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 목매다 평생 백수 된다”

이달 결혼을 앞둔 곽모(29·회사원)씨는 벌써부터 가족계획에 머리가 아프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자녀를 갖고 싶었던 그는 예비신부와 앞으로 3년 동안은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약속했다. 아들, 딸 구분 없이 무조건 둘 이상은 낳겠다던 생각도 접었다. 둘이 합쳐 월 400만원이 안 되는 수입으로는 도저히 ‘아이 뒷바라지’를 못한다는 예비신부의 하소연 때문이다.

곽씨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이의 조기교육이며 학원비를 걱정하는 게 우스울지 모르지만 막 가정을 꾸린 신혼부부들에게는 중요한 문제”라며 “우리 때처럼 학교 공부만 해서는 절대 못 사는 세상 아니냐. 남들만큼 경제적인 기반을 다질 때까진 아이를 갖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바야흐로 사교육 전쟁시대다. 좋은 직장과 명문대를 위해 우리말도 떼지 못한 유아를 영어 학원으로 내모는 부모들의 지나친 열성이 학원기업의 배만 불리고 있다. 아직 자녀가 없는 새내기 부부들마저 사교육비 걱정에 아이 낳기를 미루거나 포기할 정도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공동대표 송인수·윤지희)이 사교육에 대한 잘못된 정보 12가지를 선정, 이를 바로잡는 범국민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이 단체는 지난 1년 3개월 간 전·현직 학원 관계자와 학계, 시민단체 전문가 등 22인과 연구를 벌여 잘못된 사교육 정보를 찾는 작업을 마쳤다. 국내 최초로 공개된 사교육의 무서운 진실 12가지를 짚어봤다.


학원 의존한 고1, 다음해 성적 곤두박질

‘학원에 보냈더니 짧은 기간 만에 성적이 훌쩍 올랐다.’ 학원 예찬론을 펼치는 학부모들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믿음은 단순한 ‘착시’일 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송인수 대표는 “학원에 아이를 맡길 경우 일시적인 성적 상승효과는 있다”면서도 “다만 학원에 오래 의존하면 스스로 공부하는 능력이 퇴화한다. 특히 최근 수능 경향은 깊은 사고력을 요하는데 학원수업으로는 이런 대비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장은 지난 2002년 한국교육개발원의 학원 효과에 관한 연구 결과에서 사실로 입증됐다. 이종태 전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은 “연구결과 중학교 때부터 학원을 다닌 상위권 학생들이 고2가 되면 성적이 뚝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며 “중학생 시절 오랜 학원 경험이 고교 시험, 수능에 대비가 안 될뿐더러 오히려 방해가 된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이범 전 메가스터디 이사는 “공부하는 테크닉은 학원 진도를 따라가는 것으로는 절대 늘지 않는다”며 “사교육에 목매는 학생들은 학원 숙제에 치여 스스로 복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근엔 아이들이 먼저 학원에 보내달라고 조르는 경우도 많다. 자녀가 원하는 학원에 보내주는 것도 해로울까? 답은 ‘두 과목 이상은 안 된다’.

전문가들은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복습’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최소한 하루 2~3시간은 학교 수업 내용을 복습하는데 써야 한다. 학원 수업 일정이 빠듯하게 짜여 있다면 수강 과목 수를 조정해야 한다. 돈 낭비일 뿐 아니라 성적향상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학원 원장도 제 아이는 안 보내

공부방법 배우기 전문가 신을진씨는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기억력’인데 배운 내용을 30시간 이전에 복습하지 않으면 70% 이상을 까먹는다”고 말했다. 신씨는 “공부를 잘하려면 복습을 통해 수업내용을 오래 기억하는 게 관건이다”며 “학원 강의만 듣는 것은 공부에 제일 해롭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부모들은 학교보다 학원이 수준별 개인 지도를 잘 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전혀 다르다. 대부분의 학원에는 학교 수업을 보충해주는 프로그램이 없다. 오히려 학교보다 더 상위권 학생에 집중하기 때문에 기초가 부족하면 학원은 다니나 마나다.

오히려 학원 관계자일수록 자기 아이는 사교육에 맡기지 않는다. 전 메가스터디 영어강사 K씨는 “학원 강의가 도움이 되는 아이들은 상위 10% 정도고 남은 반은 하나마나, 나머지는 오히려 해롭다”고 잘라 말했다.

K씨에 따르면 학원은 구조적으로 중하위권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출 수 없다. 자칫 ‘후진 학원’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많은 학원 관계자들은 자기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학원에서 미리 공부하면 학교 진도에 도움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금물이다. 이른바 ‘선행학습’은 상위권 학생들이 방학 기간 3개월 정도 하는 것 외에는 효과가 없다.

박재원 비상 공부연구소장은 “학원에서 ‘구경하는 공부’는 실력일 될 수없다”며 “학원에서는 선행학습으로 성적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이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소장은 “복습의 핵심은 혼자 스스로 하는 것인데 학교에서 구경하고 학원에서 또 여러 번 구경하는 것은 절대 자기 실력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열심히 본다고 박지성이 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좋은 직장을 잡기 위해 뛰어난 성적이 필요하고, 성적을 높이기 위해 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도 잘못된 생각이다. 특히 사교육에 길들여진 의존적인 인간형은 기업 인사 채용 과정에서도 기피대상이다.


“사교육 물든 S대 출신 필요 없어”

류지성 삼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기업이 제일 싫어하는 게 사교육에 찌든 무능한 인재”라며 “기업의 채용 방식이 과거 ‘스펙’ 좋은 사람들을 뽑는 것에서 창의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인재를 뽑는 것으로 바뀐 지 오래”라고 말했다.

이정주 한국리쿠르트 대표 역시 “요즘은 기업도 절대 명문대 출신만 선호하지 않는다. 명문대 졸업자일수록 이직률이 높아 회사에 손해를 끼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수원 J중학교 박모 교장은 최근 신임 교사 채용 과정에서 서울대 출신자를 잘라버렸다. 원서를 내는 날 부친과 함께 와 면접을 치르고 갔다는 이유에서다. 박 교장은 “이런 사람에게 학생들을 맡겼다가는 스스로 공부하는 법조차 모르는 공부벌레로 만들겠구나 했다”며 후일담을 밝혔다.


#잘못된 사교육 정보 12가지

1. 성적을 올리고 싶으면 학원에 보내야 한다.
2. 아이들이 원해서 학원에 가는 것은 괜찮다.
3. 학교와 달리 학원은 부족한 부분을 개별적으로 보충해준다.
4. 맞벌이 부부는 아이들이 방치되므로 학원에 보내야 한다.
5. 학원서 미리 공부하면 학교 진도를 더 잘 따라갈 수 있다.
6. 수학은 어려운 과목이라 선행학습이 필요하다.
7. 영어 교육은 빠를수록 좋다.
8. 요즘 초등학생 때 6개월~1년 단기 영어 유학은 필수다.
9. 비싼 영어 캠프일수록 영어에 대한 흥미를 키워준다.
10. 특목고 입학은 학원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11. 일단 성적을 올려야 진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12. 잘 나가는 직업을 가지려면 공부만 잘 하면 된다.
[자료제공=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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