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권 정보원 낮엔 신사, 밤엔 색 밝혀

정보협력과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익힌 후, 나는 캐나다와 루마니아 정보기관과의 정보협력 담당관으로 일했다. 도쿄에 주재하던 캐나다 정보기관(CSIS) 요원은 분기에 한 번씩 정보협력 차 서울에 들어 왔다. 그는 주로 북한 정세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루마니아 정보기관은 서울에 신임 파견관을 두고 있었다. 당시 대우 자동차가 루마니아에 크게 투자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우와 루마니아간에 인적 교류가 많았다. 대우 덕택에 루마니아와 정보협력이 잘 이루어졌다. 루마니아 정보기관을 통해 북한에 대한 핵심 정보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루마니아뿐만 아니라 기타 동구권 국가들과의 정보교류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동구권 국가들과 수교가 이루어지고 이들 국가와의 경제 교류가 점차 확대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구권 국가들은 우리의 경제개발 노하우와 경제적인 원조를 원했다. 우리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북한에 대한 접근력을 원했다. 우리가 주로 동구권 정보기관 간부들을 초청할 때가 많았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대우와 기아, 현대 자동차 공장을 견학시켜 주는 등 산업시찰에 데리고 다니는 일이 많았다. 재미 있었던 사실은 이들이 한결 같이, “대우자동차를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다음에 차를 바꿀 때는 반드시 대우차를 사겠다”고 스스럼 없이 얘기했다. “동구권의 다른 차들보다 대우차의 품질이 좋다”고들 했다. 처음에는 그냥 인사치레이겠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실제로 당시 동구권 국가들에 대우차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것 같았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우차의 품질이 가장 후진 걸로 알고 있었기에, 이런 얘기를 듣고 나로서는 실소가 나왔다. 실제 여러 자동차 공장들을 다녀 보면, 현대차나 기아차에 비해 대우차 공장은 어딘가 정리정돈이 안 되어 있고 어수선해 보였다.

외국 정보기관 사람들을 주로 많이 데리고 간 관광지는 경복궁, 민속촌, 경주, 제주도 등이었다. 내가 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골프 접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방문객들에게 줄 선물은 세심하게 골랐다. 주로 우리나라를 알릴 수 있는 토속 공예품을 선택할 때가 많았지만, 조금 중요한 방문객에게는 용봉향로의 모조품이나 신라 금관 모조품, 그리고, 고려청자 모조품 등이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외국 정보기관 사람들의 초청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는 주로 저녁 행사였다. 이들을 접대하면서 나는 팔자에도 없는 요정과 룸살롱을 출입하게 되었다. 최고의 음식점에서 술과 음식을 거나하게 접대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2차까지이어질 때가 있었다. 우리들 사이에서는, 이를 ‘특조’라고 불렀다. 아마 ‘특별조종’의 준말일 것이다. 이문동 시절에는 용산에 있던 『을숙도』라는 요정을 많이 이용했다. 내곡동으로 옮긴 후에는 강남역 근처의 『다보』라는 한식점과 여러 룸살롱들을 이용했다. 국내 수집관에 물어보니 당시 『지안』이라는 룸살롱이 잘 나간다고 해서 내가 소개하기도 했다. 그 후 이 술집은, “김현철과 그 아이들”과 “김홍업과 그 친구들”이 단골로 놀던 집으로 알려지면서 일약 유명세를 탔다. 최근에 문을 닫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선배들은 특조 시에 아가씨들을 불러다 놓고 주의사항을 전달하곤 했다. 이런 일을 하다 보면 마치 조방이 된 듯한 자괴감이 들 때가 있었다.

적성에도 맞지 않고 한마디로,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선진국 정보기관 간부들은 발목이 잡힐까 우려해서인지, 특조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반면, 후진국 정보기관 사람들일수록 특조에 홀딱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동남아 국가들의 정보기관 인사들도 특조를 특별히 밝히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이슬람권 국가의 정보기관 사람들은 낮과 밤의 생활이 달랐다. 그들은 낮에는 술과 여자를 멀리하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밤이 되면 노골적으로 여자를 요구하곤 했다.

한 번은 옆자리에서 일하던 오 모 선배가 중앙아시아 어느 나라의 정보기관장 일행을 맞은 적이 있다. 소비에트 연방에서 갓 독립한 나라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관계 개선과 정보협력에 관심이 많은 나라였다. 이들 나라들은 정정이 불안정하고 권력기반이 취약하기 때문에 정보기관장의 권력이 절대적인 나라였다. 정보기관장을 그 나라의 2인자 정도로 보면 틀림 없었다. 그들은 술도 화끈하게 마시고 놀기도 화끈하게 놀았다고 한다. 자리가 파하고 일행들이 모두 호텔로 돌아갔는데, 갑자기 여자 생각이 났던 모양이었다. 당시 현지에 나가 있던 파견관도 같이 따라 들어와 호텔에 함께 묵고 있었는데, 그들은 파견관에게 2차를 요구했던 모양이다. 파견관은 최대한 이들을 잘 모셔야 이후의 파견관 생활이 순탄해지니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전에 준비가 안돼 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아가씨를 찾으니 황당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천호동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밤늦은 시간에 천호동으로 진출했다고 한다. 몸을 파는 아가씨들은 대체로 외국 손님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 데다, 변태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애국심을 발휘하여 봉사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화대를 더 얹어 주어야 한다. 단골집이 필요한 이유가 그런 데 있을 것이다. 천호동으로 진출한 일행에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각자 아가씨를 데리고 호텔 방으로 헤어졌는데, 아가씨 한 명이 혼비백산 기겁을 하고 도망친 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후에 들으니, 이 낯선 외국 아저씨가 자꾸 ‘뒷마당’을 요구해서 겁이 나서 도망쳤다고 한다. 유목민의 후예라 그런지 이들에게는 계간의 습성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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