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정상진 칼에 찔리는 악몽 시달려” 정신적 고통 호소

지난해 11월 4일 대책위 대표를 맡은 서진씨의 친오빠 서성철씨(24)가 경찰 및 소방 당국의 당일 대응 및 수사 과정에 문제가 있다며 관련 자료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위) · 난자당한 복부에 대해 설명하는 김대영 씨.

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이 발생한지 반년이 지났다. 당시 사건의 피해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건 발생 초기, 세간의 관심은 살인마 정상진과 피해자들에 쏠렸다. 하지만 언론은 중국동포 피해자만 조명했다. 정씨의 칼에 희생된 다른 피해자들은 고시원에 살았던 그들의 삶처럼 외면당한 채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이 사건으로 사망한 이들은 모두 6명이다. 조선족 3명, 내국인 3명으로 공교롭게도 반반이다. 그 외 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중 1명은 정씨의 칼에 여러 차례 찔려 인사불성 상태까지 갔다가 대수술 끝에 겨우 목숨을 건졌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조선족 피해자 유가족들은 모두 이미 중국으로 건너간 상태. 남은 이들은 내국인 부상자들과 피해자 유가족들이다. 아무런 이유 없이 고시원에 살았다는 이유로 끔찍한 참변을 당한 부상자들과 유가족들은 아직도 그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부상자들 중 일부는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세를 호소하고 있다. 이따금씩 되살아나는 공포감 때문에 정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또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것도 슬픈데 사법당국과 고시원 측의 외면에 두 번 울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피해자들을 만나 이들의 근황과 사건 마무리에 얽힌 뒷얘기를 들어 봤다.

“아직도 내 딸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잘 실감이 안 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 내 딸이 죽고 없구나’하는 것을 점점 더 진하게 느끼게 되요. 이젠 보상이고 뭐고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내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게 비통할 따름입니다.”

2008년 10월 20일 발생한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으로 천금 같은 딸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서병호씨는 이렇게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사건 당일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말한다. 서씨는 마포에서 작은 일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사건 당일, 한창 바쁠 때인 저녁 시간, 서씨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걸어온 쪽은 경찰서였다. 왠지 불안한 느낌이 서씨의 뇌리를 스쳤다. 경찰은 전화로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았다. 다만 딸에게 안좋은 일이 생긴 것 같으니 확인해 달라고했다.

“딸애가 죽은 지 10시간이 다 돼서야 경찰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무슨 절차가 그리 복잡했던 것인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딸이 현장에서 칼에 찔리고도 한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습니다. 바로 병원에 실어갔으면 살았을 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게 얼마나 한이 되는지 모릅니다. 살기위해 발버둥 치다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간 딸애가 죽는 그 순간까지 얼마나 무서웠겠습까.”

서씨는 딸이 병원치료라도 받아보고 죽었다면 이렇게 한스럽진 않을 것이라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당시의 정황은 이랬다. 서씨의 딸은 정씨의 칼에 여러 번 찔리고도 살기 위해 힘겹게 몸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하지만 경찰이나 주변인들이 구급차를 부르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아 허망하게 꽃다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서씨에 따르면 경찰들이 딸을 방치했기 때문에 사망했다는 것이다. 부검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딸의 사망원인은 과다 출혈로 인한 쇼크였다. 출혈을 막고 병원으로 빨리 옮겼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이름의 사형

“자식을 가진 부모들이 다 그렇겠지만 저 역시 딸을 정말 귀하게 키웠습니다. 딸애 오빠인 아들도 두 명 있지만 여자애이기 때문에 더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참 효심이 깊었어요. 저를 도와준다고 가게 나와서 일도 열심히 했지요. 그런 모습들이 자꾸 눈에 밟혀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중국으로 유학 간다고 아르바이트 때문에 고시원으로 들어갔다가 그런 참변을 당했으니 애비로서 너무 미안하고 자괴감을 느낍니다.”

서씨는 조만간 일식집을 정리할 계획이다. 딸이 일을 도와줬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도저히 딸을 잊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고민도 되지만 서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끔찍한 악몽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서씨는 잘 안다. 그래서 서씨는 일을 정리하고 한동안 산에 오르며 마음을 정리할 생각이다.

서씨는 말한다. 살인마 정상진은 사형을 받겠지만 가족을 잃은 우리도 사형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또 서씨는 경찰에 분노를 표시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난 뒤 저는 딸의 죽음이 너무도 안타까워 정씨뿐 아니라 고시원 주인 등 관련 책임자들에게 어떻게든 책임을 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고시원 주인을 고소·고발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사건을 적당히 마무리하자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너무 화가 나서 ‘당신 가족이 개죽음 당해도 그런 소리 할 수 있느냐’고 소리쳤습니다. 큰 아들도 경찰이 사건을 그만 덮어버리자고 하는 말을 듣고 분개해 경찰과 멱살잡이를 했어요. 경찰은 정씨를 잡았으니 피해자들은 더 상대할 가치가 없다는 태도였습니다. 기가 막히더군요.”

