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가 지난달 28일 보도한 박관천 경정의 정윤회 동향 첩보 문건이 천파만파 파장을 일으켰다. 정윤회 문건은 청와대 “문고리 권력”의 “비선 실세(秘線 實勢)”로 소문난 정윤회씨와 관련된 보고서다. 정씨가 현 청와대 비서관 “3인방”을 비롯 10명(십상시:十常侍)과 서울 강남의 JS중식당에서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국정을 농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정윤회 문건이 증권가에 나도는 “찌라시(소문 퍼트리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박 경정의 전 상관이었던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은 이 문건의 신뢰도가 60%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작년 8월 박 대통령으로 부터 승마선수 정씨 딸과 관련해 문체부 국·과장 교체를 지시 받았다면서 정씨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정씨가 “오래전에 곁을 떠나 연락이 끊긴 사람”이라고 단언, 정씨 개입을 7일 부인했다. 또 비서관 “3인방”에 대해서는 “말썽 일으킬 사람들이 아니다”고 두둔했다. 검찰도 조사결과 정씨와 청와대 비서 “3인방”과의 JS중식당 모임은 없었다고 했다. 정씨는 10일 처음 나타나 국정개입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정윤회 문건은 박 경정이 시중에 떠도는 루머를 사실 여부 확인 없이 받아쓴 부실 첩보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정윤회 문건은 초대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이명박에 이르기 까지 국정을 농단했던 “문고리 권력”을 떠올리게 했다. 정씨 풍문은 진위 여부를 떠나 지난 날 이기붕, 차지철, 전경환, 박철언, 김현철, 권노갑, 노건평, 이상득 등의 월권 추태를 상기시켰다. 정씨는 박 대통령이 국회에 처음 진출했던 1998년부터 2004년 까지 입법보좌관 및 비서실장으로 박 대통령을 오래 섬겨온 인물이다. 그러나 정씨에게는 박 대통령을 떠난 후 부터 “숨은 실세” “비선 실세” “그림자 실세“라는 소문이 따라다녔다.

정윤회 문건은 박 대통령의 권력핵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앙심에 찬 보복성 폭로, 오랜 동안 쌓인 국민의 “문고리 권력” 피해의식 작용, 박 대통령의 폐쇄적 국정과 사적인 인연 인물 신뢰 성향, 등이 빚어낸 해프닝(싱겁게 끝난 일)같다. 확인되지 않은 정윤회 문건으로 나라가 한동안 떠들썩 했던 배경에는 저 같은 세 가지 연유가 깔려 있다.

첫째, 정윤회 문건을 사실로 혼돈케 한 배경은 조응천 전 청와대 비서관이 60% 신뢰할 수 있다고 밝혔고,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도 정씨가 박대통령을 움직여 문체부 국·과장 교체에 개입한 것으로 증언한 데 기인했다. 그들의 정씨 관련 증언은 자신들이 비서관과 장관직에서 일찍 해임된 데 대한 불만과 앙심의 표출로 유추된다. 보직 해임에 대한 반발일 수 있다.

둘째, 정윤회 문건의 진위가 가려지기도 전에 국민들이 사실로 단정한 데는 오랫동안 쌓인 피해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국민들은 수십년에 걸쳐 “문고리 권력”에 질렸고 분노했다. 여기에 정윤회 문건이 보도되자 국민들은 검찰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기도 전에 과거 피해의식에 젖어 정씨를 “문고리 권력” 실세로 속단해 버렸다.

셋째, 박 대통령의 폐쇄적 국정 방식과 사적 인연에 의한 인물 발탁 성향이 자초한 부작용이다. 박 대통령은 2인자 부각을 경계하면서도 핵심 인물을 기용할 땐 능력보다는 “써본 사람” 또는 과거 사적 인연을 중시하며 개방보다는 폐쇄적으로 국정을 주도한다. 과거 인연을 맺은 정윤회씨가 “비선 실세”로 뜬 것도 박 대통령의 폐쇄적인 국정과 인연의존에 기인했다. 앞으로도 박 대통령이 과거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문고리 권력” 풍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박 대통령은 권력핵심 기용에서 인연 아닌 능력 본위로 선발해야 하며 국정 주도에서 폐쇄적이 아닌 개방으로 가야 한다. “문고리 권력” 루머를 원천 봉쇄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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