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급 공무원 김씨, 조직이 죽였다


한 젊은 공무원의 죽음 배후에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다?

일명 ‘용인시청 공무원 자살 사건’에 대한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용인시청이 조직적으로 사건 은폐를 시도했을 뿐 아니라 최근 불거진 시청 인사 비리에 대한 모든 책임을 망자에게 돌리려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터져 나온 까닭이다. 더구나 유족들은 몇 가지 정황을 근거로 ‘타살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김씨가 자의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급격히 퍼지고 있다. 말단직원에 불과한 김씨가 모든 비리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억울한 죽음을 맞았을 것이란 하소연이다. 다시 말해 곪아터진 공무원 조직이 미혼의 신참 공무원을 죽였다는 얘기다.


유서도, 동기도 없다

지난달 15일 용인~서울 고속도로 서분당 나들목 부근 공터에서 용인시청 인사계 7급 공무원 김모(31)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는 자신의 코란도 승용차 안에 탄 상태였고 시신과 함께 완전히 탄 번개탄이 나왔다. 김씨의 시신은 조수석에 비스듬히 기대 있었고 코피를 흘린 흔적이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결과 김씨의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 즉 연탄가스 중독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특별한 외상이 없는 것을 이유로 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인사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감사원의 조사를 받던 그가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유족들의 주장은 다르다. 유서가 나오지 않았고 도무지 자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시신 발견 닷새째인 지난달 20일에야 장례가 치러진 것도 유족들이 사건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며 버텼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교사인 김씨의 형(36)은 “동생 동료들이 ‘장례를 미루고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동생이 생전 시청 인사와 관련해 석연찮은 하소연을 했다고도 전했다.

김씨의 형은 “지난 7월 동생이 ‘인사 때문에 바쁘다. 나도 미치겠다’고 하더라”며 “무언가에 몹시 시달린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용인시가 지급하려던 장례비, 위로금을 모두 거절하고 사건의 실체를 밝혀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지난달 26일 수원지검에 냈다.


“김씨 비리 제보한 건 내부인”

그렇다면 김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용인시청 인사 비리의 실체는 뭘까. 첫 감사원 조사가 이뤄진 지난 9월 하순께로 돌아가 보자. 김씨와 관련된 비리행각을 처음 제보한 것은 용인시청 내부 관계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청 관계자에 따르면 제보 내용은 ‘김씨 등이 각 부서장들의 도장 수십 개를 위조해 다른 직원들의 근무 평점을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올해 정기인사를 앞두고 김씨가 20년 이상 근무자들을 승진시키기 위해 해당 직원들의 근무 평가를 조작했다는 얘기다. 김민기 용인시의원 ‘용인시청 공무원 자살사건’ 성명서 전문

그러나 주목할 것은 김씨가 인사계 근무 1년을 갓 넘긴 신참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2005년 용인시 7급 공채로 임용됐고 인사업무를 담당한 건 지난해 6월부터다. 말단 직원인 김씨는 자신이 근무 평가 점수를 조작해준 인물들 상당수와 일면식조차 없었다.

그가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일을 도모했다는 정황도 현재까지 드러난 게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남 좋은 일’을 시킬 이유가 없다는 얘기다. 차라리 김씨가 ‘윗선’의 지시를 받아 움직였다고 생각하는 게 훨씬 논리적이라는 게 일선 공무원들의 여론이다.

용인시의회 김민기 의원(민주당)은 성명서를 통해 “그동안 용인시청 내 인사 비리에 대한 소문은 무성했다”며 “임용된 지 5년도 안 된 7급 공무원이 시청 인사를 좌지우지했다는 걸 누가 믿겠는가. 이번 사태는 주역은 뒤로 숨고 아랫사람만 다친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3일 감사원의 특별감사가 시작 된 지 이틀 만에 감사원 직원들은 행정과를 덮쳐 해당 인사 자료를 모두 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과거 근무 평가 점수조작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고 담당자인 김씨에게 모든 책임이 집중됐다. 결국 김씨는 감사 시작 20여일 만인 지난달 12일 종적을 감췄고 사흘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현재까지 김씨의 사망에 특정인사가 개입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그의 죽음이 단순 자살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김씨의 동료들은 그를 ‘남의 부탁을 잘 거절 못하는 성실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미혼의 신참 공무원은 모든 진실을 끌어안고 영원히 눈을 감은 셈이다.



# 김민기 용인시의원 ‘용인시청 공무원 자살사건’ 성명서 전문

슬프다, 한 공직자의 억울한 죽음

아, 슬프다! 10월 15일 오후, 우리 용인시의 장래가 촉망되는 한 젊은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용인시장은 이 젊은 공직자의 죽음을 둘러싼 숱한 의혹에 대해 진상을 밝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라.

용인시의 인사문제를 둘러싼 각종 추문으로 인해 최근 감사원에서 내려와 승진서열명부 조작 여부 등 인사비리를 둘러싼 의혹을 감사받던 중 그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다.

용인시 공직사회에선 최근 인사문제를 둘러싸고 의혹에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특정인을 승진시키기 위해, 또는 특정인을 특정 자리에 앉히기 위해 인사의 원칙이 무너지고, 심지어 공문서 위조까지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혹이 난무하고 있다.

용인시장은 한 점 의혹 없이 명백하게 이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시장을 둘러싼 측근들의 조직적 인사비리가 감사에서 적발되자 하위직 공직자에게 그 책임을 덮어씌운 사건’이라는 것이 공직사회의 공공연한 여론이다.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는 공직기강을 흐리게 만들어 국가의 기틀을 뿌리째 흔드는 행위이며 85만 용인시민들을 허수아비로 여기는 만행이다. 그리고 그 억울함과 모욕감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택한 한 젊은이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85만 대도시의 공직자 인사를 임용된 지 5년도 되지 않은 7급 공무원이 좌지우지 했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는가. 이번 사태는 몸통은 뒤로 숨고 깃털만 건드리는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임에 틀림없다.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용인시장은 이번 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라. 감사원은 용인시의 인사비리에 대해 철저히 파헤치기를 촉구하며, 검찰도 철저한 수사를 통해 이 젊은 공직자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주기 바란다.


2009. 10. 16 용인시의회 민주당 대표의원 김 민 기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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