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수용·자해·자살… 폐광촌 ‘죽음의 땅’ 으로 변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육군 대위 출신의 30대 남성이 “강원랜드 영업중단”을 요구하며 자신의 손목을 흉기로 내리찍었다. 6년 동안 카지노에 빠져 무려 18억 원의 거액을 탕진한 박모(38)씨였다.

‘한국판 라스베이가스’를 표방하며 1999년 6월 문을 연 강원랜드는 지난해 개장 10주년을 맞이했다. 폐광촌으로 전락한 지역 경제를 살리고 음지에서 벌어지던 사행산업을 양성화 시킨다는 목표로 출범한 강원랜드는 지난해 순매출 1조 원을 넘어서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강원랜드의 빛과 그림자는 그 경계가 지나치게 뚜렷하다. 하룻밤 ‘잭팟’을 꿈꾸며 모여든 이들은 줄줄이 도박중독과 파산으로 몰락했고 장밋빛 청사진을 약속받았던 원주민들조차 크고 작은 송사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강원랜드는 서민들의 원한을 빨아먹는 ‘늪’으로 변질되고 있다.

“기자님, 저 좀 살려주세요.”

김명자 씨는 다짜고짜 기자에게 ‘살려달라’고 간청했다. 그는 강원랜드가 자신들의 유일한 재산인 땅을 1/100도 안 되는 헐값에 빼앗아 갔다며 울분을 토했다. 김씨는 “강원랜드와 감정평가사, 그리고 사법부 모두 사기꾼”이라며 “공권력이 무고한 시민을 죽이고 있다”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또 강원랜드가 토지보상법 등 실정법까지 어겼음에도 사법부가 이를 방관했다며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씨 “법 어기고도 당당한 강원랜드”

김 씨는 지난 2002년 강원랜드에 자신 소유의 땅을 1㎡당 9만 2000원에 넘겼다. 인근지역 시세보다 1/100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김 씨 땅에는 강원랜드의 메인 카지노와 이곳으로 통하는 도로가 들어섰다.

김 씨는 “(우리 땅에서)바로 50m 떨어진 곳은 평당 1000만 원에 거래되는데 우리가 받은 보상금은 여기에 1/10은커녕 1/100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당시 메인 카지노 개장에 대비해 도로를 개설해야 했던 강원랜드는 원주민들과 땅 매수를 위해 접촉을 시작했다. 강원랜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정선읍 관내에서 가장 비싼 땅은 강원랜드가 위치한 사북읍 사북리 366-5번지였다.

현재 강원랜드 부지인 이 땅은 1998년 평당 39만 9000원이었으나 10년 만에 6배 가까이 비싼 평당 234만 원으로 값이 뛰어올랐다. 김씨가 땅을 강제수용 당한 2003년 1월 1일 이 땅의 공시지가는 평당 87만 9000원이었다.

김 씨 땅은 이 곳과 불과 직선거리로 수백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더구나 김 씨가 수용당한 땅은 현재 국도에서 강원랜드로 들어가는 입구다. 당시 공시지가로만 따져도 가장 비싼 축에 속하는 속칭 ‘노른자위’였다.

상식적인 거래 가격을 깡그리 무시한 강원랜드의 땅값 책정에 김씨를 비롯한 다수의 주민은 크게 반발했다. 결국 강원랜드는 주민과의 협상이 아닌 강제수용을 택했다. 앉은자리에서 생떼 같은 땅을 뺏긴 김 씨는 2002년 8월부터 지금까지 외로운 법정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사법부는 김 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2007년 4월 대법원 선고에서 진 그는 법과 현실의 높은 턱에 좌절한 상태다. 김 씨는 “변호사도, 검사도, 판사도 모두 힘 있는 자 편에 섰다”며 “법조인이면 강원랜드가 토지보상법을 위반했다는 걸 다 안다. 그런데도 법원이 이를 묵인했다”고 개탄했다.

토지보상법 70조는 ‘협의 또는 재결에 의해 취득하는 토지에 대해서는 부동산가격 공시 및 감정평가에 관한 법률에 의한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보상하되, 그 공시 기준일부터 가격시점까지의 관계법령에 의한 당해 토지의 이용계획, 당해 공익사업으로 인한 지가의 영향을 받지 아니하는 지역을 표준지로 정하여 평가해야 한다’고 돼 있다.

한마디로 토지보상이 이뤄지는 지역 내에서 재개발에 영향을 받지 않는 곳의 땅값을 기준으로 보상금이 책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 씨의 경우 기준이 된 비교표준지가 시가에 1/3도 안 되는 헐값으로 평가됐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노른자위’ 땅 헐값에 빼앗겨”

김 씨가 제기한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다. 강원랜드가 보상금의 공탁 일자를 어기는 바람에 강제수용이 불가함에도 입금증을 ‘위조’해 토지수용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토지보상법 제42조에는 ‘사업 시행자가 수용 또는 사용의 개시 일까지 관할 토지수용위원회가 재결한 보상금을 지급 또는 공탁하지 아니한 때는 당해 토지 위원회의 재결은 그 효력을 상실한다’고 돼 있다.

