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만명 8조원대 희대의 다단계 사기극

1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빼돌려 달아난 일당들. 경찰은 달아난 이들의 소재를 쫓고 있다.

제 2의 경제위기로 나라 전체가 침울한 가운데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다단계 사기사건이 발생했다. 대구경찰청은 전국적으로 수만 여명의 투자자를 끌어 모아 수조원대 피해를 입힌 문제의 불법다단계 업체를 적발하고 사기에 가담한 주범들을 추적하고 있다고 지난 20일 밝혔다. 경찰은 이 회사 대표 권모(48)씨를 구속하고, 이 조직의 실질적 우두머리인 조희팔(51)씨 등 임직원 10명에 대해 출국금지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이 업체 대표로 알려진 조씨는 이미 종적을 감춘 상태다. 경찰은 조씨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는 경찰은 조씨가 중국으로 밀항했을 가능성도 있다 보고 주변인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은 그 피해액이 약 4조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2006년 발생한 '제이유'사건 피해 규모보다 2배 이상 클 뿐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피해액수까지 합하면 피해규모는 이보다 더 커질 전망이어서 후폭풍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사건은 조씨와 권씨 등은 2006년 10월 대구 동구 신천동에 'BMC'라는 회사를 차리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공기청정기나 안마기 등 건강용품을 1대당 440만원에 구입하면 이를 목욕탕이나 PC방 등에 대여해 생기는 이익을 배당금 형식으로 8개월 동안 581만원씩(수익률 32%) 나눠 준다며 회원을 모았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이렇게 유혹해 약 2년 동안 무려 2만5000여명을 끌어 모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피해자가족 모임(피해자모임)의 관계자들은 피해자가 적어도 8만 명에 이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모 포털사이트에서 피해자가족 모임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운영자(ID:건곤일척)는 “이번 사건은 전국에 걸쳐 피해자를 생산한 사건이다. 피해자들이 주변에 피해사실을 밝히길 꺼리고 있어 정확한 피해자수와 피해액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며 “우리가 파악하기로 피해자수는 8만명 이상이고 잠재피해자수까지 합치면 실제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해자 실제론 더 많아

경찰에 따르면 조씨 등 일당은 배당금을 8개월 동안 166차례에 걸쳐 한번에 2만5000∼4만원씩 계좌에 넣어주는 수법으로 투자자들의 의심을 지웠다. 그러나 일당들은 지급된 배당금을 다시 투자하도록 권유했고 투자자들은 그대로 따랐다. 때문에 투자자들은 실제 이익 없이 투자금만 고스란히 날렸다.

이렇게 당한 피해자들은 대부분 평범한 가정주부였으며, 1인당 적게는 500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억 원까지 투자했다. 경찰은 피해자 수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고 다른 피해자들을 찾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의 수가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피해자들 대부분 이번 사건으로 재산을 모두 날린 주부들이다. 이들은 가족들에게 피해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하고 있다. 때문에 피해사실을 숨기고 있어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답답한 것은 경찰뿐 아니다. 피해자들도 답답한 가슴을 틀어쥔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피해자모임의 건곤일척은 “현재까지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희망이 조금씩 보이고는 있지만 경찰과 검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는다면 피해자들은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라며 “최근 업체 사장인 조희팔씨가 중국으로 밀항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인지 밝혀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조씨는 밀항하지 않았다. 조씨 뿐 아니라 가담자 모두 잡아들여야 한다”고 분개했다.

경찰은 조씨로 보이는 인물이 최근 중국으로 밀항한 것으로 파악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밀항소문 조씨 정체 미스터리

충남 태안 해양경찰서는 최근 김모씨 등 7명을 마약거래 용의자로 붙잡아 조사한 결과, 조씨로 보이는 인물을 중국 선박에 넘겨줬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김씨 등은 경찰에서 “지난 10일 공해상에서 ‘조 사장’이라는 사람을 중국 선박에 넘겨줬는데, 나중에 수배전단을 보고서야 그가 문제의 다단계 업체 사장 조씨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경찰은 조씨가 실제로 밀항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경찰은 조씨의 밀항 사실이 확인되는 대로, 인터폴을 통해 조씨를 수배하고, 중국 정부와 합동으로 밀항 조직도 수사할 예정이다.

