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해 1박2일 짧은 일정을 마치고 돌아갔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에 체류 중인 수천명의 인도인들로부터 인기 절정의 팝 가수처럼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1만여 한국 체류 인도인들 중 무려 3000여명이 서울 ‘평화의 전당’에 모여 그를 열렬히 환영했다. 그가 나타나자 마치 수퍼스타가 등장한 것처럼 10여분간 “제이(만세) 모디”를 외쳐댔고 40여분간 연설을 마치고 떠난 뒤에도 “제이 모디” 함성은 한동안 그칠 줄 몰랐다.

환영 모임에 나온 한 인도인은 모디 총리에 대한 폭발적인 인기 연유를 간명하게 설명했다. “모디 이전 지도자들이 정치인이었다면, 그는 사람이다.”며 “사람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해주는 광경을 오랫동안 보지 못한 탓”이라고 했다.

모디 총리의 사람 됨됨이는 한국 체류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10명의 우리 대기업 최고경영자들을 만나 경제외교를 벌였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만나서는 “인도에서 완성차량 판매량 2위, 수출량 1위 업체인 정 회장을 만나게 돼 영광”이라며 몸을 낮췄다. 인구 12억5000만 세계 2위 대국의 국가원수가 한 기업인에게 “만나게 돼 영광”이라며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모디는 1주일 전인 14일 중국을 방문했을 땐 중국 지도자들에게 가시돋힌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 지도자들과의 회담도중 국경분쟁과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중국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직설적으로 몰아붙였다.

모디 총리는 1950년 인도 북서부 구자라트 주에서 4개 카스트(계급)중 피지배 계급인 ‘간치(상인에서 유래)로 태어났다. 그는 소년 시절 버스터미널에서 전통 차와 빵을 팔았다. 대학에서 정치학 학사·석사 학위를 마쳤고 2001년 구자라트 주 총리로 당선되었다. 그는 네루·간디 가문의 인도식 사회주의 노선을 거부하고 중도우파의 친기업으로 돌아서서 자본주의 경쟁의식을 불어넣어 주었다. 2014년 인도국민당(BJP)을 이끌고 인도 총리로 당선되었다.

그는 “기업에 레드 테이프(관료들이 행정서류를 묶는 빨간 끈) 대신 레드 카펫(환영하기 위한 붉은 양탄자)을 선물해야 한다.”며 경제성장을 표어로 내세워 “모디 호황”을 일궈냈다. 구자라트 주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을 13%로 끌어올렸다. 인도 성장률 7%의 두 배에 달한다. 17세 때 결혼했으나 3개월 후부터 독신으로 살며 청렴하기로 유명하다.

그가 구자라트 주 총리에 취임한 다음 해인 2002년 이슬람 신도 1000여 명이 극우 힌두교도들에 의해 집단 학살당했다. 그는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힌두교도로서 이슬람 학살을 방관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끝내 사과하기를 거부했다. 도리어 그는 작년 총선에서 이슬람 사원이 있던 자리에 힌두교 사원을 짓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는 등 흔들림없는 소신과 배짱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그는 멋진 의상·모자·선글래스 등으로 치장, “영화배우 뺨칠 정도로 멋지다”는 평을 듣는다. “모디 룩(modi look:모디 패션) 돌풍을 일으켰다.

모디는 우리나라 기업인 앞에서는 만나 뵈어 “영광”이라고 몸을 낮추면서도 중국 시진핑에게는 인·중관계 개선을 위해 재고하라고 들이댔다. 모디의 그런 소신과 당찬 모습을 보며 시진핑이 두려워 미국의 사드(고고도 마사일 방어체계) 한국 내 배치 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공무원연금개혁도 소신껏 밀어붙이지 못하는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너무 가벼워 보인다. 그러면서도 우리 정치인들은 보통 사람들에겐 몸을 낮추기 보다는 목에 힘을 주며 군림하려 든다. 사람 됨됨이 덜 된 탓이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에게 모디처럼 “정치인이기 전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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