시 말 못할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보고 청하위생파와 B씨의 관계를 조사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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