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3년차 국정 동력 ‘불통 이미지 확 씻는다’

▲ <뉴시스>

청와대 참모진 개편·개각 때 ‘소통형’ 기용
조기 레임덕 차단…‘여당 관리’도 본격 돌입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대통령이 달라지고 있다. 집권 초반기 ‘불통’ 논란에 시달렸던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3년차를 앞두고 정치권, 언론과의 ‘소통’에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이다. 여론의 흐름에 선제적, 공격적으로 대처해 조기 레임덕을 차단하면서 국가 대개조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과 조윤선 정무수석을 배석시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이완구 원내대표, 주호영 정책위의장을 만난 지난 21일 오후 청와대 박 대통령 요청으로 이뤄진 이날 회동은 새해 예산안 처리, 공무원연금 개혁 등 연말 정국 현안을 조율하고 해외 순방 결과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도 초청을 받았으나 “시기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1시간 5분 동안 이뤄진 회동에서 “여당이 힘을 모아서 많이 노력해달라. 당·정·청도 긴밀하게 소통을 해나가면서 힘을 모았으면 한다”며 여당 지도부를 상대로 ‘소통’을  수차례 강조했다.

여 지도부와 깜짝 회동

회동 후 정치권에선 박 대통령의 태도 변화에 주목했다. 박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회동은 지난 9월16일 이후 불과 2개월여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10월 29일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방문했을 때 여야 지도부와 함께 만난 것까지 감안하면 20여일 만에 다시 회동이 이뤄졌다. 
 
따라서 임기 초반 여의도 정치와 가급적 거리를 뒀던 기조가 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정치권, 그 중에서도 여당과의 소통을 통해 직접 관리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지난 7월 김무성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여당 안의 지원세력인 친박계가 맥을 추지 못하자 직접 여당을 통제하기 시작한 측면이 짙다.

이번 청와대 회동에서 박 대통령이 현안 처리를 강하게 주문한 반면, 여당 지도부는 별 말 없이 몸을 낮추며 경청한 모습은 이런 기류를 읽게 한다.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대통령 면담에서 당이 요구한 건 없다”고 했다.

한 때 ‘개헌론 봇물’ 발언으로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 김무성 대표도 저자세로 일관했다. 박 대통령이 해외순방 성과를 설명하자 김 대표는 “대통령께서 해외순방을 통해 큰 업적을 갖고 오셨는데 당에서 제대로 뒷받침을 못한 것 같아서 송구스러운 마음”이라고 했다. 또 “다음부터는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도 다짐했다.

김 대표는 7월 전당대회 때 “청와대에 할 말은 하는 대표가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그러나 최근의 자세는 완전히 딴판이다. “대통령에게 송구스럽다”(개헌 발언 하루 뒤), “당이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잘 보좌하도록 노력하겠다”(박 대통령 국회 방문)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김 대표는 사석에서도 “나는 대통령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는데, 정치권과 언론에서 싸움을 붙인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다고 기사를 내보고 있어 언론 인터뷰도 일절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김무성 대표의 달라진 자세

이런 태도 변화에 대해선 ‘차기’를 노리는 여권 2인자로서 당연한 처신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김 대표의 평소 성격을 잘 아는 주변에선 ‘의외’란 반응이다. 미리 앞날을 예상하거나 상황을 살펴 처신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개헌 봇물론 발언을 전후해 박 대통령에게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받은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기자들이 김 대표에게 ‘대통령에게 너무 저자세 아니냐’고 물으면 “잘 알면서 왜 물어보느냐”는 답이 돌아온다.

이는 역으로 생각하면 박 대통령의 여당 장악, 군기잡기가 시작됐다는 의미가 된다. 쌍방향 소통은 하되, 자신의 국정기조를 확실히 여당에 심는 절차를 밟고 있다는 분석이다. 앞으로도 박 대통령이 당·청 관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가능성이 높다. 담배세와 주민세 인상 같은 청와대와 여당의 입장이 다른 쟁점들이 널려 있는 까닭이다. 여기서 밀리면 조기 레임덕이 불가피하다는 게 박 대통령의 판단인 듯하다.

