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비밀파티 기쁨조 캉캉춤 보고 충격

정규과정 교육은 크게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뉜다. 전반기 과정은 정보요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품성을 기르는 데 주안을 둔다.

주로 기본 교양 과목을 배운다. 영어와 일어도 100시간씩 배우고, 정보원이 알아야 할 다양한 주제의 교과를 배운다. 국내정세와 국제정세, 북한정세에 대한 교육도 받는다.


구보에서 빠지는 열외거사 속출

몇 년 전 중앙일보가 국정원의 정규과정 교육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는데 (중앙일보 2006. 5. 29. 국정원 교육현장 언론 첫 공개 제하 기사 참조) 기사를 보니 그제나 이제나 교육 분위기는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기사에서는 정규과정 요원들이 기억술이나 독심술 등도 배우는 것으로 소개되었는데 조금은 과장된 느낌이 있다.

국정원 교육이라고 해서 뭔가 기상천외한 것을 교육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정보요원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 다양한 과목을 배우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정규과정 교육을 받는 중에 가끔 희귀한 자료를 접할 기회가 있었다. 우리는 김정일의 비밀파티에서 기쁨조가 캉캉춤을 추고 있는 영상물을 본 적도 있고 한총련의 비밀 대의원 회의를 찍은 비디오를 본 적도 있었다. 이런 것들은 아마 실무부서에서 입수한 자료들일 것이다. 전반기 교육이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르고 난 후 역사탐방이라는 명목으로 강화도와 같은 사적지에 바람을 쐬고 오기도 했다.

전반기 때에는 체력 단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전반기 말에 계획되어 있는 공수훈련과 해양훈련에 대비하여 체력을 길러 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체력을 기르는 데는 아무래도 구보가 최고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정기적으로 또는 수시로 줄 맞추어 구보를 했다. 하루에 평균 6-7Km는 족히 달렸다. 그러다 보니 무릎 관절을 상하는 부상자가 속출했다.

자연히 구보 때마다 부상을 핑계로 열외 하는 친구가 생겼다. 동기 중에서 유독 상습적으로 열외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그 녀석의 별명은 ‘열외거사’가 되었다. 나는 중국말로 그를 ‘리와이’라고 불렀다. 그는 아마 지금쯤 중국 땅 어느 하늘 아래에서 정보관 노릇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매일 합기도도 한 시간씩 단련했다. 합기도 교관은 우리가 ‘칠룡사부’라고 부르던 분이었는데, 그 분의 성함이 O칠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합기도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훤칠한 키에 발차기와 꺾기가 일품이었다.

칠룡 사부가 재미있게 가르쳐 줘서 한 동안은 합기도가 교육과정의 활력소로 작용했다.

그러나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스트레스가 되었다. 전반기 교육을 마칠 때 즈음 우리들은 단체심사를 받고 모두 공인 유단자가 되었다. 속성 과정으로 합기도 단증을 받은 것이다.

나는 매일 밤 짬을 내 혼자 양지관 지하 체력 단련실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나의 인생 중에서 이때가 가장 체력이 좋았던 것 같다. 그 땐 나도 몸짱이라 뽐 낼만 했다. 하복 맞추러 갔을 때 재단사 아가씨가 “무슨 운동을 하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내가 웃통을 벗고 달리기를 하면 여자 동기들이 환호를 하곤 했다.

우리는 사격훈련도 받았다. 사격장은 양지관 근처 산기슭에 있었다. 사격 교관은 정O0라는 분이었는데, 아마도 특등사수 출신이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중정부장이 대통령을 시해한 사건의 여파 때문이었던지 사격훈련이 특별히 강조되지는 않았다.


목욕외출서 아내와 꿀 같은 재회

우리는 공기소총부터 시작하여 점차 실탄 권총사격까지 배웠다.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권총 사격에 상당한 자질을 보였다. 배운 대로 조준하고 차분하게 격발하고 난 뒤 표적을 확인해 보면 언제나 성적이 괜찮게 나왔다. 우리 반에서는 나와 ‘열외거사’의 사격 실력이 가장 나은 편이었다. 우린 사격 실력을 놓고 조그만 내기도 하고 그랬다.

요즘은 사격이 레저스포츠쯤으로 인식된 때문인지 내곡동 신청사 내에 시뮬레이션 사격장이 설치돼 있다고 한다. 언젠가, 국정원을 방문하는 일반 방문객들도 시뮬레이션 연습사격을 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전반기 교육이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를 즈음에 산악훈련을 갔다. 북한산과 도봉산 일원에서 야영하며 며칠을 지냈다. 나는 동기들이 먹을 무거운 쌀 포대기를 지고 북한산에 올랐다. 산 속에서 며칠간 머물면서 체력 단련 훈련을 하기도 하고, 야간에는 담력을 기른답시고 특수 훈련을 하기도 했다. 무척 고되기는 했으나 생각하면 즐거운 추억이었던 것 같다.

텐트 속에서 동기들과 몸을 비비대며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몰래 끼리끼리 어울려 텐트 속에서 돈내기 세븐오디 포커를 치기도 했다.

요즘은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에 봄철 등산객이 너무 많은 관계로 지리산으로 산악훈련을 떠나는 모양이다. (최근 신동아의 이정훈 기자가 정규과정 학생들의 지리산 종주를 동행 취재, 기사화 했다. 이 기사는 정규과정의 산악훈련 과정을 자세하고 현장감 있게 잘 소개하고 있다. 정보와 재미를 함께 전달하는 좋은 기사였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처음 세 달간은 외출도 없는 지루한 훈련병 생활이 이어졌다. 가끔 목욕외출이라는 구실로 바깥 세상에 나오기도 했지만 이 때에도 회사 부근에 잠깐 나갔다 오는 게 고작이었다. 대개 삼삼오오 잠시 나가 맥주나 한 잔하고 들어 와야 했다.

나 같이 결혼한 학생들에게는 이때가 가족과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사실 목욕외출은 결혼한 교육생들을 배려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인 듯 했다. 나는 그 짧은 틈을 아내와 꿀 같은 시간을 보내는 데 썼다. 입사 전에 황급히 결혼하느라 제대로 된 신혼생활이 없었기 때문에 이 시간이 절실 했는지도 모르겠다. 회사 근처에 있는 여관 문을 나서다 아는 동기 부부들과 서로 멋쩍게 조우하기도 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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