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대신 갚아줬으니 평생 노리개 돼라!”

성매매 여성의 업소 몸값(선불금·마이킹)을 대신 갚아주고 ‘성노예’로 부려온 전직 안마시술소 사장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수사팀에 따르면 용의자는 변태적인 성관계에 질린 피해자가 만나주지 않자 가족에게까지 접근해 “칼로 찔러 죽이겠다”며 괴롭혀 온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지난 14일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수천만원을 빌려준 뒤 이를 빌미로 성관계를 강요한 최모(45)씨를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차용증과 함께 ‘언제든 무슨 요구라도 들어줘야 한다’는 내용의 성노예 문서엔 노골적인 요구사항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돈이 궁한 윤락여성에게 손님으로 접근해 ‘악덕 포주’로 둔갑한 최씨. 그의 파렴치한 범죄행각과 화류계 여성들의 목을 옭죄는 ‘마이킹’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수사팀에 따르면 최씨는 노래방과 안마시술소 등을 운영한 탓에 화류계 여성들의 생활을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밤문화 마니아’인 최씨가 피해자 A씨(25·여)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가을.

단골이 돼 매번 적잖은 화대를 주고 A씨와 성관계를 맺어온 최씨는 머잖아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놈의 빚이 뭔지…”

그런 최씨의 머리에 기가 막힌 묘안이 떠올랐다. 바로 빚에 쪼들릴 수밖에 없는 업소 여성들의 생리를 이용하는 것. 유흥업소 주인이 여성 종업원을 고용할 때 1000만원 이상의 선불금을 빌려주고 채무관계를 맺는(일명 ‘마이킹’) 업계 관행을 간파한 것이다.

최씨는 지난해 10월 1일 업소에 진 빚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던 A씨에게 선뜻 500만원을 내놨다. 돈도 궁했지만 수차례 밤을 보낸 단골손님이 건넨 뭉칫돈. A씨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 돈에 손을 덴 순간 악몽이 시작된 것이다.

최씨는 빌려준 500만원에 대한 차용증과 ‘노예문서’나 다름없는 각서를 A씨에게 내밀며 지장을 찍기를 요구한 것. 경찰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각서 내용은 ‘만나자고 하면 언제든지 만나야 한다’ ‘요구조건을 무조건 들어줘야 한다’는 게 기본 골격이다.

‘노예문서’ 탓에 A씨는 그 후 최씨의 노리개로 전락했다. 최씨는 아예 A씨가 소속된 업소 주인에게 마이킹 1000만원을 대신 갚아준 뒤 A씨를 업소에서 빼냈다. 피해자를 업소로부터 ‘사들여’ 성욕을 푸는 도구로 이용한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A씨를 소유하기 위해 한 번에 수백만원 씩 총 2000여 만원을 풀어 채무관계를 이어나갔다. 돈을 빌려준 대가는 고스란히 몸으로 받았다. A씨가 다른 안마시술소에 취직해 원금을 갚을 만하면 최씨는 또 뭉칫돈을 들고 그를 찾았다. 갚을수록 빚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계속된 셈이다.

결국 6개월이 넘도록 이어진 성적 ‘착취’를 견디다 못한 A씨는 최씨의 전화를 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최씨의 수법도 악랄해졌다. 빌린 원금에 이자까지 갚으라며 A씨를 닦달하기 시작한 것. 그는 A씨가 안마시술소에서 일해 번 수입까지 갈취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모두 A씨가 최씨와의 잠자리를 꺼리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래도 A씨의 태도가 바뀌지 않자 최씨는 급기야 홀어머니를 모시는 A씨의 집까지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최씨의 노략질에 피해를 입은 건 A씨의 모친(55)도 마찬가지.


“빌린 돈 몸으로 갚아라”

최씨는 지난 5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오늘부터 10일 동안 카운트 들어간다’ ‘괜히 길가다 칼 맞는다’ ‘55살에 칼 맞으면 안 되잖아’ 등의 협박 문자와 전화메시지를 A씨 어머니에게 보낸 혐의도 받고 있다. 결국 참다못한 어머니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고, 마침내 모녀는 지긋지긋한 ‘성노예 계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도피생활 끝에 경찰에 붙잡힌 최씨의 범행동기는 ‘남는 장사인 것 같아서’였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매번 돈을 주고 A씨와의 잠자리를 샀지만 돈을 빌려준 뒤 공짜로 성매매를 하는 게 이득인 것 같아 일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마이킹은‘나가요 걸’의 자존심 척도?

마이킹(선불금)은 프로스포츠 선수들의 이적료와 같아 화류계 여성들의 몸값을 가늠하는 척도다. 얼굴과 몸매가 뛰어난 ‘A급’ 아가씨일수록 마이킹 액수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 이들을 채용하는 업주들이 면접 과정에서 줄 수 있는 선불금 액수를 먼저 밝히기 때문에 ‘마이킹=나가요걸 자존심’이라는 등식이 성립되기도 한다.

여성들이 유흥업소에 진출하는 목적은 큰돈을 벌기 위해서다. 이들에게 돈줄인 손님들의 ‘초이스’를 받기 위한 외모가꾸기는 필수. 여기에 적잖은 목돈이 필요하고 이 돈은 업주로부터 받은 선불금으로 충당된다. 마이킹은 나중에 이자와 함께 갚아가는 식이다.

하지만 이 같은 마이킹 관행이 지난 2004년 성매매특별법 발효 이후 크게 바뀌었다. 과거 업주가 성매매 여성을 옭아매기 위한 수단으로 선불금을 악용한 사례가 적발되면서 ‘성매매를 전제로 한 돈거래’는 불법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마이킹으로 빚을 진 여성은 업주에게 이를 갚을 필요가 없다. 업주들로서는 적잖은 손해다.

이런 이유로 업소 출신 여성들이 최근 선불금을 빌리기 위해서는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처음 업소와 계약을 맺기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부터 장난이 아니다. 주민등록 등본과 초본은 물론이고 호적등본에 신분증까지 있어야 한다. 힘들게 업주의 최종 결제가 떨어졌다 해도 곧바로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바로 ‘나가요 걸’ 명의의 약속어음을 발행해야 하는 것. 마이킹을 떼어먹고 도망치는 이른바 ‘탕치기’ 수법이 늘자 이를 막기 위해 업주들이 고안해낸 고육지책이다. 어음은 이미 법원의 1차 판결이 난 보증수표로 이를 갚지 않고 명의자가 도주하면 곧장 형사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성매매 특별법 이후 아가씨들 사이에서 마이킹은 ‘안 갚아도 되는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퍼져 문제가 된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어음이라도 써야 안심할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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