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정치 게이트의 주인공 "도둑맞은 CD의 출처는 이익치” 증언

2002년 3월과 11일 두 차례에 걸쳐 떼강도가 든 김영환씨의 평창동 저택.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이 지난 10월 20일 공개한 양도성예금증서(CD)가 무기중개상으로 알려진 김영완씨의 것이라는 증언이 나와 주목을 끈다. 주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조성설을 주장하며 그 근거로 100억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의 사본과 모 은행의 ‘발행사실확인서’를 함께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주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CD를 공개하며 “CD는 2006년 2월8일 발행돼 그해 5월12일이 만기로, CD 뒷면에는 발행사실 확인서가 붙어있다”며 “사본을 검찰에 제출할 테니 확인해 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주 의원은 이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또 주 의원은 “당시 검찰 관계자로부터 직접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관계있다는 증언을 들었으며 CD 사본등을 건네받았다”고 주장하며, 이날 국감장에서 해당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예고해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검찰은 이 CD가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일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검찰은 주 의원 측에 CD관련 정보를 제공한 제보자의 신원을 밝히라고 요청했지만 주 의원 측은 입을 굳게 닫고 있다.

검찰의 CD수사가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최근 구 정권 고위 관료 출신인 A씨는 [일요서울]과의 인터뷰에서 “그 CD는 김영완의 집에서 도난당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증언했다.

A씨는 “내가 현직에 있을 당시 본 경찰보고서에 따르면 2002년 3월과 11월에 두 차례에 걸쳐 김영완씨 집에 도둑이 들었다. 이때 없어진 금액은 정확하지 않다. 180억원 정도라는 말도 있고 300억원이라는 소문도 있었다”며 “김영완씨 측이 정확한 피해액수를 정확히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A씨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그 CD가 어떻게 주 의원의 손에 들어가게 된 것일까.

이에 대해 A씨는 “아마 김영완씨의 집을 턴 도둑으로부터 유출됐을 것으로 본다”며 “도둑은 CD를 훔친 후 일부를 따로 처분했다고 들었다. 또 일부는 도둑을 조사한 검찰에서 입수했다는 소리도 있었다. 내 생각에 주 의원의 CD는 도둑을 통해 검찰이 입수한 것이 다시 외부로 흘러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A씨의 증언을 뒷받침하듯 주 의원은 CD를 공개한 날 대검찰청 국정감사와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2006년 3월 초 전직 검찰 관계자로부터 100억원짜리 CD에 대한 제보를 받았다”면서 “‘모 은행 관계자가 CD 사본을 제시하면서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인데 사법 문제가 되면 증언도 하겠다며 제보해왔다’고 당시 검찰 관계자가 말했었다”고 주장했다.


검찰 “문제의 CD는 헛다리”

그러나 검찰은 문제의 CD를 입수한 바 없다고 밝혔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이날 국감에서 "(검찰이 비자금과 관련한) CD를 주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이 없고 그런 보고를 받은 적 도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전 검찰관계자가 검찰 정보통으로 잘 알려진 P씨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지만 주 의원 측은 “밝힐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주 의원이 입수한 CD에 대한 검찰 수사는 거의 마무리된 단계다. 검찰은 일단 CD가 DJ의 비자금과는 거리가 멀다고 잠정결론내린 상태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박용석 검사장)는 주 의원이 국정감사에 "DJ 비자금인지 확인해 달라"며 건넨 100억원 CD 사본을 추적한 결과, 실제 발행된 CD가 맞고 만기일에 현금화된 사실을 확인했다.

100억원짜리 CD의 발행처로 기재돼 있는 E사는 자본금 3억원의 주식회사로 등기부등본 상에는 부동산 건설ㆍ시행ㆍ임대 등의 사업을 하고 서울 종로타워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 의원은 페이퍼컴퍼니(서류상 회사)라고 추정했었다.

검찰은 E사 관계자 및 CD의 유통에 관련된 이들을 대부분 불러 조사를 마쳤지만 김 전 대통령의 관련성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수부는 주 의원에게 CD 사본을 건넸다는 전직 검찰 관계자를 조사한 뒤 최종 판단을 내릴 계획이지만 주 의원이 제보자의 신원을 알려주지 않아 거듭 신원 확인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주 의원이 제보자의 신원을 공개할 가능성은 낮아 사건은 해프닝으로 마무리 될 전망이다.

