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니 픽쳐스’가 제작한 영화 ‘더 인터뷰’는 김정은 북한 로동당 제1비서가 자신이 평양으로 불러들인 두 명의 미국 언론인들에 의해 살해되고 북한이 해방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실제로 독재자 김정은의 운명이 4년여 전 참혹하게 최후를 맞이한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를 닮아가는게 아닌가 싶어 주목된다. 두 사람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다.

카다피는 42년간 장기 집권했고 자신에 대한 우상화를 강요했다. 그는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혔고 2009년 유엔총회 연설 도중 자신을 “왕중의 왕”이라고 자칭했다. 그는 프랑스의 루이뷔통 선글래스를 즐겨 쓰면서 “내 미래는 너무 밝아서 가리개가 필요”하다고 떠벌였다.

그러나 2010년 말 아랍권에 독재타도 민주화 열풍이 불면서 리비아 국민들도 카다피 축출에 나섰다. 2011년 10월20일 카다피는 반란군에 쫓겨 둥근 콘크리트 참호 속에 숨어 있다가 잡혔다. 성난 반군들은 생포한 “왕중의 왕”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다니며 사정없이 주먹으로 치고 발로 걷어찼다. 그러는 과정에서 흥분한 한 반군이 카다피의 머리에 여러 발의 총을 쏴 잔혹하게 사살했다. 그의 시신은 한 정육점 냉동실에 보관돼 시민들에게 전시되었다.

김정은도 20대 나이로 권력을 잡았고 “최고 존엄”으로 우상화되었으며 3대에 걸쳐 67년째 집권하고 있다. 카다피는 27세 때 동료 장교들과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김정은은 김정일이 사망하자 28세 나이로 북한 최고 권력에 올라 카다피처럼 천방지축 날뛴다.

김정은도 카다피와 같이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혔고 정적을 무자비하게 처형한다. 김은 북한 권력 제2인자였던 고모부 장성택을 즉결처형하는 패륜과 잔혹성을 드러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장성택 측근 30명을 공개처형했다고 한다. 카다피는 정치범수용소 수감중인 죄수 1200명을 학살하는 등 정적들을 무참히 처형했다.

김정은도 반미를 선동한다는 데서 카다피와 같다. 김은 미국을 “미제 살인귀”라고 증오한다. 그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시켜 미국이 북한을 위협한다면 “악의 총 본산인 백악관과 펜타곤을 향하여...핵탄두 로켓을 발사하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북한은 영화 ‘더 인터뷰’가 “최고 지도자의 존엄에 대한 용서할 수 없는 조롱”이라며 ‘소니 픽쳐스’사를 사이버 공격했다.

카다피도 반미 운동에 앞장섰고 1986년 서베를린 미군 나이트클럽에 폭탄테러를 감행했다. 그는 1988년 승객 270명을 태운 미국 여객기 팬암(PanAm)을 영국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폭파시켰다. 김정일에 의한 1987년 대한항공 KAL 858기 공중 폭파를 연상케 한다.

카다피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받았던 것과 같이 김정은도 유엔의 제재를 받게 되었다. 카다피는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되었다. 김도 지난 12월22일 안보리의 북한 인권범죄 결의안 채택으로 ICC에 제소될 위기에 처해있다.

저와 같이 김정은과 카다피는 서로 닮은 점들이 많다. 그래서 김도 ‘더 인터뷰’처럼 외국인에 의한 살해보다는 반독재시위에 나선 자국 국민들에 의해 제거되지 않겠나 관심거리다. 그러나 중국이 김정은에 대해 불만을 품고는 있으면서도 6.25 남침 혈맹으로 북한을 옹호한다는 데서 김정은 타도는 쉽지 않다. 거기에 더해 김정은이 장성택 즉결 처형에서 보여주었듯이 정적과 주민을 잔혹하게 탄압하는 터이므로 민중봉기 가능성도 높지 않다.

하지만 1990년대 동구 공산독재 정권들이 주민들의 시위로 무너졌고 2010년대로 접어들어 카다피를 비롯 아랍권의 독재 권력들도 줄줄이 붕괴되었다. “최고 존엄”도 “왕중의 왕”처럼 반란군에 체포돼 처절하게 최후를 맞을 수 있다. 그날 비로소 북한 주민들은 굶주림과 탄압에서 벗어나게 된다. 진정한 남북 화해협력의 길도 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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