김 씨에 따르면 해당 토지 수용 날짜는 2002년 12월 26일이었다. 그러나 강원랜드가 공탁금을 입금한 것은 같은 달 31일이었다. 공탁금 입금이 수용 날짜보다 닷새나 지연됐으므로 김 씨 땅에 대한 토지수용은 없던 일이 돼야 했다는 얘기다.

정선군은 해당 일자에 입금했다고 ‘입금증’을 제출했지만, 그나마도 석연찮은 점이 적지 않다고 김 씨는 말했다. 특히 증거로 제시된 입금증 내용이 일관적이지 않고, 송금한 은행들 사정상 무통장 입금이 불가한 곳이 있다며 관련 자료를 보내온 것.

김 씨는 “영월지점 공탁과에 입금했다고 하면 무통장 입금은 맞지만 보시다시피 입금은 고한지점에서 됐다. 이렇게 명백한 데도 어떻게 검사나 판사는 별다른 조사 없이 기각시킬 수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김 씨는 3심을 거쳐 토지보상법 70조가 아닌 단순 업무상 배임으로 3900만 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그는 “법원이 12억 원 넘는 보상금을 단돈 3900만 원으로 바꿔치기했다”며 “나만 이런 피해를 받은 것이 아니다. 또 다른 220세대가 이번 사건으로 억울한 일을 당했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있는 자에게만 유리한 판결을 하는 것 같다”며 울먹였다.

현재 김 씨는 문제의 입금증을 비롯해 각종 자료가 조작, 위조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법정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이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김 씨는 “대법까지 갔으니 다시 재판을 하기 어렵다. 억울하다. 이 사건이 다시 공론화되는 일 밖에는 해결책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강원랜드 개장 10년…35명 자살

김 씨가 정선군 원주민의 고통을 대변하고 있다면 지난달 국회에서 자해소동을 벌인 박 모(37)씨는 강원랜드에 중독된 ‘서민 겜블러’의 처참한 말로 그 자체다. 박 씨는 지난달 31일 오후 2시 10분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강원랜드의 내국인 카지노 영업을 중단하라”고 외친 뒤 30cm 길이의 흉기로 자신의 왼쪽 손목을 여러 차례 내리쳤다.

박 씨를 치료한 병원에 따르면 그는 손등 뼈가 드러날 정도로 중상을 입었지만 손목을 절단해야할 정도는 아니며, 생명에도 지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이날 “내 돈 18억 원을 강원랜드에서 모두 잃었다”며 가져갔던 유서 20여 장을 뿌리고 자해를 시도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박 씨는 2003년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강원랜드에 총 608회 드나든 것으로 밝혀졌다. 박씨는 지난달 15일과 22일 강원랜드에 협박 편지를 보낸 혐의로 강원 정선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정선경찰서 측은 “박 씨가 2000년 육군 대위로 전역한 이후 도박에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박 씨는 자해 전날인 지난달 30일 인터넷 사이트에 “국회의사당 안에서 내일 오후 2시에 자해할 테니 동참하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이 글에서 “강원랜드는 도박중독자들에게 사과하고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며 “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국회의사당 앞에서 생을 마감하겠다”고 예고했었다.

강원랜드 개장 이후 도박중독에 비관자살 등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은 지난해 9월까지 무려 35명에 이른다. 문제는 도박중독으로 인한 부작용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정작 중독을 부추긴 강원랜드의 대응책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점이다.

강원랜드는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명목으로 ‘도박중독 예방치유센터’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곳이 카지노 출입이 금지된 중독자들에게 다시 출입 자격을 주기 위한 ‘통과의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자해소동을 벌인 박 씨 역시 2003년, 2006년, 2008년 등 3회에 걸쳐 본인이 출입금지를 신청했고 지난해 7월에는 부친이 박 씨의 카지노 영업장 출입을 금지해 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박 씨는 “강원랜드가 3번 이상 본인이 출입제한 신청을 하면 해제를 할 수 없게 돼 있는 내규도 지키지 않고 형식적으로 치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며 “비양심적인 경영을 하는 내국인 카지노는 존립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강원랜드 측은 “도박중독 등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3회 이상 출입금지를 요청한 고객에 대한 영구출입금지를 포함해 카지노 출입관리지침을 강화했다며 박 씨는 지침 변경 전이었다”고 해명했다.

[사회부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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