검찰의 CD 수사가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주 의원에 대한 고소사건으로 관심이 옮겨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 측은 주 의원이 대검 국정감사 다음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DJ 비자금 조성 의혹' 발언은 면책특권의 범위 밖이라고 판단해 10월 24일 주 의원을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김 전 대통령측은 “CD가 진짜든 가짜든 DJ와는 무관하다”며 “의혹을 해소해 정치권의 헐뜯기 폭로전을 종식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중수부는 조만간 결론을 내리면 조사 결과를 주 의원의 명예훼손 사건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김주현 부장검사)에 내려 보낼 예정이다. 주 의원 측은 "문제의 CD를 제보자가 법정에 나와 모든 의혹을 풀어줄 것“이라며 고소사건을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출신인 제보자가 증인으로 나설지는 확실치 않아 보인다.

A씨의 증언대로라면 문제의 CD는 김영완 - 도둑 - 전 검찰 관계자 P씨를 거쳐 주 의원의 손으로 흘러간 게 된다. 그렇다면 P씨는 어떤 인물이고 그는 왜 CD를 주 의원에게 넘긴 것일까.

추적한 바에 따르면 P씨는 구 정권 때 대형 정치사건을 주로 수사한 인물이다.


진본 CD의 주인은 누구?

P씨는 김영완씨 집 도난 사건을 직접 수사하지 않았다. 도난 사건을 수사한 이는 K검사로 알려졌다. 따라서 P씨는 다른 경로를 통해 문제의 CD를 입수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P씨는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에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P씨는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김영완씨에 대한 자료를 넘겨받았고 이 과정에서 CD를 입수한 것으로 추측된다.

전 국정원 출신인 B씨는 “P씨가 주 의원에게 CD정보를 제공한 게 사실이라면 CD는 김영완의 집에서 나온 것이 맞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 그렇다”며 “P씨가 가지고 있는 정보나 증거들은 거의 정확한 것들이다. 그러나 P씨가 이번에 증인으로 나설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B씨는 “김영완씨가 도난당한 금액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훨씬 큰 금액이다”라며 “도난사건에 대해선 대형 정치게이트의 주인공인 L씨가 잘 알고 있었다. L씨는 김영완의 CD가 이익치씨의 것이라고 했다. 이익치씨가 L씨에게 직접 말해줬다고 한다”고 밝혔다.

B씨는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사가 증거로 CD를 입수했다는 소릴 들었다. 우리(국정원)가 내용을 파악하려했지만 검찰에서 이를 철저히 숨겼다. 아직도 검찰은 이에 대해 공개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김영완씨 집 도난사건은?

김영완씨 평창동 집 도난 사건은 사건이 발생한지 일 년 후에야 비로소 수면위로 드러났다.

이 사건은 무려 7명의 떼강도가 거물급 사업가의 집을 턴 것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언론은 당시 100억원이 도둑맞았다고 보도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이 일반에 알려진 것은 김씨가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비자금 수수 의혹과 관련해 돈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을 때였다. 김씨는 현대 비자금 150억원을 세탁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떼강도들은 당시 이 집 운전기사였던 40살 김모씨로부터 집에 거액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또 다른 쪽에선 가정부와 강도 4명이 짜고 일을 벌였다는 소리도 들린다.

경찰에 따르면 도둑들은 김씨와 가족들을 거실로 몰아넣고 금품을 빼앗았다. 일당은 현금 7억원과 미화 5만 달러, 100만원권 수표 24장, 그리고 90억원 상당의 채권과 양도성 예금증서를 훔쳐갔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두 달 여 만에 일당 7명 가운데 6명과 운전기사 등 7명을 붙잡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때 사건을 수사한 서대문경찰서는 도난당한 금품 가운데 59억원 상당의 채권과 양도성 예금증서는 회수했다고 밝혔다. 범인들이 이미 써버린 현금과 수표, 그리고 명동의 사채업자 손에 들어간 채권 31억원은 회수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았다. 피해자인 김씨 측이 이 사건을 은폐하려한 정황이 감지돼 많은 의혹을 낳았다.

김씨는 범인들과 공모한 것으로 알려진 운전기사를 위해 변호사를 고용해 주고 법원에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수사기관에서도 이 사실을 외부에 철저히 비밀로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일당 중 한명이 경찰관들과 양주 파티를 벌였다는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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