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굶은 연쇄살인범 돼지갈비로 꼬여낸 사연…”

‘샛별룸살롱’ 사건을 해결한 공로로 황 경정이 장관 표창을 받을 당시 모습과 관련 기사.(맨위) 황경정이 해결한 억대 토지사기 사건관련 기사.(가운데) 2000년 경찰기동대 재직당시 총기밀매단에게서 압수한 실탄과 총기류들.

1990년 3월 침침한 지하 취조실 앞. 서울시경 강력계 황만영 반장은 골치 아픈 상황에 쯧쯧 혀를 찼다. 며칠 전 전국을 떠들썩하게 한 연쇄강도·살인범을 붙잡아 개선장군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영광은 까무룩 잊혀졌다. 검찰 송치를 며칠 앞둔 희대의 흉악범이 사흘 째 곡기를 끊더니 입을 꾹 다물어버린 것.

‘할 테면 해보라’식으로 경찰에 어깃장을 놓은 그의 정체는 5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이자 38건의 강도·강간 행각을 일삼은 김태화(당시 22세)였다. 일명 ‘샛별룸살롱’ 사건의 주범인 그는 공범 조경수(당시 24세)가 검거된 뒤에도 언론 인터뷰를 자청하는 등 유명세를 타려 기를 썼었다. 이대로는 놈의 페이스에 말려드는 건 시간문제였다.

“김 형사, 가서 돼지갈비 먹을 만치 사오고 숯불 좀 피워 놔.” 황당한 주문이었지만 상관의 속내를 알아챈 형사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근처 식당서 공수해 온 양념돼지갈비를 불판에 올려 지글지글 굽자 취조실은 곧 형사들의 회식장소로 분했다.

달달한 양념갈비 냄새와 구수한 고기 연기가 취조실을 그득히 채웠다. “태화야, 배 안고파? 와서 같이 좀 먹지 그래.” 목석처럼 앉았던 김태화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꼴깍꼴깍 침 삼키는 소리를 놓치지 않은 황 반장은 두툼한 살코기를 집어 들고 그를 불렀다.

사흘씩 굶은 처지에 갈비를 마다하겠냐 싶었던 것. 예상은 적중했다. 눈을 피하던 김태화는 얼마못가 불판 위 고기에 정신이 팔리는가 싶더니 우당탕 의자를 박차고 형사들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1990년 ‘샛별룸살롱 사건’(이하 ‘샛별룸’)은 국내 강력사건 가운데 손꼽히는 연쇄흉악범죄 사건이다. 2인조 강도단인 조경수와 김태화는 고향 선후배인 동시에 감옥동기였다. 1985년 특수강도 혐의로 붙잡힌 두 사람은 1989년 12월 말 5년간의 복역을 마치고 출소했다. 그러나 사회로 돌아온 그들은 강도와 살인을 일삼을 무서운 범죄 집단으로 ‘진화’한 상태였다.

두 건의 살인사건과 수십 건의 강도사건 용의자로 당시 치안본부(현 경찰청) ‘제1호 지명수배자’가 된 일당은 첫 번째 살인을 저지른 지 두 달이 흐른 같은 해 3월에서야 수사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황만영 경정(62)은 먼저 은신처에서 검거된 조경수를 비롯해 도망친 나머지 일당 김태화를 격투 끝에 붙잡은 주인공이다.


“태화야, 그동안 어디서 뭐했냐?”

“당시 서울시경 형사과장 최중락(현 삼성에스원 고문)총경 밑에서 수사를 했는데 갑자기 형사들한테 무장 출동 명령을 내리지 뭡니까. ‘샛별룸’ 때문에 온 시경이 비상이었는데 도망친 김태화가 서울 종로에 나타났다는 겁니다.”

흉기를 지닌 살인범을 잡으러 가는 길. 황 경정과 후배형사 6명은 각자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품고 종로를 누볐다. 당시 김태화는 동아일보 본사에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하고 자수하고 싶다’며 나선 상태. 하지만 자수하겠다던 그는 끝내 경찰서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경찰이 자신을 못 잡을 것이라는 오만한 자신감을 언론을 통해 맘껏 드러낼 속셈이었던 것이다.

