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간은 사실상의 설 연휴기간이다. 긴 연휴 덕에 귀성객들의 교통난은 분산 귀경으로 다소 수월할 전망이다. 해외 여행인파가 예년에 비해 갑절로 늘고 국내 관광지 예약도 유명호텔마다 만실로 방을 못 구하는 호황이라고 하니 귀성길도 덜 복잡할는지 모르겠다. 모처럼 모인 가족들의 밥상머리 토론은 역시 현실정치 얘기로 주제를 이룰 것이다.

정치가 너무 혼란스럽고 치졸해서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민심이 정치를 외면하고 무관심한 것 같지만 실상은 도저히 정치를 백안시할 수 없는 것이 우리 국민 된 처지다. 정치를 신경 안 쓰기에는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 안 할 수 없는 가난한 민심이기 때문에 욕하면서도 정치를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여당’ ‘야당’이 싸우고 ‘친박’ ‘비박’ ‘반박’이 싸우고, ‘친노’ ‘비노’ ‘반노’가 싸우고, ‘김대중계’가 갈라지고, 그러다 못해 같은 계파끼리 주도권 쟁탈의 이전투구를 불사하는 정치 현실에 무슨 희망이 보이겠나. 그렇기 때문에 설 민심이 더욱 날카롭게 정치권을 난도질하게 될 것이다. 정치가 온통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로 꽉 차 버린 나라에 서로 받아들이고 관용하는 정서가 살아나기는 매우 역부족하다. 바로 이 대목이 지금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독소적이고 위험한 문제다.

‘관용’은 큰마음을 의미한다. 큰마음은 물론 사랑이 전제되는 것이다. 지도자와 정복자가 다른 것은 정치지도자의 덕목은 서로 화합하는 사랑의 정신이 바탕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를 관리하고 경영하는 능력만으로는 국민을 안심시키지 못한다. 네모난 그릇의 물을 둥근 그릇으로 뜨는 지도자의 여유가 느껴질 때 민심은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행군 중에 이름 모를 백성이 준 술 한 병을 측근 막료들과 마시지 않고 흐르는 맑은 물에 쏟아 부어 수백명 군사들이 마시도록 했다는 주(周)나라 태공망(太公望)의 고사가 생각난다. 결국 리더십은 특별한 기교나 뛰어난 카리스마에 전적으로 달려있지 않다. 리더십의 성공은 고루 사랑할 줄 아는 마음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초(楚)나라 장(莊)왕이 밤늦은 시간에 공신들과 술자리를 벌이는 자리에서 바람에 등불이 꺼져 깜깜해진 틈에 만취한 한 공신이 왕의 애첩을 희롱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어둠 속에서 성희롱 당한 애첩이 그의 갓끈을 떼어들고 빨리 불을 밝히라고 고함치며 끈 떨어진 갓 임자가 나를 희롱했다고 악을 썼다.

이때 장왕의 명령은 등불을 밝히기 전에 이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 갓끈을 떼어 버리라는 것이었다. 장왕은 취중의 실수를 굳이 밝혀내서 아까운 인재를 잃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다. 보통 사람들이 흉내낼 수 없는 이런 큰마음(大寬)이 오늘의 우리 정치지도자들에게 금쪽같은 교훈으로 작용되면 우리 정치가 오늘 같지만은 않을 터다.

그렇다고 서슬 퍼런 엄격함이 없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국헌을 문란케 해서 나라 정체성을 흔들어 대는 행위를 관용할 수는 없는 문제다. 다만 설 민심을 중시하는 정치권이 국민에게 보여야 할 첫 과제가 관용의 정치란 점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설 민심이 차갑다고 해서 정치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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