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기지 폭행사건 은폐됐다”

남극 세종기지 폭행 동영상 캡쳐

남극 세종기지에서 일어난 폭행사건 동영상 파문이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지난 9월 17일, 남극 동계기간인 7월 한 대원이 다른 대원을 폭행하는 장면이 핸드폰 영상에 찍혀 공개됐다. 충격적이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 측과 세종기지 측의 진실공방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피해자인 A씨를 통해 그간 세종기지에선 어떤 일이 있었으며 그 진실은 무엇인지 알아봤다.

한 남자가 무차별하게 폭행을 당한다.

지난 7월 21일, 액션영화와도 같은 한 장면이 남극 세종기지 식당에서 연출됐다. 한 대원이 주방을 담당하고 있는 A씨를 폭행하는 장면이다.

A씨는 폭행 이후 극심한 신경쇠약으로 지난 9월 12일 귀국, 이후 자신이 휴대폰으로 찍어 놓았던 동영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세종기지 폭행 동영상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할 만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네티즌들은 피해자 A씨에 대한 동정의 글과 세종기지측의 안일한 대처에 분노했다.

그런데 최근 한 네티즌이 세종기지에 있는 한 대원과 메신저를 통한 대화내용을 공개했다. 폭행을 당한 A씨의 업무 태도와 대원들을 대하는 태도가 상당히 불손해 기지 내에서 문제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 네티즌에 따르면 “주방장은 문제가 심각했다. 밥 할 때를 빼면 절대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였다. 늘 열외를 하려고 했다. 또한 최고급 식재료들을 대원들 몰래 소각장에 태우기까지 했다. 주방 도구를 사용한 후 제대로 치우지 않아서 주방장한테 욕을 엄청 먹었다”며 애초 주방장의 실력이나 책임의식 등 일상생활에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주방장 A씨가 세종기지에 합류한지 얼마 안 된 지난 4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A씨 변호사와 상의 후 법적 대응

〈일요서울〉은 지난 9월 21일, 피해자인 A씨로부터 사건의 진실을 듣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전송했다. 며칠 뒤 늦은 밤. A씨에게 연락이 왔다.

A씨는 “심신이 힘들다. 폭행을 당한 이후 너무 고통스럽고 매일 같이 악몽에 시달렸다. 극지연구소 그 누구도 내게 미안하다거나 사과한 적도 없다. 하다못해 잘 도착했는지 전화 한통도 없다. 특히 국내 복귀하면 실업자 신세가 되니 실업급여라도 받게 해달라고 했더니 개인사정으로 본국에 가는 것이니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폭행당한 것이 개인 사정이라니 어의가 없다”며 분노했다.

A씨는 3년 전부터 세종기지에 가기 위해 지원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매번 최종면접에서 떨어지곤 했다. 그러던 중 꿈에 그리던 세종기지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갑자기 세종기지에 있던 주방장이 귀국을 하게 되면서 주방장이 필요했던 것이다.

A씨는 “1월 11일 세종기지로부터 연락이 왔다. 세종기지에서는 16일 비행기를 탈 수 있는지 물어봤다. 당시 나는 아는 분과 함께 동업을 하고 있었는데 꿈에 그리던 세종기지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투자금을 날리고 비행기에 오르게 됐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종기지에 도착한 A씨는 기존 대원들과 어울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특히 일부에서 주장하는 운둔형 외톨이라는 얘기와 음식과 관련해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폭행을 당한 이유에 대해선 A씨는 “이유를 모르겠다”면서 “가만히 있다가 B씨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특별히 말다툼을 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A씨는 “일부 대원들과 작은 문제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안 해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국민 세금으로 봉급 받는다. 내 할 일은 하는 게 마땅하다. 또한 음식을 태웠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내가 가기 전부터 있던 재료들 중 먹지 못할 거라 생각되는 것을 일부 버렸을 뿐이다. 태우는 것은 모두 기계설비대원이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작업에 열외된 사유에 대해서도 “주방장은 이전부터 작업에서 열외였다. 나중엔 대원들과 잘 어울리기 위해 나도 작업을 하겠다고 했다. 다섯 번이나 얘기했지만 위에선 하지 말라는 답변뿐이었다”고 말했다.


세종기지 폭행사건 은폐, 축소 의혹

이밖에도 A씨는 세종기지측이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기지 대장이 빨리 나가고 싶으면 협조를 하라며 협박했다. 또한 조기귀국 사유서에 개인사정으로 귀국한다는 내용을 쓰라고 강요했다. 세종기지는 국민들이 자랑스러워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전에도 있었던 폭행사건들이 계속 은폐되어 왔다”고 말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A씨는 “우선 잘못한 일이 있는 사람들은 벌을 받아야 한다. 변호사와 상의해서 모든 것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극지연구소측은 진상위원회를 구성하고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 세종기지대원들을 대상으로 진술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한 관계자는 “현재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 중에 있다. 폭행을 행사했던 B씨는 계약 해지 통보를 한 상태다. 폭행 사유에 대해선 A씨의 업무수행에 불만이 있었는데 술을 마신 후 우발적으로 폭행을 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어찌됐든 폭행을 행사한 것은 아주 잘못된 일이며 재발방지를 위해서 철저한 조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폭행사건에 대해선 “폭행이라고까지 할 만한 것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다만 말다툼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심각한 폭행 사건은 처음”이라며 A씨의 주장에 대해 해명했다.

1988년 준공된 남극세종과학기지는 한국 극지연구사업의 본거지다. 월동연구대원은 보통 17명이 1년 기한으로 교대한다. 월동대원들은 각자 책무 외에도 여름(12월∼이듬해 2월) 한때를 제외하고는 추위(평균 영하 섭씨 30도)와 눈보라, 깜깜한 밤과 싸워야 한다.

기지에 갇힌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히 심리적 고립감, 불안감 등으로 신경이 예민해져 정서 장애나 간혹 이상 행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실례로 1984년 아르헨티나 기지에서는 기지 대장이 정신착란으로 기지에 불을 지른 큰 사고가 있었다.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 회장은 “극지연구소는 사건의 원인부터 철저히 규명하고 일벌백계로 사건을 조기에 수습해야 한다. 또한 정부와 민간 전문가, 월동대 근무경험자 등의 의견, 여론 등을 수용해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상준 기자] sky0705in@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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