“놈이 정말 자수를 할 생각이었다면 기자가 아니라 형사를 찾아왔어야지요. 그 사실에 화가나 눈에 불을 켜고 녀석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문제는 ‘김태화가 종로3가에서 기자를 만나고 있다’는 게 황 경정이 아는 전부라는 점이었다. 결국 황 경정은 후배들을 둘씩 짝지어 인근 다방과 모텔을 전부 들쑤시게 했다. 그런데 정작 김태화와 맞닥뜨린 것은 홀로 남은 황 경정이었다.

“종로일대가 좀 넓어야지요. ‘한양에서 김서방 찾기’마냥 되나 싶었는데 간판 하나가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이름도 안 잊습니다. ‘팜파스’라는 카페였습니다.”

본부에 연락도 하고 목도 축일 겸 카페 문을 연 순간, 황 경정은 두 눈을 의심했다. 손님이 뜸한 널찍한 홀 구석에 맥주병을 앞에 둔 김태화가 껄렁하게 앉아있는 게 아닌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들여다보며 ‘오늘은 꼭 잡는다’ 주문을 외웠던 그에게 눈앞의 김태화는 품속에 든 사진에서 곧장 튀어나온 듯 생생했다.

“틀림없는 김태화, 그 녀석이었습니다. 다짜고짜 녀석 앞으로 가서 발차기를 한방 먹였지요. 지원 병력도 없는 상황이라 미리 선제공격을 한겁니다.”

유도 6단의 황 경정은 범인이 정신을 차리기 전 특유의 조르기 기술로 완전히 포박했다. 목이 졸려 바동거리는 연쇄살인범을 맨손으로 휘어잡은 그의 첫마디.

“태화야, 그동안 어디서 뭐했냐?”


“최후의 선행으로 장기기증 권했다”

김태화에게 수갑을 채운 황 경정은 ‘삐삐’(무선호출기)를 쳐 흩어진 형사들을 모았다. 한시라도 빨리 본부로 압송할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받은 최중락 당시 과장은 손사래를 치며 ‘2시간만 밖에 있으라’고 명령했다.

“이상하잖습니까. 그렇게 잡으려고 기 쓰던 놈을 잡았는데 2시간만 데리고 있으라니. 어쩔 수 없이 근처 소방서로 녀석을 끌고 갔지요.”

김태화는 순순히 형사들을 따랐다. 잡히지 않으려고 2개월 간 전남 일대와 경기도, 서울 구로동 벌집촌 등을 떠돌던 그도 많이 지친 듯 했다. 소방서 한 쪽 구석에 끌어다 앉히고, 황 경정이 범행동기를 물었지만 김태화는 ‘어차피 죽을 목숨, 마음대로 하라’는 말만 되풀이 했다.

2시간 뒤 황 경정과 형사들은 김태화를 봉고차에 태우고 시경으로 압송했다. 막 그들이 탄 차량이 시경에 들어서자 눈부신 조명이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을 황 경정은 여전히 잊지 못한다고 했다.

“그때처럼 카메라 플래시 많이 맞아본 날이 없을 겁니다. 주요 일간지, 지상파 뉴스들은 물론이고 서울 시내에 있는 기자들은 죄다 몰려온 것 같더군요. 최중락 과장님 작품이었지요. 덕분에 후배형사들 기가 많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영광도 잠시, 황 경정은 다시 고민에 빠졌다. 앞서 말했듯 김태화가 식음을 전폐한 채 묵비권을 행사한 것이다. 직접 취조를 담당한 황 경정은 ‘돼지갈비 신공(?)’까지 동원한 끝에 그의 마음을 여는데 성공했다.

“검찰로 송치되기 전날 녀석과 단둘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땐 이미 모든 죄를 다 자백한 상태라 검찰로 넘어가면 분명 ‘사형’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지요. (김)태화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결국 죽어 없어질 몸이라면 이 녀석에게 마지막으로 좋은 일 하나는 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황 경정은 사형을 앞둔 김태화에게 장기기증을 권했다. 그들 손에 죽어간 무고한 생명에게 사죄하는 뜻으로 병든 생명을 살리는 데 마지막 성의를 다하라는 뜻이었다.

김태화는 굵은 눈물과 함께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듬해 겨울 김태화와 조경수의 사형이 집행됐다.


범죄꾼 잡는 ‘포수’가 돼라

1971년 일선 파출소 순경으로 입문한 황 경정은 서울시경 형사과를 거쳐 치안본부 특수수사대, 서울시경 기동수사대, 지하철수사대 계장을 지냈다. 이후 경감으로 승진, 경북 청송경찰서 수사과장, 수원 중부경찰서 수사과장, 안양경찰서 수사과장 등을 역임하고 지난 2007년 12월 31일 정년퇴임했다.

