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PD·작가 vs 번역가 ‘죽음의 치킨게임’

지난달 31일 서울남부지법에서 열린 PD수첩의 광우병 보도에 대한 정정·반론보도 청구소송 선고 재판에서 김성곤 부장판사(가운데)가 선고에 앞서 사건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날 재판부는 "PD수첩은 잘못된 광우병 보도내용에 대해 정정보도를 하라"고 판결했다.

MBC 방송국의 시사 프로그램 PD수첩에 대한 검찰수사를 둘러싼 진실공방이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PD수첩의 광우병 관련 프로그램이 왜곡·편파방송인가 하는 점이다. PD수첩의 왜곡·편파방송 논란은 해당 프로그램의 번역을 담당한 번역작가 정지민씨로부터 촉발됐다. 방송에 나간 후 일부 자막이 오역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MBC 측은 ‘단순 번역의 실수’라는 식으로 해명했다. 그러자 번역을 담당한 정씨는 ‘번역자의 실수가 아니라 MBC 측의 의도적인 오역’이라고 폭로했다. 촛불집회로 나라가 떠들썩해지자 일부에선 ‘PD수첩이 의도적으로 방송을 왜곡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간간히 제기됐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위험이 너무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정씨의 ‘의도적 오역’ 발언은 이런 의혹의 불씨에 기름을 붓는 효과를 가져왔다.

온라인상에선 네티즌들이 PD수첩의 광우병 방송을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더불어 정씨 발언에 대한 진위여부도 논란이 됐다.

번역작가인 정씨는 PD수첩 방송 편집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다며 그의 의도적 오역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또 최근에는 PD수첩의 메인 작가와 PD가 정씨와 진실공방을 벌여 주목을 끌고 있다. 진실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PD수첩 진실공방 속으로 들어가 봤다.

PD수첩은 검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와 법원의 일부 정정 반론보도 판결에 대해 최근 반박하고 나섰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지난달 31일 농수산식품부가 낸 PD수첩 광우병 보도 7개 부문에 대한 정정반론보도 신청 소송에서 2개는 정정보도하고 1개는 반론보도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나머지 4개 부문은 청구를 기각했다.


검찰수사 또는 언론탄압

이에 PD수첩은 지난 1일 자료를 내고 “서울중앙지검 형사 2부가 지난달 29일 해명을 요구한 사항은 농수산식품부가 그동안 반론·정정보도 민사소송에서 주장하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으로, 새로운 것은 없다”며 “해당 사항에 대해 이미 민사소송에 제출한 3번의 준비서면에서 밝혔고 관련자료도 모두 법원과 농수산식품부에 제공한 바 있다”고 말했다.

PD수첩은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수차례 해명방송을 했으며 정식 사건으로 입건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이 자료제출이나 해명, 출석 등을 요구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적 권한이 없는 것으로 응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견제, 비판하는 보도에 행정부서가 수사의뢰를 하고 검찰이 나서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본질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PD수첩은 ‘검찰발표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총 72페이지 자료를 따로 내고 ‘다우너 소와 광우병 소의 관계’ 등 총 9개 부문에서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와 함께 검찰수사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검찰 수사가 정씨의 주장을 그대로 받은 전형적인 ‘받아쓰기 식 수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씨의 주장을 그대로 믿기 힘들다는 주장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정씨는 PD수첩의 번역물 중 일부를 담당했을 뿐 프로그램의 편집방향에 관여한 적이 없는 인물이란 게 그 이유다.

또 정씨가 번역한 번역물을 살펴보면 그가 광우병 프로그램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는 핵심적인 부분은 번역을 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PD수첩이 광우병 위험을 과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왜곡·편집했다는 정씨의 주장은 믿을 수 없다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정씨의 편에 서서 ‘PD수첩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정씨가 편집방향의 의도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주장에 대해 일부에선 위치와 상관없이 정씨가 번역물 전체를 감수했기 때문에 ‘고의적인 오역’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반론을 펴고 있다.

또 검찰 수사가 정씨의 폭로 내용과 별반 다를 것 없는 것에 대해서도 시각이 양분된다. 일부에선 이를 두고 받아쓰기 수사라고 비난하는 반면 또 다른 일부에선 정씨의 주장이 사실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는 것일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황우석 파문 당시 PD수첩의 보도도 다시 등장하고 있다. 이때 PD수첩은 황우석 실험과 주변인들의 진술을 교묘하게 왜곡하고 편파적으로 방송해 황우석을 희대의 사기꾼으로 몰아갔다며 상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과거 PD수첩의 이같은 보도행태로 미뤄 이번에도 편파적으로 사실을 왜곡했을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PD수첩 진실공방 2라운드

온라인상에서 네티즌들의 논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PD수첩 파문의 당사자들도 온라인에서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어 주목을 끈다. 이들은 바로 PD수첩의 김보슬 PD, 메인작가 김은희씨, 보조작가 이연희씨 그리고 정씨다.