유가족들은 고시원 주인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지만 형사는 무혐의 처리됐고 민사는 계속 진행 중이다.

유가족들은 고시원 주인으로부터 적어도 ‘미안하다’는 사과정도는 듣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건의 직접적인 책임은 없어도 도의적인 책임을 피할 수 없는데도 사건과 관련해 유가족들에게 전화 한 통 없었다는 게 유가족들의 주장이다.

“고시원 주인은 지금까지 그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장례식에도 안 왔습니다. 그도 가족들이 있을텐데 타인의 가족 잃은 슬픔을 그렇게 외면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전화 한 통 없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무슨 돈 달라고 그랬나요? 경찰도 우리가 가족 잃은 것 가지고 보상금이나 타내려고 흥정 벌이는 사람 취급을 합니다. 돈 없는 사람들은 가족 귀한 것도 없이 오로지 돈에 침 흘리고 사는 줄 아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천금을 줘도 바꿀 수 없는 게 가족들이란 말입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정씨에게 수차례 회칼 공격을 받아 장기가 복부 바깥으로 노출된 상황에서도 정씨와 사투를 벌여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김대영씨. 그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건 후 그의 삶은 칼로 난자당한 자신의 몸처럼 만신창이가 돼 버렸다. 노출된 장기의 상당부분이 감염되는 바람에 적출수술을 받았다. 또 칼로 손상된 근육과 인대 등을 연결하는 수술도 받았다. 하지만 아직 추가 수술이 더 필요한 상태다.

김씨의 말을 들어보자.

“정씨가 칼로 공격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손으로 칼을 잡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 바람에 손의 인대가 많이 손상돼 손에 거의 감각이 없습니다. 움직임도 50%에 불과해요. 수술한 복부도 감각이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장기적출수술로 인해 신체의 기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이런 상태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죠. 더 힘든 건 그날의 영상이 자꾸 꿈에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리고 정신적 충격에 헤매는 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해요.”

김씨는 최근 가족들과 등 돌린 상태다. 정신적인 불안감 때문에 사사건건 가족들과 마찰을 일으킨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김씨는 자신의 문제점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알지만 정서적 불안 장애로 자신도 모르게 터져나오는 히스테리를 조절하기 힘들다.

“보통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할 겁니다. 누가 온 몸에 칼을 맞고 밖으로 나온 자신의 내장을 본 경험을 하겠어요. 광기어린 정씨가 저를 죽이기 위해 칼을 들고 쫓아오고 저는 필사적으로 방으로 도망쳐 정씨가 못 들어오게 방문을 몸으로 막았어요. 공포영화의 한 장면 속에 내가 있었습니다. 이런 장면들이 꿈에 나오는 날에는 하루 종일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는 중장비기사 자격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부상 때문에 불가능해졌다. 여기에 정신적 후유증까지 겹쳐 직장을 구하는 것도 미뤄야 하는 형편이다.

현재 김씨가 가장 증오하는 이는 정씨도 고시원 주인도 아닌 바로 경찰이다. 경찰의 무능함과 무성의함 그리고 오만함을 본 그는 경찰을 향해 극단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현장에서 본 경찰은 무능함과 무사안일 그 자체였습니다. 경찰이 피해를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때 달려와 제대로 대처만 했어도 피해가 이렇게 확산되진 않았을 겁니다. 경찰은 자신들에게 사건의 책임이 돌아갈 것을 우려해 사건을 축소했습니다. 그리고 정씨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웠습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일단 살인을 한건 정씨니까 경찰도 할 말은 있는 거죠. 경찰은 노골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입을 다물라고 강요했고 사건의 여러 사실들을 은폐했습니다. 이런 점들이 들춰져서 경찰 책임자들도 처벌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니를 잃은 유가족 김양인씨도 경찰에 분개했다.

“경찰은 나한테 대놓고 적당히 하라고 했어요. 너무 기가차서 말이 안 나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당신 가족이 죽어도 그런 말 하겠느냐고. 그랬더니 ‘죽은 사람은 이제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 더 해봤자 당신만 고생한다’ 이러더라구요.”

김씨의 언니는 정씨에게 제일 먼저 희생됐다. 언니는 죽는 그 순간까지 정씨의 범행을 막기 위해 정씨를 붙들고 놓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유가족들에 따르면 대검 피해자 구조센터에선 사건 초기 사망 피해자들에게 1000만원의 피해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했으나 아직 지급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선 지금까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는 게 유가족들의 설명이다.

이 밖에 김양인씨는 아들의 이름을 곧 바꿀 계획이다. 공교롭게도 아들이 이름이 정씨와 같은 정상진이기 때문이다.

김씨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름이 꿈에도 듣고 싶지 않은 이름이 돼 버렸다며 살인마 정상진과의 악연에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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