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막히는 미인보다 평범女가 진짜

김수임(윗줄 맨 왼쪽) - 김현희(윗줄 가운데) - 원정화(윗줄 마지막) - 지난달 19일 하마스 간부 암살 사건 당시 호텔 CGV에 찍힌 게일 폴라어드(유튜브 캡쳐)

지난 2월 19일 두바이 한 호텔에서 벌어진 암살극 가운데 20대 중반의 금발 여성이 있었다. 선한 미소로 호텔 직원들에게 친절을 베푼 그녀의 이름은 게일 폴리어드(26).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 내 최정예 조직 ‘키돈(Kidon·단검을 뜻하는 히브리어)’의 핵심 요원이었다. 최근 하마스(팔레스타인 정치·군사 조직) 간부 마무드 알 마부를 살해한 암살단 10여명의 정체가 속속 드러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특히 죽음이 예정된 목표물 앞에서 보인 폴리어드의 ‘살인미소’에 세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악연이 섬뜩한 암살극을 빚었다는 점에서 남북으로 분열된 한반도의 상황이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 모사드 내에서 납치와 암살 임무를 전담하는 키돈의 ‘아름다운 단검’ 게일 폴리어드. 그와 견줄만 한 국내 여간첩들의 비극적 면면을 들여다봤다.


모사드 女요원 ‘베갯머리 송사’ 능해야

영국의 일간 텔레그래프는 지난달 21일 “폴리어드는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에서도 암살과 납치 임무를 전담하는 최정예 조직 ‘키돈(Kidon)' 소속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선한 인상의 가녀린 여인이 ‘살인교육’을 받은 인간병기였다는 얘기다.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 내에서도 키돈은 철저히 베일에 싸인 조직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조직원은 48명이며 이 가운데 여성은 6명이 전부다. 키돈 조직원은 남녀를 불문하고 각종 무기와 폭발물을 능란하게 다룬다.

눈에 띄는 것은 모사드 요원 가운데서도 2년 과정의 기본 스파이 교육(미행, 잠입, 총기 은닉법 등)을 뛰어난 성적으로 통과해야 키돈에 지원할 ‘자격’을 얻는다는 점이다. 모사드 내에서도 최강의 정예조직이라 할 만하다.

지원자 모두가 키돈 요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지원자는 키돈 본부가 위치한 네게브 사막 훈련 캠프에서 혹독한 ‘지옥 훈련’을 통과해야 한다.

교육 과제로는 강물에 마이크로필름 등 정보물 은닉하기, 솜뭉치를 입 안에 넣어 얼굴 골격을 바꾸는 등의 변장술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훈련을 모두 통과해 키돈에 합류하는 인물은 극히 소수다.

1960년대 작성된 모사드 비밀문건에는 키돈 여성 요원의 존재와 역할이 비교적 상세히 기록돼 있다.

특히 여성 요원은 정보를 얻기 위해 자신의 성(性)을 이용하는 일을 마다해선 안 된다고 되어있다. 이를 위해 여성 예비 요원들은 술에 취한 척 연기하는 법, 클럽 등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법 등 상식 밖의 훈련도 거쳐야 한다.

문건에는 ‘여성은 남성이 가지지 못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다. 여성은 남녀 사이의 잠자리 대화(pillow talk)를 통해 정보를 얻는 데 능하다. 현대 정보전의 역사는 여성이 조국을 위해 자신의 성(性)을 이용한 사례들로 채워져 있다’고 기록돼 있다.


김수임부터 원정화까지

납치와 암살을 전담하는 키돈의 과격한 성향과 매력적인 외모. 폴리어드와 비견될 만한 국내 인물은 과연 누굴까.

대표적인 인사는 ‘KAL기 폭파범’ 김현희(48)씨다.

김씨는 1989년 11월 29일 ‘하치야 마유미’라는 일본인으로 가장해 공범 김승일(일본명 하치야 신이치)과 대한항공 858편을 폭파했다. 이듬해 3월 대법원이 김씨에 대해 사형을 확정했지만 20여일 뒤인 같은 해 4월 12일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됐다.

지난 97년 자신을 경호하던 전직 안기부 직원과 결혼한 김씨는 일본 납북 피해자 메구미씨 사건을 계기로 최근 일본 방문을 추진 중이다.

잔혹한 테러리스트로 밝혀진 김씨는 ‘한국의 마타하리’라는 명성답게 긴 생머리에 단아한 외모로 국민적 동정심을 얻기도 했다. 뛰어난 미모 덕을 톡톡히 봤다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김씨에 앞서 원조 ‘한국판 마타하리’의 등장은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정 시절 희대의 여간첩 ‘김수임 사건’이 그것이다. 김수임은 이화여전(현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 엘리트로 시대를 앞선 신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는 공산주의자로 당시 김일성 정권에서 초대 외무부 장관을 지낸 애인 이강국의 월북을 돕고 남조선노동당(남로당) 활동 자금을 운반하는 등 간첩 활동 혐의로 6·25 직전 총살당했다.

김수임은 애인 이강국과 미군 수사기관 고문이었던 베어드 대령 등 두 남자 사이를 오간 ‘팜므파탈’로도 유명하다.

지난 2008년 검거된 여간첩 원정화(36·구속수감)은 앞선 두 선배(?)들과는 다소 다른 행보를 보였다. 어설픈 공작활동으로 수사기관으로부터 ‘함량미달’이라는 혹평까지 얻은 원씨는 연하의 군 장교 황모(28)중위를 유혹해 군사기밀을 빼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지시를 받고 탈북자로 위장한 원씨는 북한노동당 비서 출신 황장엽 씨의 소재를 추적하고 군 장교들의 신상정보와 미군부대 위치정보 등을 수집해 북측에 넘긴 혐의로 구속, 징역 5년 형이 확정돼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국정원 女요원 ‘섹시함’은 독(毒)

이스라엘에 모사드가 있다면 대한민국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이 있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 등을 통해 정보요원에 대한 호기심이 커지면서 미모와 지성, 무도까지 겸비한 여성 국정원 요원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국정원 홍보처에 따르면 신입 요원 중 여성 비율은 30% 정도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공직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여풍(女風)은 국정원도 마찬가지란 얘기다. 이들은 남자 요원들과 마찬가지로 산악훈련과 기본 무술 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눈에 띄는 것은 국정원 여성 요원에게 ‘뛰어난 미모’는 필수가 아니라는 점이다.

드라마 ‘아이리스’의 김태희, 영화 ‘7급 공무원’ 김하늘 등 늘씬한 미녀들은 ‘정보요원’으로서 부적합하며 오히려 ‘독’(毒)이 된다는 얘기다.

국정원 홍보처 관계자에 따르면 미모와 화술이 뛰어난 매력적인 요원들도 상당수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정보요원으로서는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사람이 더욱 적격이라는 것. 눈에 띄는 외모는 임무 수행 중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정원 요원 선발 과정에서 평범한 외모의 응시자가 더 후한 점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나 직감 등이 임무 수행에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국정원 요원이 미모를 이용해 목적을 달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같은 정보요원이라 해도 남녀에 따라 부여되는 임무 자체가 다르다. 철저히 요원 개인의 역량에 따라 임무가 주어지기 때문에 이를 남녀차별로 여기는 것은 무리다.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은 국정원 요원이라고 해서 모두 무술 고수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무술은 최종 선발 과정을 통과한 신입 요원들이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잠깐 기본기를 익히는 정도다. 모사드와 달리 국정원 요원들에게는 필수가 아닌 선택능력인 셈이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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