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법무병원 최상섭 원장이 본 ‘살인마 강호순’의 두얼굴


2006년부터 경기 서남부 지역을 공포에 몰아넣은 의문의 연쇄 실종 사건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됐다. 군포 여대생 A씨(21)가 참혹한 주검으로 발견된 가운데 범인으로 지목된 강호순(38)은 “내가 경기 서남부 지역에서 6명의 부녀자를 납치해 살해한 진범”이라고 자백했다. 경찰은 강씨가 지목한 암매장 현장에서 피해자 일부의 시신을 찾아냈다. 이로써 그는 유영철, 정남규를 잇는 최악의 ‘섹스 살인마’ 계보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미궁에 빠졌던 실종 사건은 3년여 만에 진범이 잡혔지만 남겨진 의혹이 여전하다. 3년 동안 흔적도, 증거도 남기지 않았던 강씨가 어째서 은행 CCTV에 찍히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른 것일까. 또 “부인의 죽음 뒤 충격으로 살해 충동을 느꼈다”는 그의 진술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신과 박사이자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 수장인 최상섭 원장은 “강씨의 범행 수법과 조사 당시 태도로 봤을 때 전형적인 ‘범죄형 인간’이다. 그가 범행 동기와 범행 과정 등을 거짓으로 둘러댔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강씨, 뛰어난 두뇌는 아닌 듯”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정남규의 심리검사를 담당했던 최상섭 원장은 강씨를 ‘냉혹한 사이코패스의 전형’으로 설명했다. 특히 수사관들 앞에서 불리한 질문에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여죄를 추궁하는 형사에게 ‘증거를 대라’며 큰소리를 치는 등 당당했던 강씨의 태도에 대해 그는 강씨가 ‘교활한 범죄인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최 원장은 “보통 범죄자들은 수사관들 앞에서 수치심을 느낀다. 그런데 일련의 상황에서 보듯 강씨는 상당한 냉혈한으로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경찰에 ‘증거를 대라’며 맞섰다는 것 자체가 자기방어에 대한 의지가 무척 강하다는 뜻이다. 이런 자들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핑계나 변명거리를 둘러대는 데 능하고 교활하다.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의 특징이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손가락에 콘돔을 끼고 현금인출기를 이용하는 등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 아래 움직였다. 수사팀 일각에서는 이 같은 치밀함을 근거로 강씨가 상당한 두뇌의 소유자라는 주장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러나 최 원장의 설명은 조금 다르다. 범죄 수법은 단순한 모방만으로 습득이 가능하기 때문에 치밀한 계획을 짰다고 해서 무조건 지능지수가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또 강씨가 은행 CCTV에 찍히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르며 자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 원장은 “강씨가 TV 수사물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범행 수법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지능지수가 높고 낮음의 차이가 아니다”며 “일반인이 이 같은 정보에서 흥미를 느끼는데 그치는 반면, 강씨와 같은 ‘범죄형 인간’은 습득한 정보를 그대로 ‘실행’에 옮긴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고 말했다.


“숨진 아내에 대한 원한, 복수심 있었을 것”

강씨의 진술 가운데 가장 미심쩍은 부분은 범행 동기와 관련된 부분이다. 그는 7명의 여성을 납치, 살해한 이유로 부인의 죽음을 꼽았다. 강씨는 “2005년 부인이 화재로 숨진 것에 충격을 받아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방황한 끝에 여자들만 보면 살인 충동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부인의 죽음이 여성들을 살해하는 동기가 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최 원장은 이 같은 강씨의 진술이 상당부분 꾸며낸 억지 주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보통 배우자가 죽었을 때 슬픔에 빠져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활동량이 감소한다”며 “드물게 공격적인 충동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 아내의 죽음 때문에 생면부지의 여성들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지나친 비약이다”고 말했다.

최 원장에 따르면 살인이나 폭행 등 강력 범죄를 일으키는 심리적 요인은 복수와 원한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배우자를 잃은 상실감이 파괴적 성향으로 비화됐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강씨가 범행 동기로 지목한 부인은 그의 네 번째 아내다. 경찰은 숨진 아내와 장모도 강씨가 살해했을 것이라는 강력한 심증을 갖고 있다. 강씨는 아내의 사망 보험금으로 4억원이 넘는 거액의 보험료를 챙겼다.

여기서 강씨가 “첫 번째 범행을 저지른 뒤 살인 충동을 억누르기 힘들었다”고 말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인이 숨진 것은 2005년 10월이고 경기 서남부 실종 사건이 처음 발생한 것은 2006년 12월이다.

강씨가 정말 부인을 살해했다면 그는 1년여의 ‘냉각기’를 거쳐 새로운 범행을 연속적으로 시도했다는 얘기다. 즉, 강씨가 연쇄살인을 저지르는데 있어 최초의 기폭제가 된 범행이 경기 서남부 사건이 아닌, 방화로 위장한 아내의 죽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 연쇄 살인범은 나름대로 정한 규칙과 패턴에 따라 범행을 저지른다. 희생자 선택부터 살해 방법, 시신을 유기하는 방식 등은 범인에게 있어 일종의 ‘신분증’이나 다름없다. 강씨 역시 여성만을 노리고 접근해 사물(스타킹 등)을 이용해 교살하고 비탈진 공터에 시신을 암매장 하는 ‘패턴’을 착실히 따랐다. 현재까지 강씨의 손에 희생된 것으로 확인된 피해자는 가장 최근 숨진 대학생 A씨를 포함해 모두 7명. 이 가운데 3명은 노래방 도우미였고 변을 당하기 직전 강씨와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섹스 살인마’ 강호순, 그는 누구인가

부녀자 7명의 목숨을 빼앗은 강호순에 대한 평가는 ‘성실한 가장’vs‘여자를 좋아하는 충동적 인물’로 극명하게 갈렸다. 1970년 충남 서천의 한 시골마을에서 3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강씨는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친 뒤 1989년 충남 부여의 모 농업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안산에 정착한 강씨는 트럭 운전사로 일하며 1992년 첫째 부인과 결혼해 아들 둘(15세, 13세)을 뒀다. 결혼 6년 만인 1998년 첫째 부인과 이혼한 강씨는 각각 다른 여성과 1999년 3월과 2003년 3월 연이어 결혼했지만 곧 헤어졌다. 6개월 간 결혼 생활을 했던 두 번째 부인과는 8살 난 아들을 두기도 했다.

2005년 5월 네 번째 부인을 얻었지만 같은 해 10월 부인과 장모가 화재로 숨졌고 강씨는 거액의 사망 보험금을 타내 의심을 샀다. 강간과 특수절도 등 전과 9범인 강씨는 마사지 학원을 다닌 뒤 2005년부터 1년여 동안 안산의 한 스포츠마사지업소에서 마사지사로 일했다.

강씨의 어린시절에 대해 고향 마을 한 주민은 “호순이 집은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살만 한 집안이고 호순이가 커서는 자주 집에 오지 않았다”며 “어릴 때 가끔 말썽을 부리고 거칠었지만 이렇게 끔찍한 짓을 저지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동네 사람들이 호순이 소식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5~6년 전 남편을 잃고 혼자 살고 있는 호순이 어머니는 두문불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가 근무하던 마사지업소 동료들은 “착실하고 건실한 청년이다. 강씨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과 일부 지인들은 “날카로운 인상을 갖고 있다. 주변에 여자가 많고 충동적이다”는 엇갈린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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