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소통과 불통 모두 으뜸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2004년 12월 7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유럽 3개국 순방을 마치고 특별기 편으로 마지막 방문국인 프랑스 파리를 떠나 귀국길에 올랐다. 특별기가 이륙한 지 25분 쯤 지났을 때 노 대통령은 기자들이 앉아 있는 좌석 쪽으로 왔다. 그리곤 ‘폭탄 선언’을 했다.

“이 비행기는 서울로 바로 못 갑니다. 쿠웨이트를 들러 이라크 아르빌에 다녀와야겠습니다.”

극비리에 준비한 자이툰부대 방문 일정을 전격 공개하는 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해외 순방 때면 수시로 기자들 좌석으로 와서 간담회를 가졌다. 비좁은 기내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일부 기자들은 통로에 앉아 대통령의 말을 받아 적기도 했다.

이전 김대중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떠날 때와 귀국할 때면 꼭 기자들을 자신의 좌석으로 불러 순방 이유와 성과를 설명하곤 했다. 대통령이 순방을 갈 때면 펜 기자와 사진기자까지 수십 명이 수행하므로 기자단은 대표로 서너 명을 보내 대화 내용을 공유하곤 했다.

청와대 출입 경력이 있는 기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가장 언론과 잘 소통했던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런가 하면 언론과 가장 심각하게 긴장관계를 유지했던 대통령 역시 노 전 대통령이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선 출범 직후부터 출입기자들의 참모진 업무 공간 출입을 금지시켰다. 이전 김대중 정부 청와대와 김영삼 정부 청와대는 출입 기자들이 오전과 오후, 하루 두 차례 한 시간씩 관내 비서 동(棟)을 마음껏 다니며 취재하도록 허용했다. 기자들은 비서실장이나 정무수석 등을 매일 직접 만나 취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이런 관행을 없애버렸다. 출입기자들이 비서실을 아무런 통제도 받지 않고 돌아다니다 보니 업무에 방해를 받는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실제론 이런 불편함 못지않게 취재경쟁 과정에서 특정언론이 정보를 독점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기자단 전체를 출입금지 시켰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일선 정치인 시절 조선일보와 수차례 전쟁을 치렀다. 중앙일보, 동아일보와도 관계가 좋지 않았다. 이 때문에 취재력이 뛰어난 3대 신문이 특종을 낚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출입기자들의 비서동 출입을 전면 금지시켰던 측면이 있다.

대신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 수시로 기자들이 머물러 있는 춘추관으로 직접 왔다. 어떤 때는 춘추관으로 오기 한, 두 시간 전에 예고한 뒤 불쑥 나타나서 현안에 대한 입장을 설명하기도 했다. 간혹 기자들과 함께 청와대 뒷산을 오르며 대화를 나눴고 하산한 뒤에는 인근 식당으로 함께 가서 식사를 같이 하곤 했다.

당시엔 문재인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들도 자주 춘추관을 찾았다. 특히 문 실장은 춘추관 앞 벤치에 앉아 기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밖에도 국민과의 대화를 자주 했다. 취임 초에는 ‘초임 검사들과의 대화’를 갖기도 했다. 정치인 출신인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도 비교적 언론소통이 원활했다. 기업가 출신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언론소통을 주로 참모들에게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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