이들은 시사IN 고재열 기자의 블로그 ‘독설닷컴’(poisontongue. tistory.com/)에서 치열한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특히 이들의 대화에서 PD수첩 방송과 관련된 민감한 내용도 오가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이 벌이는 공방의 핵심은 PD수첩에서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CJD’라고 언급한 것을 ‘vCJD’로 표기한 것이 ‘의역이냐, 의도적인 왜곡이냐’하는 것이다. 김 PD, 김 작가, 이 작가는 정씨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정씨는 의도적인 왜곡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세 사람은 대사의 문맥에 따른 제대로 된 의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씨는 아레사 빈슨을 광우병 환자로 몰아가기 위해 CJD를 vCJD로 자막처리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김 PD와 김 작가는 전체 맥락상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CJD라고 말한 것은 vCJD로 봐도 무방하다고 반박했다. 두 사람의 주장은 다소 억지스럽게 들리는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PD수첩의 변론을 담당한 김형태 변호사가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아레사 빈슨 모친이 ‘MRI 결과 vCJD’로 추정된다고 말한 자료가 있다”고 밝혀 PD수첩 측의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PD수첩은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전문 용어를 혼동했으며 전체 맥락상 vCJD라고 말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또 정씨가 상황에 따라 말을 수시로 바꾸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정씨는 6월2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CJD와 vCJD라는 말을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번갈아 사용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는 7월2일 문화일보 등에서 “CJD(크로이츠펠트야코프병)로 번역이 제대로 이뤄진 이후 누군가에 의해 임의로 ‘vCJD’(인간광우병)로 (동영상 자막에) 표기됐다”고 주장했다. 문제의 PD수첩 방영분을 보기 전과 본 후 말이 달라진 것이다.


“정씨 결정적인 내용 몰라”

이에 대해 정씨는 “이 인터뷰를 할 때 나는 PD수첩 방송분에서 CJD이야기가 아예 누락된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며 “따라서 기자들이 자꾸 ‘빈슨 어머니가 vCJD이야기를 했느냐’고 물을 때, 당연히 ‘했다’고 답했다. 그것이 ‘CJD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는 뜻인가”라고 반문했다. 또 “PD수첩의 주장대로 MRI-vCJD라고 하는 부분이 그토록 많았다면 진작 방송에서 쓸 것이지, 왜 안 썼는가?”라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김 PD는 “MRI 결과 vCJD로 의심된다는 어머니의 또 다른 인터뷰는 분명히 존재할 뿐만 아니라 방송을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방송보고 확인해 달라”라고 반박했다.

또 김 PD는 “PD수첩이 그 어떤 의혹에 대해 속 시원히 해명할 수 있는 방법이 원본제출임을 알면서도 공개하지 못하고 차라리 온몸으로 맞서겠다고 하고 있는 이유는 이것이 언론사에 길이 남을 치욕적인 선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 작가도 정씨에 대해 “정씨는 ‘CJD→vCJD’ 의역을 두고 ‘MRI상 CJD’ 진단이 나왔는데 제작진이 인간광우병으로 몰아가기 위해 일부러 ‘vCJD’라고 바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은 아레사 빈슨은 정확히 ‘MRI 상 vCJD’ 진단을 받았고, 어머니가 인터뷰에서 말하는 CJD란 모두 vCJD를 의미한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했다.

이어 “정씨는 제작진이 어머니를 인터뷰한 테이프 총 4권 중 단 1권(40분)만을 번역했다. 그런데 정씨가 번역했던 테이프 안엔 CJD니 vCJD니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라며 “공교롭게도 정씨가 유일하게 번역했던 한 권의 테이프는 막 그 진단 결과를 듣기 전에 끝난다”고 김 작가는 지적했다.

김 변호사도 기자회견에서 “빈슨의 모친은 CJD(크로이츠펠트 야코브병)와 vCJD(인간광우병)를 혼용하고 있었지만, 딸의 사인을 의사에게 들은 대로 vCJD로 추정된다고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에 대한 근거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아레사 빈슨의 어머니가 CJD와 vCJD(인간광우병)를 혼용하면서 사망원인과 관련 의도적 의역 논란이 이는 데 대해 김 변호사는 “신경외과 전문의에게서 딸이 vCJD의 의심이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빈슨 어머니의 미공개 녹취록 일부를 공개 했다.

PD수첩 측과 26세의 혈기왕성한 정씨, 둘 중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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