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뻐지러 왔다가 ‘천사’돼 날아갔다

영화 '해부학 교실'의 한 장면.

지난 9월 한 달 사이에 같은 병원에서 한 의사에게 성형수술을 받은 여성 환자 두 명이 돌연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세균감염에 의한 패혈증(패혈성 쇼크)이었다. 또 다른 여성환자 한명도 같은 증세로 중태에 빠졌다. 지난 9일 가슴확대수술을 받은 박모(29·여)씨가 숨진 것을 시작해 지난 16일 역시 같은 성형외과에서 종아리 지방흡입술을 받은 김모(47·여)씨가 목숨을 잃었다. 김씨가 숨진 그날 얼굴에 지방이식 수술을 받은 권모(52·여)씨 역시 호흡곤란 등의 증세를 호소하며 중태에 빠졌다. 시술을 받은 지 불과 하루만이었다. ‘의료관광특구’로 입지를 다지던 부산 의료업계는 연이은 사망사고로 공황상태다. 특히 한 병원에서 3~4일 간격으로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불귀의 객이 된 해당 성형외과를 둘러싸고 섬뜩한 루머들이 쏟아지고 있다. 사망하거나 중태에 빠진 환자들이 모두 이 병원 A(36)원장 손을 거쳤다는 사실 때문이다.

경찰과 지역 보건소 측은 일단 A원장이 환자들의 죽음에 결정적으로 관여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고개를 저었다. 부산진경찰서 관계자는 “사인이 세균 감염에 의한 것으로 확인된 만큼 수술 중 과실보다는 처음부터 수술도구가 오염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부산진보건소는 D병원이 의료법상 시설기준을 어겼는지 집중 조사하고 있다. 직접 사인으로 드러난 패혈증의 감염 경로와 관련된 모든 설비를 뜯어보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보건소 관계자에 따르면 아직까지 D병원이 규정을 위반한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


‘대학병원급 시설이라더니…’ 무색한 홍보문구

부산 D병원은 국내 미용·성형학계에서 손꼽히는 의료재벌인 D메디컬그룹의 부산 지점이다. 서울 압구정과 강남, 잠실 R호텔 등에 지점을 둔 D병원은 최근 중국 상하이에도 지점을 열어 해외진출에 나섰다.

지난 1999년 개원한 D병원 서울 본점은 언론 보도와 매스컴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쳤다. ‘대학병원급 시설’ ‘마취과 의사 상주’ 등을 내세워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던 D병원은 이번 사망 사건으로 그간 쌓아온 명성에 치명타를 입게 된 셈이다.

경찰은 지난 21일부터 이틀에 걸쳐 문제의 D성형외과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수술에 사용된 지방적출 주사기를 포함한 수술도구와 진료기록이 담긴 컴퓨터 하드디스크 2개 등 총 29가지 물품을 압수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넘겼다.

또 사망한 환자 2명의 위액, 세포조직, 가검물을 부산대병원에 보내 수술도구에서 나온 세균과 대조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만약 이들에게서 동일한 세균이 나온다면 도구 관리를 소홀히 한 병원 측 과실이 인정되는 셈이다.

이번 사망 사건의 원인은 잘못된 시술이 아닌 병원 내 감염으로 생긴 패혈증이다. 패혈증은 세균성 감염이 전신에 퍼진 상태를 말한다. 순식간에 신장, 폐, 뇌 등에 영향을 줘 불과 2~3일 내에 사망까지 이르게 할 만큼 무서운 합병증이다.

수술 후 패혈증이 생겼다면 이는 수술부위가 감염됐거나 혈관주사를 맞을 때 세균이 침투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인이 무엇이든 A원장이 해당 환자들의 수술을 집도할 당시 이미 수술실은 세균에 오염된 상태였다는 얘기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이 화를 부르는 걸까. 최근 성형수술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구제 건수가 크게 증가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06년 1월부터 올해 5월까지 접수된 피해주제 사건은 총 219건이었다.


뼈 깎다 과다출혈 ‘부작용도 가지가지’

이 가운데 분석이 가능한 172건을 살펴본 결과 성형수술로 인한 부작용이 가장 흔한 부위는 눈(34건)이었다. 그 뒤를 이어 코(31건), 유방(15건), 지방흡입술(15) 순으로 피해 사례가 많았다. 대부분 흉터가 남거나 좌우가 짝짝이인 비대칭 증상을 호소했고 감염으로 인한 사망 신고 건수도 1건 있었다.

구체적인 부작용 사례를 늘어놓으면 끝도 없다. 성형수술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부위인 눈은 쌍꺼풀 수술을 받은 뒤 눈이 짝짝이가 되거나 눈꺼풀을 너무 많이 잘라내 감기지 않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코를 무리하게 높여도 문제가 된다. 코끝 피부가 얇아지고 심하면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코 속 보형물이 삐져나오기도 한다. 유방확대수술은 모양과 높낮이가 맞지 않는 부작용이 가장 흔하다. 최악의 경우 유선 조직이 손상 돼 모유수유를 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기도 한다.

지방흡입시술도 적잖은 부작용을 떠안고 있다. 지방이 고르게 흡입되지 않아 피부가 울퉁불퉁해지는 건 약과이고 수술 도중에 화상을 입기도 한다. 지방을 제거하면서 바늘이 혈관을 찔러 지방세포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 폐에 들러붙어 지방색전증으로 죽는 경우도 있다.

가장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키는 성형수술은 뼈를 깎아 얼굴형을 교정하는 안면윤곽수술이다. 뼈를 깎는 도중 피가 멈추지 않아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부 의사들이 실수로 얼굴을 지나는 동맥을 자르는 일도 있어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 패혈증이란?

패혈증 (sepsis·패혈성 쇼크)은 미생물에 감염돼 전신에 심각한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상태를 말한다. 체온이 38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발열 증상이나 36도 이하로 내려가는 저체온증, 호흡수가 분당 24회 이상으로 증가(빈호흡)하거나 분당 90회 이상의 심박수(빈맥), 혈액 검사상 백혈구 수의 증가 혹은 현저한 감소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이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의 증상을 보이는 경우, 이를 전신성 염증 반응 증후군(systemic inflammatory response syndrome; SIRS)이라 부른다. 이러한 전신성 염증 반응 증후군이 미생물의 감염에 의한 것일 때 패혈증으로 진단한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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