그는 강희락 현 경찰청장, 이승재 전 해양경찰청장 등을 주축으로 창설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이하 광수대)에 선임계장으로 창립멤버로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36년 간 수사관으로 뛰면서 수도권 내 굵직한 사건사고를 많이 접했지만 여전히 욕심이 남습니다. 현재도 서울지방경찰청 수사연구관 신분으로 녹을 먹는 입장인지라 은퇴했다는 사실이 실감이 안 납니다.”

현재 용인대 대학원에서 경찰관리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황 경정은 학위를 딴 뒤 교수로 변신하는 것이 목표다. 그가 꼼꼼히 모은 생생한 사건 기록은 조만간 수사관을 꿈꾸는 예비 후배들 앞에 아낌없이 공개될 예정이다.


#리얼스토리 talk box
황만영 경정

14명의 리얼스토리 주인공 가운데 황만영 경정은 지금껏 만난 어떤 수사관보다 방대한 자료를 기자에게 보였다. 그가 36년 간 해결한 사건 보고서와 입수한 첩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파일 중 일부였다. 살인, 강간, 조직폭력 등 5대 강력범죄 뿐 아니라 2000년 초 피해규모만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금융사 횡령사건부터 80년대 말 연예인 마약사범 검거까지 분야도 다양했다.

그중 지난 2000년 1월 소음기와 투시망원경까지 장착한 M16소총과 실탄 수백여발을 밀거래하려던 일당을 일망타진한 사건이 눈에 띄었다. 이는 현직 목사가 중간 거래상으로 나서 충격적이었을 뿐 아니라 대한민국이 더 이상 총기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으로 입증해 오랫동안 회자된 바 있다.


- 당시 검거된 일당 가운데 현직 목사가 있었다. 어떻게 된 사연인가.
▲ 붙잡힌 김모(당시 47세)목사는 전남 여수의 S교회 목사였다. 상해 등 전과 2범인 그는 전국의 불법 사냥터를 돌며 총기류 밀매를 알선한 중간 거래상이었다. 검거된 피의자는 모두 6명이었는데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움직였다. 김 목사를 제외한 나머지 일당들은 모두 총포도검단속법 위반으로 전과 7~10범이며 교도소에서 만나 친분을 쌓은 것으로 드러났다.

- 압수된 총기와 실탄의 양은 얼마나 됐나.
▲ 영국제 살상용 M16소총과 22mm(투투) 소총, 마취용 소총 등 총기류 3정과 이들 총에 넣어 발사할 수 있는 실탄 302발, 소음기와 야간투시망원경 26대를 압수했다. 매매가는 소총과 실탄만 당시 550만원이었다. 조직폭력배 등 범죄조직에게 들어가기 직전 첩보를 입수해 다행히 더 큰 사건으로 비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 어떤 경로로 첩보를 입수했고 검거작전을 폈는지.
▲ 이 사건은 서울청 기동수사대가 2개월여에 걸쳐 철저히 공작수사를 펼친 끝에 해결했다. 총기밀매 조직이 전국에서 암약하고 있다는 첩보를 받아 일당 중 한 명이 운영하는 총포사에 ‘밀렵꾼’으로 위장해 접근했다. 접선 현장을 덮쳐 일부를 검거한 다음 김 목사를 상대로 ‘특수 공작’을 폈다. 자세한 수사방식은 보안상 밝힐 수 없다.

- 80년대 인기 연예인과 모델이 연루된 마약사범을 무더기로 검거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 연예인들 뿐 아니라 대학교수 자제와 기업체 사장 자녀 등도 적발됐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가수 A씨다. 유독 A씨는 형사들에게 시건방진 태도로 일관했다. 내가 직접 조서를 받았는데 ‘내 돈 주고 내가 (마약)하겠다는데 당신들이 무슨 상관이냐’며 역정을 내는 게 아닌가. 지금은 상상도 못하지만 그땐 젊은 혈기에 참지 못하고 그대로 귀싸대기를 올려붙였다. 그러면서 “너 같은 XX는 앞으로 절대 못 큰다”고 엄포를 놓았는데 이게 웬일. 지금도 A씨는 상당한 톱스타로 가요계에 군림하더라.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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