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불 덮던 마누라 회 뜬 남편도 있는데…”

75년 재혼한 부인을 목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토막내 유기한 이팔곡씨가 현장검증에 나선 모습. (사진제공=경찰청)

열 살 연상의 남편을 무참히 살해하고 시신을 파묻은 파렴치한 아내가 무려 10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 1999년 4월 종적을 감춘 중년남성은 아내와 처남에 의해 살해돼 차가운 땅 속에 묻힌 것이다. 당시 경찰은 이들을 용의선상에 올랐지만 증거불충분으로 수사를 종결했었다.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 것은 지난 2005년 인천 서부서 박찬수 경사가 박씨 집 가정부의 여동생 S씨로부터 얻은 한 건의 제보에서 비롯됐다. 박 경사는 이후 5년 동안 사건을 처음부터 재수사한 끝에 아내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성공했다.

최근 남보다 못한 ‘패륜부부’의 이전투구가 연일 언론지상을 장식하고 있다. 배우자의 재산을 노리거나 내연관계를 유지하기위해 백년가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얘기다. 물론 이 같은 사건이 요즘에야 두드러진 것은 아니다. 1975년 ‘이팔곡 사건’을 시작으로 돈과 치정에 얽힌 부부 잔혹사의 역사는 제법 깊다.

인천서부경찰서는 1999년 남편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뒤 허위 실종신고를 한 혐의로 지난 15일 아내 이모(53)여인을 구속하고 사기죄로 복역 중인 남동생(44)은 살인혐의를 더해 추가 기소했다. 하지만 이 여인 남매를 도와 박씨의 시신을 암매장하는 것을 도운 이 여인의 내연남(51)은 공소시효(7년)가 지나 처벌하지 못했다.


열 살 연상 남편 ‘눈엣가시’

10년 동안 베일에 싸여있던 사건은 내연의 관계에 빠져있던 아내가 막내 남동생을 시켜 부유한 남편의 유산을 가로채기 위해 꾸민 철저한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이 여인의 남동생 둘은 박씨가 운영하는 양복점 직원으로 일하다 운영권 다툼에 끼어든 죄로 해고된 상태였다. 이 여인의 막내 동생은 이에 앙심을 품고 직접 둔기로 매형을 살해하는 무리수를 선택한 것이다.

남매는 지난 1999년 4월 28일 밤 박씨가 술에 취해 귀가하자 둔기로 수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 이튿날 이 여인은 내연남을 불러 남편의 시신을 경기도 인근 야산에 파묻었다. 이들은 범행 일주일 뒤 관할 경찰서에 박씨의 실종신고를 하며 완전범죄를 꿈꿨다.

그러나 치명적인 ‘비밀’의 유효기간은 고작 5년이었다. 지난 2005년 당시 박씨 집 가정부의 여동생 S양이 ‘집주인의 실종 사건에 부인과 처남이 연관돼 있다’는 제보를 경찰에 흘리며 이 여인의 숨통을 조인 것.

재수사를 결심한 박찬수 경사는 탐문수사를 통해 이 여인이 남편과 사업 확장 문제로 자주 다퉜다는 주변 진술을 확보하는 등 범행동기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 여인의 추악한 진실은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지독한 남성편력과 낭비벽에 도박에까지 빠져든 이 여인은 범행 뒤 집과 차를 팔고 남편 앞으로 들었던 보험을 모조리 해약했다. 또 남편 명의의 계좌에서 잔고를 싹쓸이해 자신의 통장에 이체시키고 물 쓰듯 돈을 뿌려댄 정황도 포착됐다.

박 경사의 외로운 수사는 착수 5년 만인 최근에야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보험금 수령 내역까지 털며 수사망이 좁아지자 견디지 못한 패륜아내는 결국 무릎을 꿇고 죄를 자백한 것이다.

박 경사는 “수사를 시작할 때는 오직 심증밖에 없었다. 하지만 꼭 해결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한 우물만 팠다”며 “지금이라도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의 한을 풀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내 살덩이 김치에 버무려…”

국내 패륜부부 사건의 시초는 1975년 ‘이팔곡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정육점 주인 출신의 이팔곡(당시 47세)이 재혼한 처 이모(당시 43세)여인을 목 졸라 살해한 뒤 토막 내 유기한 사건이다.

무엇보다 시신을 토막 친 것도 모자라 뼈에서 살을 발라내고 뼈를 솥에 삶아 음식쓰레기인척 유기한 수법은 당시 해외토픽에 소개될 정도로 잔혹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범인 이씨는 당시 중학생이던 아들에게 시신 처리 장면을 들키자 ‘절대 말하지 말라’며 입단속을 시키기도 했다.

끔찍한 살인극은 이 여인의 전남편 소생인 친딸 A양(당시 대학1학년)이 모친의 행적이 묘연한 것에 의심을 품고 경찰에 신고하면서 전모가 드러났다.

형사들은 이씨의 자택을 ‘분해’해가며 이 여인의 흔적을 수색했다. 마침내 욕실 배수관에 걸린 여인의 ‘손톱 반 마디’가 발견됐고 광란의 토막 살인사건은 일단락됐다.

당시 동대문경찰서 강력계 신참형사로 이씨 사건에 배당됐던 김종도 경위는 “수법으로만 보면 요즘 사건은 점잖을 정도”라며 당시의 충격을 전했다.

김 경위는 “이씨가 처를 살해한 동기는 돈이 얽힌 치정극이었다”며 “이 여인이 가게 보증금 문제로 전 남편에게 손을 벌리는 것을 우연히 들은 이씨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저지른 참사였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11일 서울에서는 흉기로 위협한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아내에게 앙심을 품고 아내 몸에 기름을 뿌려 불을 붙이려한 남편이 경찰에 구속됐다. 또 지난달 13일 부산에서는 의부증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 얼굴에 펄펄 끓는 식용유를 부어 전치 12주의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