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 술법’ 꼽히는 기문둔갑 고수

할아버지 때부터 사용해오던 침은 김정구 원장의 내력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사용하던 나경. 나경은 풍수지리를 볼 때 사용하는 도구다.

동양학(東洋學)이라 이름붙일 수 있는 모든 술학(術學)을 통틀어 첫손에 꼽히는 기문둔갑(奇門遁甲). 제왕학(帝王學)으로 군림한 기문둔갑은 참모들이 갖추어야할 기본 학문이었다. 무협지에 나올 법한 호풍환우(呼風喚雨)하고 신출귀몰(神出鬼沒)한 신비스러운 술수(術數)로도 인식되어왔다. 그렇지만 그 학문의 심오하고 난해함으로 인하여 접근이 쉽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국내에 기문둔갑의 고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한국사회교육원 김정구 원장은 단연 돋보인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세계 경제가 공황의 나락으로 빠져들면서 한국의 미래도 암울하기만 하다. 기업이나 개인은 모두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앞날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럴 때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래를 예측하는 동양의 술학 가운데 기문둔갑(奇門遁甲)은 최고의 정확도를 자랑한다.

기문둔갑의 고수 김정구 원장은 “기문둔갑은 원래 전쟁에서 병가의 술법으로 발전했으며, 제갈공명 등 역사상의 모든 참모들이 이 학문의 대가들이었다. 제왕의 학문이라는 별칭까지 얻게 되었으니 그 학문의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기문둔갑 대가들은 그 옛날 주나라 무왕과 함께 은나라를 몰락시킨 강태공, 한량에 불과하던 유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한 한나라의 장량, 삼국지의 영웅 제갈공명, 주원장을 도와 명나라를 건국한 유백온 등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기문둔갑이 바로 우리 동이족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황제 헌원(軒轅)이 치우천왕에 연전연패하자 우리 동이민족의 자부선인(紫府仙人)을 만나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 기문둔갑을 익힌 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 원장은 “자부선인으로부터 이어진 기문의 맥은 고구려 을파소(乙巴素), 을지문덕, 연개소문, 김유신 장군의 손자인 김암(金巖)에 이어, 조선의 이율곡(李栗谷)으로 이어졌다. 화담 서경덕, 토정 이지함 선생이 기문에 능해 기문둔갑술이 담정학(潭亭學)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밝힌다.

그런데 기문둔갑으로 무엇을 알아볼 수 있을까. 인간의 머리로 추산해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추산해낼 수 있다. 아이를 임신하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고 싶으면, 기문둔갑을 보면 된다. 승진하고 싶으면 기문둔갑을 꺼내서 추산해보면 된다. 몸에 불치병이 걸렸는지 여부도 기문둔갑으로 풀어낼 수 있다.

또한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살아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준다는 점도 다른 술법과는 조금 다르다. 죽을 곳에서도 살아날 수 있는 이른바 생문(生門)을 제시해준다는 것이다. 기문둔갑의 이런 특성을 실감할 수 있는 전설이 기문둔갑계에 전해오고 있다.

베트남전쟁 때의 일이라고 한다. 한국군 OO부대가 베트콩들의 포위망에 걸려 전멸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철옹성같은 포위망을 빠져나온 유일한 생존자가 있었다. 그는 기문의 고수였다. 기문을 뽑아보고 생문 방향으로만 탈출, 사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김정구 원장은 어떤 인연으로 기문둔갑을 접하게 되었을까. 김 원장도 나름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 서당을 하던 증조부는 천문지리에 능했고, 한의학에 밝았다. 증조부는 묘소만 보고도 관중의 시신의 머리가 어느 쪽으로 향해있다는 것을 알았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자랑했다고 한다.

증조할아버지의 맥을 이은 아버지 김교성 씨는 천문지리, 관상, 침술 등을 더욱 발전시켰다.

“아버지는 풍수지리에도 밝았다. 산에 묫자리를 잡으러 들어가면 먼저 산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그러면 산신께서 길을 확 밝혀주셨다고 한다. 저절로 이끌리듯이 산길을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묫자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의 부친은 서울로 상경한 뒤에는 사암침법에 몰입했다고 한다. 업혀 들어왔던 소아마비 환자가 멀쩡하게 걸어 나가는 신침(神針)으로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한의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 침술로 이름을 얻는 일은 오히려 장애가 된다.

“아버지는 실력 때문에 곤란을 겪는 일이 더 많았다. 환자들이 많이 찾게 되자 그것을 시샘한 사람들이 무허가 진료행위를 한다고 몰래 투서질을 하여 경찰서를 제집 드나들듯이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밀려드는 환자들을 외면하지 못해 치료를 계속했다. 당시에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지만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심정이 가슴에 와 닿는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가문에 전해오는 술법들을 전수받은 김정구 원장은 동서침구학회 이관호 회장, 동의학회 이효구 회장, 스페인에서 침구대학을 건립한 조훈 회장 등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침술의 경지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그는 현재 침구학회에서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갖고 있는 동의학회 4대 회장을 맡고 있다.

그렇지만 불행이도 그는 침술을 활용하지 않는다. 아니 사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의사 자격이 없는 사람은 침술을 시술할 수 없는 것이 국내법이다. 스페인 침구대학에서 4년 과정을 마쳤지만 국내에서는 침술을 시술할 수 없다.

기문둔갑을 접한 것도 침술을 통해서였다. 우연한 기회에 기문침법에 관한 고서를 접하게 됐고,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 남산도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기문둔갑을 배웠다. 기문침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전해지지 않은 한국 고유의 침법이지만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상태나 마찬가지다. 중국 연변지역에서 일부 시술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간간히 들려올 뿐이다.

“10여 년 전에 안산에서 한의원을 하시는 70대 어르신을 만난 적이 있었다. 이 분은 기문침으로 정신병 환자를 고칠 정도로 실력자였지만 후대를 양성하지는 못하셨다고 한다. 인연있는 사람만 배운다는 기문의 속설이 입증된 씁쓸한 순간이었다.”

김정구 원장은 누구나 쉽게 기문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런 일들을 접하면서라고 한다. 그는 일반이 접하기에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에 기문의 비결들이 사장되는 것이 아쉬워 교육의 공간을 마련했다. 서울 종로5가에 자리한 한국사회교육원(02-2268-1075)에서는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기문둔갑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명리학에 비해 명쾌하고, 세밀한 미래 예측이 가능한 장점이 있는 기문둔갑. 1년 신수를 보거나, 궁금한 것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뽑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런 속 시원한 추산 때문에 세인들로부터 신비한 술법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단점도 있다.

김원장을 통해 기문둔갑 강의를 들어온 박은숙 씨는 “김 원장님의 강의는 기문둔갑의 핵심을 명쾌하게 짚어준다. 그리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재미있게 진행하기 때문에 인기가 좋다. 기초 과정은 6개월 정도, 임상 6개월, 모두 1년 정도만 공부하면 기문둔갑을 어느 정도 활용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고 말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미리 읽어내는 남다른 흥미로움도 있겠지만, 잘만 익히면 미래의 직업을 준비하는 과정으로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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