이 같은 분위기를 보면 연말연시로 예상되는 개각과 청와대 개편에서도 ‘소통형’ 인물들이 대거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정홍원 국무총리와 김기춘 비서실장의 교체설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법조 출신인 정 총리와 김 실장은 그동안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 때문에 신임 총리와 비서실장 하마평에는 소통 능력이 뛰어난 몇몇 정치권 인사들이 올라 있다.

여권 관계자는 “특히 신임 총리는 정치인이 발탁될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참사 이후 인적개편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안대희, 문창극 두 명의 총리 지명자가 잇따라 낙마한 만큼 이미 선거를 통해 검증을 받은 정치인들이 1순위에 올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소통 강화 움직임은 언론 대응에서도 감지된다. 정치권을 상대로 시작한 선제적, 공격적 대응이 언론 관계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8박9일 일정으로 중국과 미얀마, 호주에서 열린 다자 정상회의를 끝내고 귀국 길에 올랐다. 그날 저녁 귀국하는 전용기에서 기자들이 앉아 있는 좌석으로 박 대통령이 다가왔다. 기자들은 과거 순방 귀국길에 그랬던 것처럼 돌아가며 악수를 나누고 “수고했다”며 격려하기 위해 기자석을 찾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은 기자석 사이에 서서 30분 가량 순방 성과를 설명하고 기자들과 짤막한 질문과 답변도 주고받았다. 박 대통령이 격식 없이 ‘스탠딩 기자간담회’를 가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기자들 앞에서 장시간 설명을 한 것도 1월6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 이후 10개월여 만이다. 순방 성과에 대한 자신감이 모처럼 기자들과의 ‘소통’에 직접 나선 배경이란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스탠딩 기자간담회는 처음

박 대통령의 언론 소통 방식은 과거 대통령들과 달랐다. 역대 몇몇 대통령들이 즐겼던 ‘국민과의 대화’ 같은 TV로 생중계되는 토론을 거의 하지 않았다. 취임 후 두 차례 규제개혁 토론회를 가졌을 뿐이다. 또 기자회견도 과거 대통령들에 비해 자주 갖지 않았다. 국민에게 알리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국무회의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의 모두발언으로 전달했다.

청와대는 내년 초로 예정된 연두 기자회견을 ‘국민과의 대화’ 형식으로 진행하는 방법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세월호 참사로 흐트러진 민심을 다독이고 집권 3년차의 국정운영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새 출발’의 의미를 다지기 위해서다. 이전처럼 딱딱한 기자회견을 통해서는 그런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에 일반 국민도 참여하는 ‘대통령과의 대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물론, 박 대통령의 소통 행보에 대해선 부정적 시각도 있다. 비판론자들은 박 대통령이 지난 18일 정부조직법 개정에 따라 단행한 11명의 정부 부처 장·차관급 인사를 보며 ‘불통 인사’가 여전하다고 주장한다. 신설된 국민안전처와 인사혁신처 장·차관은 군 출신으로, 또 MB 정부의 방산 비리를 수사할 방사청장 내정자는 박 대통령과 서강대 전자공학과 동기동창을 발탁했기 때문이다. 또 신임 인사혁신처장도 대선 캠프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인물을 뽑았다.

그러나 민간기업인 삼성그룹의 인사 전문가를 인사혁신처장에 기용한 건 ‘인사 소통’을 하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란 반론도 나온다. 인사혁신처 구성이 완료되면서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함께 시스템 인사 체계가 갖춰진 만큼 연말연시 개각과 청와대 개편 때부터 이전과는 다른 인사 스타일을 선보일 것이란 기대가 크다.

박 대통령의 소통 행보를 정치적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야당의 태도 역시 걸림돌이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20일 청와대 회동을 거절하면서 대통령의 소통 제의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당이 항상 대통령에게 소통부재를 지적하고, 야당과의 대화를 자주 갖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진작 회동 제의를 뚜렷한 명분 없이 거부한 건 이해가 가지 않는 처사였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야당이 대통령에게 끌려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보이콧한 것 같지만, 이는 소통을 거부한 행위”라는 비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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