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기업 주요언론 미디어법 통과에 무관심


마침내 시한폭탄이 터졌다. 국회는 지난 22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신문법과 방송법·IPTV법 등 미디어 관련 3개 법안과 금융지주회사법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29년 동안 유지돼 온 신문·방송 겸영 금지 규정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신문·방송 겸영금지법은 1980년 전두환 정부가 강제로 언론 통폐합 조치를 단행하면서 만든 것이다. 참여정부시절 조선·중앙·동아일보는 군사정권의 산물인 신문법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신문법 철폐를 요구한 끝에 결국 이번 정부 들어 방송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여권은 언론의 자유가 회복됐다고 축배를 드는 분위기다. 반면 야권에선 언론장악을 통한 여론독재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며 극도의 불안감을 드러내고 있다. 미디어법의 잠재 수혜기업으로 거론되고 있는 대기업과 주요언론의 반응은 어떨까. 삼성 현대 SK 등 10대 기업은 정작 미디어법에 큰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다양한 멀티미디어 사업영역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는 지금 종합편성채널사업은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이날 직권상정과 함께 실시된 표결에서 신문법은 찬성 152표·기권 11표로, 방송법은 찬성 150표·기권 3표로, IPTV법은 재석 의원 161명 전원의 찬성으로 각각 가결됐다.

미디어법은 신문과 대기업의 지분 참여 한도를 지상파 방송의 경우 10%, 종합편성채널 30%, 보도전문채널 30%까지 각각 허용했다. 다만 신문 구독률이 20%가 넘는 신문사는 방송에 진출할 수 없으며, 신문·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겸영은 2012년까지 유예된다.

미디어법의 통과로 미디어 시장에는 그야말로 전국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인다. 벌써부터 내년 상반기에 지상파의 아성을 위협할 종합편성채널(종편채널)이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같은 전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종편채널은 보도 교양 오락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그램을 편성할 수 있다. 또 이 방송을 케이블 TV나 IPTV를 통해도 볼 수 있어 사실상 KBS MBC SBS 등 지상파와 다를 바 없다.


미디어 전국시대 치열한 생존경쟁

그러나 종편채널은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자금과 수익이 문제다. 막대한 자금이 요구되는 사업임에도 정작 수익률은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점이 걸림돌이다. 이에 종편방송사업 진출을 검토한 기업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종편채널의 경우 방송사업에 초기 투자금만 3000억원∼6000억원, 연간 운영자금은 4000억∼500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대기업이라 해도 지금과 같은 불황기에는 선뜻 나서기 어려운 규모다. 현재 지상파 방송국의 컨텐츠를 방송하는 캐이블 채널이 대부분 적자이거나 적자를 겨우 면하는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신생사업자는 사업 시작 후 3~6년간 큰 폭의 적자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게 방송업계의 분석이다.

또 치열한 경쟁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종편방송사업을 위해선 채널 배정과 광고 수주, 자본금 확보 등을 놓고 타 업체와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한다. 시청자들이 접근하기 쉬운 채널 번호를 확보경쟁도 전쟁을 방불케 할 전망이다. 현재 지상파 채널은 7번 9번 11번 13번이다. 종편채널이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지상파 채널과 인접해야 하는데 이미 대부분의 인접채널은 타 케이블 방송사가 점유한 상태여서 신생사업자는 이점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밖에 좋은 컨텐츠를 생산해야 하는 부담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케이블 TV는 드라마, 영화, 오락, 만화, 뉴스, 쇼핑 등으로 전문화돼 있다. 이에 종편방송을 할 경우 이들 전문 방송보다 뛰어난 컨텐츠를 생산해야 하는데 그렇다하더라도 수익을 보장할 수 없다.

한 지상파 방송국의 드라마만 전문으로 방영하는 케이블 채널의 경우 막대한 수익을 낳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연 1억원이 채 안 되는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점을 놓고 볼 때 종편방송사업 진출이 과연 타당할까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종편채널은 뜨거운 감자

현재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신문사와 케이블업계 컨소시엄이 종편채널이나 보도전문채널의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조선일보의 경우 방송사업 진출 계획을 철회했고 중앙일보 역시 불투명하다. 동아일보는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투자유치를 위한 방편으로 방송사업 진출을 강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 다른 신문사들은 아예 방송사업 자체를 ‘무모한 도전’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들도 신문사와 입장이 비슷하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이미 IPTV(인터넷TV)를 통해 새로운 방송 사업영역을 구축하고 있거나 케이블TV 사업을 통해 전문방송 입지를 굳힌 상태여서 성공여부가 불투명한 사업에 뛰어들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삼성, SK, 현대, CJ, KT 등은 종편 방송 사업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또 기업들이 종편방송사업을 꺼리는 또 다른 이유로 방송·신문 등 언론과 경쟁자가 될 경우 사업 초기부터 극심한 견제에 시달릴 가능성이 큰 것도 있다.

기업들이 방송과 언론을 가질 경우 자체적으로 광고를 해결할 수 있어 타 언론사에 광고를 배분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렇게 되면 광고 배분을 통해 보도를 자제해오던 일부 언론들이 맹공을 퍼붓게 되고 이는 바로 영업 매출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예컨대, 현대 기아 자동차나 삼성그룹이 방송 사업을 할 경우 지상파 방송 언론과 신문은 현대 자동차와 삼성 제품의 결함과 내부 비리 의혹 등을 집중 보도하는 식으로 견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종편방송 사업을 통해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의 종편방송 사업 참여는 사실상 막혀있다는 견해가 주를 이룬다.


#미디어법 무엇이 바뀌나

개정 신문법은 현행 신문법 중 신방 겸영 금지 조항(15조2항)이 폐지됐고 방송사나 일간 신문의 다른 일간신문 소유에 대한 규제도 없앴다. 아울러 포털 사이트 등에서 인터넷뉴스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포털사이트를 언론으로 잠정 규정해 이에 따른 법적 책임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포털은 인터넷뉴스서비스 사업자로서 별도 등록하고 기사배열 책임자와 기사배열의 기본 방침을 공개해야 한다.

또 신문지원기관인 한국언론재단, 신문발전위원회, 신문유통원은 '한국언론진흥재단'으로 통합되며 신문발전기금이 폐지되면서 한국언론진흥기금이 설치된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신문, 인터넷 신문, 방송 등을 대상으로 여론 집중도를 조사해 공표할 수 있는 근거조항도 마련됐다. 이외에 외국 신문의 국내 지사 및 지국 설치 때 적용해온 허가제를 등록제로 완화했다. <윤>

[윤지환 기자] jjh@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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