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 입사원서에 “조국통일에 기여하고 싶어” 적어

당시 나는 사노맹 소속 여성 조직원이 쓴 수기 형식의 책도 읽었다. 그 책은 안기부 도서관에서 다시 본 적이 있다. 당시 나의 사고는 NL계열 보다는 PD계열에 경도되어 있었다.

나는 ‘위수김동’ 이니 ‘친지김동’ 이니 외치는 친구들을 경멸했다. 북한을 대안으로 보는 시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자주적으로 남한의 사회주의 혁명을 달성하려는 사노맹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이 말하던 소위 ‘과학적인 투쟁’ 방법론도 높이 생각됐다


사노맹 일망타진 사건

당시 사노맹이 안기부에 의해 일망타진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전국에 있는 사노맹 중앙위원들이 하루아침에 검거된 것이다. 이는 당시 안기부 정형근 수사국장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도대체 안기부라는 데가 어떤 곳 이길래 한 날 한 시에 사노맹을 일망타진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의아심이 생겼다. 내가 안에 들어가서 ‘내 눈으로 직접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점차 굳어졌다. 체포된 박노해 씨가 자신을 심문하는 수사관들에게 “당신들같이 충직한 사람들과 혁명사업을 한 번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는 보도를 보고, 안기부라는 데가 어떤 곳인지 더욱 궁금해졌다.

나는 나중에 안기부에 입사하여 교육받을 때, 수사국 출신의 교수님으로부터 사노맹을 검거하게 된 경위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안기부는 사노맹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안기부는 사노맹 중앙위원이었던 남진현이라는 사람의 삐삐를 의도적으로 고장 냈다고 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삐삐는 최첨단 통신 장비라, 청계천에서만 수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수사국 수사관들은 청계천수리점에 잠복하고 있다가 남씨의 꼬리를 잡았다고 한다.

그 후 사노맹 조직을 완전히 파악하고도, 한꺼번에 다 잡기 위해 기다렸다 일망타진했다는 것이다. 나는 안기부에 들어가서 박노해 씨에 대한 수사기록을 읽을 수 있었다. 그 후로는 노동의 새벽이나 노동해방문학을 통해 가지고 있었던 그에 대한 환상을 적잖이 버리게 됐다.

나는 본래 ‘사기업이 내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업할 수 있는 자본이 없으니 취직은 해야 했지만, 사기업에 들어가 평생 사노비같이 살기는 싫었다. 그래서 차라리 국가의 녹을 먹는 관노비가 되겠다는 심산으로, 눈 딱 감고 안기부에 입사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름대로 사전 연구를 좀 했다. 먼저 입사한 친구에게 정보를 얻었다. 정보기관과 관련되는 서적을 모조리 구해다 읽었다. 이때 김경재 전 의원이 쓴 세 권짜리 김형욱 회고록을 비롯해 동아일보에서 펴낸 책자와, 조갑제 씨가 지은 책자 등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을 10여권 이상 읽었다.


종로5가서 안기부 인사직원 만나

나는 정보기관에 들어가기로 결심하면서 ‘내가 위장취업을 하는 게 아닌가?’ 라고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경찰서에 들락거리지는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스스로 골수 문제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1992년 가을, 종로 5가에 있던 인사과 물색계를 직접 찾아 갔다. 내가 처음 만난 직원은 이종x 선배였던 걸로 기억된다. 그는 요즘 국정원 공보관이 되었다고 들었다. 제 발로 알고 찾아오는 지원자가 많지 않았던 탓인지 그 선배는 나를 보자 조금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그는 정보기관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해 주면서 “외교는 앞문이고, 정보는 뒷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교관들이 폼 잡고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국가에 헌신한다"고 했다. 나는 입사지원서의 입사목적 난에다 “조국 통일에 조금이나마 기여하고 싶어서"라고 썼다.

내가 입사하던 시절만 하더라도 정보기관이란 곳이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요즘처럼 국정원에 입사하기 위해 평소 학점을 관리하고,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준비하고 입사 전문학원에 다니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엔 서울대 졸업생이면 어렵지 않게 합격할 수 있었다. 보통 가족이나 친척을 통해 알음알음으로 들어왔다.


입사동기 중 대학수석졸업도 있어

경쟁도 그리 심하지 않았다. 동기들 가운데는 대학에서 수석으로 졸업한 친구들도 있었지만, 요즘만큼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몰리지는 않았다. 들어와서 보니 일부는 대학 때 벌써 입도선매 형식으로 입사를 결정하고 장학금까지 받고 들어 온 친구도 있었다.

나는 국정원 입사 시험준비는 거의 하지 않았다. 떨어지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영어와 국어, 도덕, 국사 등은 선다형 과목이었고, 논술시험도 있었다. 객관식 문제는 거의 학력고사 수준이었다. 나는 그런대로 잘 친 것 같았다.

논술문제는 둘 중의 하나를 골라 쓰는 문제였는데, 나는 “구한말과 현재의 시대상황을 비교하고, 우리의 대응 방안을 비교 논술하라"는 문제에 대해 썼다. 나는 주변 4강에 둘러싸인 우리의 안보현실에 대해 서술하고, “자주적이고 열린 자세로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썼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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