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코앞 녹지공원에 가스통이 웬 말?!”


여당의원과 구청장이 참석한 산악대회에서 자원봉사 단체가 공원 안에 LPG 가스통을 설치해 음식 장사를 했고 해당 구청이 이를 묵인했다는 주장이 나와 적잖은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지모(50)씨에 따르면 행사에 참여한 ‘새마을 부녀회’는 놀이터와 빌라촌이 인접한 공원 한복판에 가스통 10여개를 동원해 대회 참가자들을 상대로 먹거리 장터를 열었다. 명백히 공원 내 취사행위를 금지하는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다.

지씨가 이 같은 사실을 바탕으로 민원을 제기하자 해당 구청은 뒤늦게 새마을 부녀회에 대해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그러나 지역구 국회의원과 해당 구청장이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점에서 불법행위를 미리 단속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논란이 된 행사는 지난달 29일 서울 우이동 ‘솔밭공원’에서 열린 강북구 산악연맹 주최의 구민 산악대회. 이 자리에는 한나라당 정양석 의원과 김현풍 강북구청장을 비롯, 시·구의원 다수가 참석했다.


“안전장치 하나 없이 배째라”

문제는 먹거리 장터를 계획한 새마을 부녀회가 공원 내 정자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벌어졌다.

지씨는 “주민들의 휴식처인 공원 정자를 독점한 것도 모자라 안전장치 하나 없이 가스통을 연결해 음식을 만들어 파는 것을 보고 항의한 것이 시비로 번졌다”고 말했다.

실제 지씨가 촬영한 현장 사진에는 초록색 조끼를 입은 20여명의 부녀회원들이 정자 바로 옆에 천막을 세우고 LPG 가스통을 연결해 음식을 만드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이들은 공원 식수대에서 물을 끌어와 설거지를 한 뒤 빗물이 빠지는 하수구를 통해 구정물을 흘려보내기도 했다.

지씨는 “코앞에 어린이 놀이터가 있고 공원 뒤쪽은 빌라촌이다. 이들이 동원한 가스통이 줄잡아 10여 개인데 만약 실수로 하나가 폭발하기라도 하면 정말 큰일 아니냐”며 “이런 위험한 일을 벌이면서 안전장치 하나 없이 ‘배째라’ 식으로 나오는 주최 측에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부녀회와 산악회 등 주최 측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폭행을 당해 전치2주의 부상을 입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씨는 “일을 하다 다리를 다쳐 수술 받은 지 얼마 안됐다. 그런 사람을 강제로 끌어내고 밀쳐 다치게 하는데도 국회의원 사무장, 구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모두 구경만 하더라”며 행사 참석자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또 “뒷정리를 하는 새마을 부녀회 사람에게 ‘쓰레기 좀 깨끗이 치워가라’ 한마디 했다가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폭언까지 들었다”고도 말했다.

서울 강북구청에 확인한 결과 당시 새마을 부녀회의 먹거리 장터는 구청 허가를 받은 공식 행사가 아니었다.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당시 부녀회 행사는 새마을 부녀회가 임의대로 가스통을 설치한 사실이 확인돼 최근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말했다. 부녀회에 부과된 과태료는 10만원. 일반 시민이 휴대용 가스레인지 하나를 켰을 때 부과되는 금액과 같다.

구청은 이나마도 지씨가 수차례 서울시청과 해당 구청에 민원을 제기하자 뒤늦게 사실 확인에 나서 과태료를 청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행사에 참석한 김 구청장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강북구청 측은 문제의 행사가 구청 주최로 열린 것이 아닌 만큼 행사 참석 여부 자체를 놓고 잘잘못을 따질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청 관계자는 “행사에 참석한 사실은 있지만 당시 먹거리 장터라는 것이 열리는 지도 몰랐고 행사장에 (김 구청장이) 그리 오래 머물지도 않았다”며 “만약 (공원 안에 가스통을 설치하는 등)사실을 알았다면 당연히 현장에서 제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양석 의원 측 역시 마찬가지 입장을 밝혔다.

문제의 당사자인 새마을 부녀회는 당시 상황이 지씨 주장과 많이 다르다고 해명했다. 부녀회 임원이자 번3동 지부 회장인 양모씨는 ‘산악연맹이 행사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도와달라고 해 일을 해준 것뿐인데 고생만 하고 과태료까지 냈다’고 하소연 했다.

양씨는 “그쪽(산악연맹) 회장님이 ‘아무래도 지역 동호회원 수백명이 참가하는 큰 행사에 먹거리가 빠져서야 되겠냐’며 부탁해와 봉사활동 겸 장터를 계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벌금 10만원 ‘있으나 마나?’

양씨에 따르면 장터로 번 수익은 고스란히 독거노인과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쓰인다. 하지만 그날은 지씨와 몇몇 시민들이 난동에 가까운 항의를 하는 바람에 재료비조차 건지지 못한 채 중간에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양씨는 또 지씨의 태도가 순수한 항의 표시와는 거리가 멀었다고도 말했다.

그는 “당시 한 분(지씨)이 구청으로부터 체납된 세금 고지서를 내보이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많은 세금을 먹이는데 너희도 구청에 한번 당해보라’며 음식을 발로 차는 등 행패를 부렸다”고 전했다. 구청으로부터 체납 고지서를 받은 지씨가 앙심을 품고 관련 행사에 나타나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니냐는 게 양씨의 생각이다.

양씨는 또 “1년에 두 번씩 큰 지역 행사를 치르지만 이런 일로 문제가 된 적은 처음”이라며 “자원 봉사자들을 장사치로 생각하는 오해는 없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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