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판매현장을 가다

"내 차례 언제 오나.." 매장에서 몰려든 손님들이 가게 밖까지 길게 줄을 섰다.(위) "꽃살 1.1Kg에 3만2000원..." 매장직원이 손님이 고른 고기의 무게를 재고 있다.(가운데) "빨갱이 놈들..." 어린 손녀와 미국산 소고기를 사러 온 강 할아버지가 1인 시위중인 송정순씨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지난 1일 국내 판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미국산 쇠고기가 예상 밖의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일반 소비자에 미국산 쇠고기를 판매하는 서울 금천구의 ‘에이미트’ 본사는 하루 매출이 1200여만원에 달할 만큼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미국산 쇠고기를 맛본 손님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산에 대한 소비자의 거부감을 염려했지만 단순한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업체 측 설명에도 일부 시민들 사이에선 ‘미국 소=미친 소’라는 인식이 여전히 남아있다. 청와대와 여당, 재계가 앞 다퉈 ‘수입 쇠고기 시식회’를 열만큼 민심도 뒤숭숭하다. 이런 가운데 에이미트의 ‘대박’을 단순히 인식의 변화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산 쇠고기에 열광하는 사람들. 그들은 왜 전국 각지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사기위해 모여들고 있을까.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현장으로 나가봤다.


“대구까지 가야 하니 냉동포장 해줘요.”

서울 지역에 처음으로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지난 9일 정오를 막 넘긴 시간. 15평정도 규모의 미국산 쇠고기 판매점 에이미트 직영 매장에는 5~6명의 손님들이 고기를 고르고 있었다.

매장 밖에는 고기를 실은 것으로 보이는 냉동탑차가 5분여 간격으로 드나들 만큼 분주했다.

장바구니를 챙긴 주부들 사이에서 목심 1kg과 알등심 2kg(200g기준, 약 15인분)을 사고 3만2800원을 카드로 계산한 이모(41·대구)씨는 직원에게 냉동포장을 부탁했다. 대구에서 출장차 올라왔다 일부러 들렀다는 이씨는 “가족들과 함께 쇠고기 파티를 벌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구까지 가져갈 건데 냉동포장 됩니까?”

가족끼리 먹기에는 양이 좀 많지 않을까. 고개를 갸웃하는 기자에게 매장 점원이 귀띔해준다.

“멀리서 오는 손님들은 한 번에 많이씩들 사가요. 차비 아깝잖아. 전엔 회식한다고 한번에 120만원 어치씩 사간 손님도 있었어.”

그는 아침 문 열자마자 손님들이 몰려들어 물 한잔 마실 시간도 없었다는 푸념도 빼놓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와 학교를 끼고 있는 에이미트 매장은 전형적인 ‘동네 정육점’ 이미지다.

그러나 쇠고기 파동 이후 매스컴을 타면서 업체는 유명세를 탔다. 언론 보도를 보고 왔다는 손님이 전국 각지에서 몰리고 있는 것.

“부산에서 여기까지 오는 사람도 있어. 충청도, 전라도 쪽도 많고. 전국에서 다 올라온다고 보면 돼요.”

기자가 확인한 바로도 직원의 말은 사실인 듯 했다. 10kg들이 아이스박스까지 동원해 쇠고기 구입에 나선 70대 노인은 대전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그 밖에 안양, 김포, 수원 등 수도권 외곽에서도 고기를 사려는 손님들은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예상치 못한(?) 1인 시위

기자는 지난 1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단체의 1인 시위가 매장 앞에서 벌어진 것을 기억한다. 판매가 시작된 지 열흘 째, 반대 시위도 계속되고 있는지 직원에게 물었다.

“한 사흘 쯤 오더니 요즘은 안보여요. 와봐야 욕만 먹는데 그 사람들이라고 오고 싶겠어?”

그러나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피켓을 든 여인이 매장 앞에 오도카니 선 것이다. 금천한우물 생활협동조합(생협) 송정순(38·여)이사다. 그는 매장 직원의 말을 전하자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생협 임원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1인 시위에 교대로 나서고 있습니다. 다른 일정 때문에 하루 한 시간 정도만 자리를 지킬 수 있지만요.”

민주노동당 당원이기도 한 송씨는 “돈벌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며 “아직 안전성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판을 서두른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꼬집었다.

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이번엔 고기를 사러 온 강모(71·서울 가락동) 할아버지가 송씨를 향해 고함쳤다. “빨갱이 놈들, 김정일한테나 가!”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송씨와 달리 어린 손녀를 품에 안은 할아버지의 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무엇이 마음에 안 드는 걸까.

“로또 맞을 확률보다 적은 광우병 운운하며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세우는 거지. 국민이 싼 고기 맘껏 먹겠다는 데 왜 방해를 해.”

며칠 전에도 이 매장에 들러 미국산 쇠고기 10kg을 사갔다는 할아버지는 이 곳의 단골 고객이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가 호주산은 물론이고 한우보다도 맛이 좋다며 주위 사람들에게도 적극 권하고 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날 부인과 함께 등심과 불고기감 5kg을 사갔다.

늦은 오후까지 취재에 열을 올리던 기자는 문득 이상한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싸고 맛있다’며 먼 곳에서 원정 오는 손님은 많은 반면, 매장이 있는 금천구에 산다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이었다.


‘자발적’으로 몰려든 ‘타지’ 손님들?

매장을 찾은 일부 고객은 ‘이곳 주민이냐’ ‘어디서 오셨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은 ‘시민단체 소속 아니냐’며 기자증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기자의 질문에 말을 바꾸는 노부부도 있었다. 처음 ‘멀리서 왔다’고 대답한 부인을 대신해 앞에 나선 남편은 기자의 신분을 물었고, 취재중이라고 하자 얼른 ‘금천구민이다’고 말을 바꿨다.

기자가 ‘두 분 같이 오신 것 아니냐’고 재차 물었지만 더 이상은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또 저녁에 먹을 고기를 사러 왔다며 부위별로 300~400g 정도를 사간 30대 남성이 계산을 한 뒤 에이미트 사무실이 있는 옆 건물로 사라지는 모습도 목격됐다. 그는 기자에게 ‘청담동에 산다’며 오늘 처음 매장을 찾았다고 말한 사람이었다.

일부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에이미트와 미국산 소고기를 띄우기 위해 특정 단체가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말이 돌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를 원하는 손님들이 자발적으로 전국에서 찾아오고 있다’는 에이미트와 일부 언론의 주장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에이미트 측이나 손님들은 ‘절대 아니다’며 손사래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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