이처럼 사상 최대 규모의 다단계 사기극이 벌어지자 이 조직의 최고 위치에서 ‘회장님’으로 불려지던 조씨는 어떤 인물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피해자들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조씨는 경북 영천 출신으로 암흑세계와는 거리가 먼 다소 의외의 인물이다. 조씨는 전과도 없고 특별히 사업을 크게 한 적도 없으며 정치권이나 재계 인사들과의 친분도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곤일척은 [일요서울]과의 전화통화에서 “조씨를 제외한 나머지 사기 가담자들은 대부분 동종전과자들이거나 피라미드 사업을 전부터 해온 이들로 확인됐다”며 “조씨가 의외로 깨끗한 인물인 까닭은 그가 바지사장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씨는 업체 운영에 관여한 바가 거의 없다. 실질적인 운영자 그룹은 따로 있었다. 이는 회원 대부분이 아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조씨는 도피 직전까지 투자자들로부터 끌어 모은 돈으로 외제차를 구입해 타고,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호화스러운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건곤일척은 조씨 밀항설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최근 조씨가 밀항했다는 소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조씨 뿐 아니라 다른 일당들도 제 3국으로 도주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며 “하지만 아직 정확히 확인된 사실은 없다. 개인적으로 조씨는 밀항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조씨의 차에서 여권이 발견됐는데, 여권을 차에다 두고 간 것은 해외도주를 암시함으로써 수사에 혼선을 주고 추적을 따돌리려는 의도인 것 같다. 조씨는 분명 국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빼돌린 현금을 고스란히 국내 어딘가에 숨겨둔 것으로 보이는데, 그 돈을 두고 해외로 달아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설명했다.


수조원의 돈 어디로

건곤일척에 따르면 일당은 7·8·9·10월 4개월에 걸쳐 돈을 집중적으로 빼돌렸다. 단기간에 걸쳐 수조원의 돈을 집중적으로 빼돌리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다단계 투자는 모두 현금으로 이뤄진다. 이 돈을 빼돌린다면 현금의 부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조씨 일당은 8조원의 돈을 챙겨 달아났다. 그렇다면 이 돈을 빼돌리는 데는 적지 않는 수의 가담자가 있을 것이고 현금 보관 장소도 여러 곳에 분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들은 적어도 50여명의 센터장들이 이번 사건에 직접 관련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센터장은 각 지역을 관리한 각 지방에 분포한 지역 사무소 실무 책임자다.


수사당국 왜 단속 늦었나

건곤일척은 “일반적으로 피해자들 사이에선 돈을 빼돌린 가담자가 50여명선이라고 알려졌지만 내가 파악하기론 80여명 정도가 빼돌리는데 직접 가담했고 그 밑으로 수백 명의 조력자들이 있다. 현금은 센터장들과 그 수하들이 모두 분산보관하고 있는 게 거의 확실하다”고 말했다.

또 그는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 다 알지 못하지만 대충 알고는 있다. 이런 사실을 언론에 알리려고 하자 일당들은 나에게 10억 원을 제안해오며 내 입을 막으려 했다. 이번 사건은 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고 수만 명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10억 원이 아니라 수천억 원을 준다 해도 저들의 만행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씨 일당이 세운 불법 다단계 회사에 투자했다 낭패를 본 투자자들은 거의 넋을 잃은 상태다. 투자자들 중엔 수억 원의 돈을 넣은 지 불과 2주만에 사건이 터져 돈을 모조리 날린 이들도 있다.

돈을 잃은 투자자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의 70%는 가정주부들이지만 그 외에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인사 뿐 아니라 평생 모은 돈을 투자한 노년층, 학자금을 투자한 20대 대학생도 있다. 혼자만 투자해 돈을 잃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가족·친척들을 끌어들여 투자했다 집안이 통째로 빚더미에 오른 이들은 하루하루 지옥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 70대 투자자는 평생 농사지어 번 돈을 전부 넣었다가 10원짜리 하나 남기지 않고 모두 날렸다.

사실 이번 사건은 수개월 전부터 이미 예고됐었다. 조씨 일당의 사기행각을 어렴풋이나마 눈치 챈 회원 중 일부가 인터넷에 그들의 사기행각을 알렸다. 또 10월경엔 이들에 대한 수사를 의뢰한 회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일부 피해자들 사이에선 “경찰이 조금만 수사를 일찍 진행했어도 이렇게 많은 피해자가 발생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경찰을 원망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단속당국은 왜 발빠르게 일당을 검거하지 못했을까.

금융감독원은 지난 4월 영남 지역에서 벌인 이들의 불법 유사수신행위를 포착하고 이를 대구경찰청과 부산·인천 경찰에 ‘다단계 업체의 범죄 혐의가 있다'고 통보했다. 이를 접수한 경찰은 수사를 진행했고 지역센터 중간관리자들을 붙잡아 조사했다. 중간관리자들은 소액 불법 유사수신이라고 주장하며 상부조직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소액이 들어있는 계좌를 본 경찰은 당초 이 사건을 크게 다루지 않았다. 이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건곤일척은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일부러 늑장수사를 하거나 사건을 은폐한 것이 아니다. 말하자면 초동수사 실패였다. 사건을 처음부터 철저히 파헤치지 못해 일당들이 돈을 챙겨 달아나는 시간을 주고 말았다”고 말했다.

건곤일척은 당장의 일보다 앞으로의 일이 더 걱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금은 그래도 사기꾼들을 잡으면 돈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사건이 장기화되면 희망이 퇴색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늘 것”이라고 우려했다.

건곤일척은 “피해자들은 대부분 무일푼신세가 됐다. 그런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경제적 압박이 심해질 것이고 내년 1월~3월 사이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삶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태가 속출할 것이다. 이런 점을 봐서라도 하루빨리 정부가 이번 사건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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