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 안이 ‘메르스’ 공포에 떨고 있다. 보건당국의 전망과 정부 낙관이 모두 빗나가자 정부 대책의 불신이 깊어지고 국민 강박증이 더욱 확산되는 양상이다. ‘대학병원 폐쇄’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고 있으니 ‘무능’을 말해도 할 말 없게 됐고, 위기관리 부재라는 들끓는 여론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태다. 물론 시일 지나면 숙 지긴 하겠지만 허망해하는 국민감정은 어쩔 수 없다.

이 바람에 모든 나라 일이 ‘올스톱’ 됐다는 느낌마저 든다. 밀린 나라 일은 태산 같은데 무슨 놈의 국가 운수가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마치 해마다 신이 우리에게 시련을 주기로 작정한 듯 해 보인다. ‘범정부 감염병 R&D 컨트롤타워’는 새정부 출범이후 회의조차 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예산권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나 미래창조과학부는 회의에도 나오지 않아 맹탕 회의로 끝나버렸다는 언론보도도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주 초에도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과도한 불안심리 확산을 차단해 정상적 경제활동을 조속히 복원 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민의 일상생활과 기업의 경영활동이 하루속히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연히 그래야 할 조급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그 아니라도 국가 모든 면에서 전례 없이 어려운 상황이다. 극심한 가뭄 피해까지 겹치고 있는 나라 형편이다. 괴질에 유례없는 가뭄현상, 옛날 같으면 임금이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고 하늘에 제사라도 지내야 할 판이다. 이 말은 현대에서도 악운이 겹치면 민심이 통치권자를 탓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게 민심의 근본이다.
아마 지금의 대통령 심정이 처절할 것이라고 본다. 과거 군사 독재 때는 정권을 보위하는 게 곧 자기를 지키는 길이라고 여겨서 주군을 중심으로 민심 잡기에 총력을 다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민정부 시절에도 컨트롤타워를 중심으로 관계 각료나 주류 측 국회 참모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래야 주군에게 밉보이지 않고 지역구 민심을 놓치지 않아 그들 정치적 장래를 기약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대 변절은 배신자로 몰려 등짝에 기회주의자 딱지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럼 현재 박 대통령을 위하고 따른다는 소위 ‘친박계’의 정체는 어떤가. 물론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정치생명을 같이 하겠다는 크고 작은 측근 세력들이 포진해 있는 건 사실이다. 말하자면 충성도 깊은 친위부대가 없지는 않다는 말이다. 그런 현상마저 부인하자는 건 아니지만 옛 계보정치에 비해 그 결속력과 전투력이 아주 형편없어 보이는 건 누구 눈에나 마찬가지다.

왜일까, 물을 필요가 없지 싶다. 친박이라는 사람들 태반 넘게는 금뱃지를 목적으로 2000년대 대선고지를 향하는 박근혜 인기의 치마폭에 싸여 들어간 인맥들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면 이제 또 이 사람들은 다음은 누구를 따라야 하는지가 목전의 현안일 것이다. 이 정부의 성공 여부가 자신들의 정치생명을 좌우하는 심판대가 될 것이라는 생각보다 차기 줄서기를 운명의 여신으로 여기는 터다.

국회의원 선거는 벌써 내년 4월로 다가와 있다. 아무리 새누리당이 ‘오픈프라이머리’ 상향식 공천을 공언하고 있으나 언제나 힘센자의 입김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치도록 돼있는 법이다. 이렇게 여당의 분열이 가속화 되는 마당에 대통령이 발을 동동 굴러서 해결될 일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더 기막힌 건 이번 ‘메르스’ 불안심리 마저 작년 세월호 때와 꼭 같은 수법으로 환자 대부분이 사망했다는 등, 공포를 부추기는 세력이 반정부 작전을 개시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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