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언론의 집중 포화가 퍼부어지고 사람 두셋만 모이면 그를 향한 팔매질이 멈춰지지 않는 가운데서 또 한 모퉁이의 팔매짓을 보탤 생각이 없었다. 다만 이 기회에 꼭 던지고 싶은 화두가 있다. 이번 조현아 씨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대한민국 구조가 실로 망국적이라는 표현을 안 할 수 없다.
자식을 잘못 키웠느니, 기업 오너들의 갑(甲)질이 사회를 양극적으로 가르고 있느니 하는 따위 소리들은 이제 의미마저 부여받지 못한다. 지난 12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서울 공항동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출두하기 한 시간여 앞둔 시각이었을 때 조 전 부사장의 동선 파악을 위해 건물 이곳저곳을 살피던 대한항공 관계자들이 하고 다녔다는 짓거리가 기가 막혔다. 건물 경비원에게 조 씨가 쓸지 모르니 여자화장실 청소를 다시 한번 해달라고 했다는 기사가 오늘의 우리 대기업 환경을 웅변하고 남았다. 결국 작지만 깨끗하게 정돈된 화장실을 청소아주머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불려나와 다시 일을 하고 돌아갔다는 얘기였다.

조사 받는 현장에는 모든 직함에서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는 그를 수행키 위해 최고위 임원까지 출동한 40여명의 대한항공 관계자가 나와 있었다고 했다. 이 기사를 본 독자들 생각이 과연 어땠을까. 그녀가 조사를 받고 있는 시각엔 피해자인 박창진 당시 사무장 집에 대한항공 관계자들이 찾아와 ‘욕을 한 적은 없고 스스로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진술하도록 요구했다고 당사자가 직접 폭로했다.

한마디 변명 못하는 주종(主從)문화의 생얼굴이 나타났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맏딸인 조 전 부사장은 입사 7년 만인 31세 때에 회사 임원 배지를 달고 작년에는 출산을 두 달 앞둔 몸으로 미국 출국을 해 ‘원정출산’ 논란을 일으켰다. 오너 가족에게 왕국이 된 대한항공이 지난해 어느 땐가는 ‘라면 서비스’ 때문에 항공기 승무원을 폭행한 포스코에너지의 임원에겐 회사 고발조치로 미국연방수사국의 조사를 받고 회사에서 해임 당하도록 했다.

국가와 국민의 지원에 힘입어 성장한 기업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사하고 국가관이란 게 있기나 한지 의심된다. 오너가의 천박한 행태가 늘 문제되는 나라에서 ‘글로벌 기업’은 그림 속 떡일 뿐이다. 지금은 조양호 회장이 나서서 딸의 행동을 나무라고 보직을 사퇴시켰지만 언제 또 조 전 부사장이 슬그머니 컴백하게 될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

대기업 오너 자리가 거의 예외 없이 오너 자식들에게 세습되는 한국적 ‘후계자 리스크’는 소위 황태자와 황녀들 사이의 인맥문화를 진화시켰다. 이 귀족그룹의 특권놀음은 이제 제3지대를 형성했다. 그렇지 않다는 게 오히려 물색 모르고 덜떨어진 촌놈 취급을 당하는 사회구조가 돼있다. 이번 조현아씨 사건의 수습과정에서 보여준 대한항공 수뇌부의 오너 일가에 대한 굴종은 한국 재벌문화의 민낯을 도저히 감출 수 없게 만들었다.

사고 후 대한항공은 처음 “기내 서비스를 담당하는 조 부사장의 정당한 권한 행사”였다는 낯 뜨거운 변명으로 사건을 어물쩍 덮어보고자 획책했다. 승무원, 사무장을 무릎 꿇리고 행패를 부린 것이 회사 부사장의 직권 행사라면 일부 소문난 대기업 강성 귀족노조의 회사 지배가치를 제외하고는 이 얼마나 기업의 갑을(甲乙)관계 어쩌고한 표현이 사치스러운 용어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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