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황금송아지 있다!” 호기가 부른 참극

지난달 27일 알려진 부산 동래구 60대 노인 살해 사건의 범인은 평소 서로의 집을 오가며 두터운 친분을 쌓아온 친구였던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부산 동래경찰서는 지난달 28일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강모(66)씨를 잠복 끝에 붙잡았다. 사건이 벌어진 지 사흘 만이다.평소 외제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우리 집에 황금 송아지가 있다”는 말로 부유함을 자랑했던 피해자 민모(66)씨. 그러나 유족들에 따르면 민씨는 7천만원짜리 전셋집이 유일한 재산이었을 만큼 부유층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친구를 잔인하게 살해하면서까지 강씨가 훔친 피해자의 금고 속엔 현금이나 수표 등 금품은 전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나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민씨가 살해된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의 집 거실이었다. 미리 흉기를 품고 친구 집을 찾은 강씨는 거실에서 자신을 맞아준 집주인 민씨의 복부를 두 차례에 걸쳐 깊숙이 찔렀다. 그러나 불의의 치명상을 입은 민씨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한바탕 몸싸움을 벌이던 강씨는 제압이 여의치 않자 주위에 있던 장식품과 도자기 등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수차례 내리쳤다.


벽과 천정까지 ‘피투성이’

목숨을 건 사투의 흔적은 강씨가 검거된 뒤 공개된 사건 현장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흉기에 찔리고 둔기에 머리가 깨져 사망한 민씨의 선혈은 거실 바닥뿐 아니라 벽과 천정에까지 궤적을 남겼던 것.

이는 강씨가 피해자의 목숨을 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때 서로 외로움을 달래주던 친구사이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피해자의 집 구조를 비교적 상세히 알고 있었다. 과거 몇 차례 민씨의 초대를 받고 놀러와 묵어간 적도 있기 때문이었다.

6개월 전 심심풀이로 즐기던 동네 화투판에서 통성명을 한 두 노인은 동갑내기 친구로 금세 가까워졌다. 무엇보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생활하던 민씨는 자신에게 살갑게 구는 강씨와 돈독한 우정을 나눴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강씨 역시 궁색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민씨의 집을 찾을 때마다 음료수 세트를 사갈 정도로 극진히 대했다.

과연 무엇이 사이좋은 60대 노년의 우정을 금가게 한 걸까. 문제는 바로 돈이었다. 경찰은 돈이 궁했던 강씨가 피해자의 재산을 노리고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범행을 저지르기 위해 흉기를 미리 준비했다는 점도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강씨는 피해자의 아파트에 도착한 지 한 시간여 만인 지난달 25일 낮 12시30분쯤 거실 한 켠에 있던 소형 금고를 훔쳐 달아났다. 무게가 16kg에 달하는 철제 금고를 택시 트렁크에 싣고 유유히 사라진 강씨는 자신의 모습이 아파트 CCTV에 고스란히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

집주인을 참혹하게 살해했지만 정작 강씨가 훔쳐 나온 건 손으로 들어 옮길 수 있는 금고 하나뿐이었다. 그가 처음부터 민씨 집 금고만을 노리고 범행을 계획했다는 뜻이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할 만큼 강씨가 탐낸 물건, 그것은 바로 순금으로 만든 송아지였다. 그는 민씨가 이 금고 안에 황금송아지를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 철썩 같이 믿고 거사를 치른 것이다.

이 같은 믿음은 평소 공공연히 자신의 재력을 뽐내던 민씨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피해자 민씨는 평소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식사 대접도 잘해 동네에서 ‘신사’로 불렸다. 혼자 기거하는 노인답지 않게 깔끔한 행색과 통 큰 씀씀이는 민씨를 부유층으로 보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자신의 넉넉한 살림을 뽐내다 흘러나온 말 한마디가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그는 동네 노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 집에 황금 송아지가 있다”며 농담을 던졌고, 곧 ‘민씨는 엄청난 알부자’라는 소문이 동네에 떠돌았다. 이웃들에게 잘 보이려 호기로 던진 농담이 ‘살인강도’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실제 피해자의 아들을 비롯한 유족들은 고인의 재산이 많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민씨가 살던 아파트도 7천만원짜리 전세에 불과했다. 돈을 노리고 민씨에게 접근한 것 자체가 범인의 착각이었다는 얘기다.


농담이 결국 살인 불러

친구의 피를 뒤집어쓰면서까지 천신만고 끝에 금고를 손에 넣은 강씨. 그러나 금고를 열었을 때 꿈에 그리던 황금 송아지는 흔적조차 없었다. 묵직한 금고 안에는 약간의 예금액이 찍힌 통장 몇 개와 두툼한 서류뭉치 뿐. 돈 될 만한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나오지 않았던 것.

허탈에 빠진 강씨는 훔친 금고를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버리고몸을 숨겼다. 그러나 이미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상태. 며칠째 연락이 끊긴 민씨를 걱정해 그의 집을 찾아온 지인 윤모(72)노인에 의해 끔찍하게 살해된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지난달 27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민씨의 아파트에서 금고를 들고 나와 택시에 싣는 모습이 CCTV에 찍힌 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또 범행 당일 이 금고를 같이 옮겨 줬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얻는데 성공했다. 결국 강씨는 범행 사흘 만에 자신의 집 근처를 배회하다 잠복중인 수사팀에 붙잡히고 말았다. 문제의 금고는 심하게 부서진 상태로 강씨의 집 지하실 하수구 입구에서 발견됐다.

한편 붙잡힌 강씨는 경찰 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신이 찍힌 아파트 CCTV화면과 문제의 금고를 손에 넣은 경위 등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 혐의를 벗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경찰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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