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이창환기자]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영국의 극작가겸 소설가 버나드 쇼는 리어왕보다 더 훌륭한 비극은 없다.”고 말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4대 비극 <리어왕>510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다.

이번에 공연되는 <리어왕>은 수작 반열에 오른 모든 연극·영화가 그렇듯이 줄어드는 시간을 아쉽게 만드는 재미와 전율을 선사한다. 170분의 러닝타임에다가 1막 공연시간만 해도 보통 연극의 80~90분에 육박하지만 별다른 기교 없이 시간을 가로지른다. 무대디자인, 연기, 연출 모두 명성을 손상시키지 않는다.

<리어왕>에 내리는 비극의 물줄기에 인물들은 누구 하나 예외 없이 젖어든다. 작품은 완전한 비극으로 모든 이미지를 압도한다. 금지된 사랑을 드러내는 성적인 장면, 성적 욕망을 부르는 여체와 죽음의 결합과 같은 이미지조차도 <리어왕> 안에서는 개별적인 자극을 주지 못하고 비극의 부산물로써 충실하다. 비극의 환희가 성과 성욕 위에 서 있는 인상이다.

셰익스피어 비극은 파격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때문에도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다. 그런 희곡의 공연답게 배우들은 단단한 발성으로 비극을 해지도록 문지르고 어두운 무대 끄트머리까지 메아리를 보낸다.

배신·갈등·저주·울분·절망으로 점철되는 흐름이 이어지고 리어왕은 점점 광인이 된다. 연극은 이를 잔혹하고 은유적으로 보여주면서 비극적 희열을 전달한다. 셰익스피어가 비극을 계승하거나 반영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마치 후대의 모든 태생적 악인들에게 어떤 배신이 상대방의 심장을 가장 갈기갈기 찢어놓는지, 어리석은 인간을 어떻게 짓밟아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하다. 하지만 보통 관객들은 연극 속에서 절망 곁의 정의, 광기 옆의 통찰, 포효 속의 빛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비극이 인간을 바꿀 수도 있다는 말의 주된 힘이다. 이런 단어들은 물론 <리어왕>이기에 붙일 수 있다. 대부분 현대 비극은 절망, 광기를 탁월하게 발현 했다.’는 평가를 매기기에 다소 부족하다.

작품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부분은 2막 리어왕의 독백이다. 완전히 미쳐버린 왕은 떠돌아다니고 쫓겨 다니는 와중에 자신의 덩어리를 내뱉고 승화시킨다. <리어왕>의 압권이다. 더불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 연상된다. 이 책은 지금까지 쓰인 가장 위대한 소설’,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다등등의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지그문드 프로이트는 그는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자리를 차지한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지금까지 쓰인 가장 장엄한 소설이고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세계 문학사의 압권이다라는 극찬을 보냈다. 하지만 대심문관의 이야기는 독서 훈련이 덜된 독자들이나, 평소 기독교에 대해 근원적인 의문을 않은 이들이나, 신의 존재를 고민하고 부정해보지 않았던 이들에게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읽히는 한계를 갖고 있다. 반면 리어왕 장문의 독백은 보다 시적이고 바닥까지 떨어지며 실패자들과 밀접하다. <리어왕>의 독백은 스릴과 환상을 표현하다가도 돌연 슬픈 세상사를 꿰뚫어버린다. 가장 훌륭한 비극이라고 불릴 만하다.

이번 공연은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무대디자인이 좋았다. 과거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우어 파우스트>의 무대가 몇 년 이상 기억에 남아있는데, 이번 경험 또한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점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우연이다. 두 무대의 공통점은 어둠을 감성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리어왕> 무대는 여기에 경사면의 미학, 바닥의 질감, 퍼붓는 폭풍우까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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