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들은 국가 사태가 급할 때는 대통령을 찾으면서도 대통령을 깔아뭉개는 습성을 지녔다. 이 옳지 못한 습성은 5~6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위기를 통해서도 드러났다. 메르스 감염자가 확산되자 야권은 물론 언론들도 사태 수습을 위해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메르스 사망자가 늘어나자 박 대통령이 메르스 확산 차단을 위해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다며 일제히 대통령 때리기에 나섰다. 한 조간신문 칼럼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대통령이 사과도 않고…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며 흥분했다. 너무 감정적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메르스 사태를 조사하기 위해 내한한 유엔 산하 세계보건기구(WHO) 합동조사반은 14일 다른 진단을 내렸다. 한국 정부의 “초기 대응에 어려움”이 있었음을 지적하면서도 한국에서 빠르게 확산된 주요 이유로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한국 의료진이 초기 메르스에 익숙하지 않아 메르스를 의심하지 못한 사실, 둘째 병원내의 붐비는 응급실과 다인실(多人室) 구조, 셋째 한국 특유의 의료쇼핑 습성(여러 병원 찾아다니며 진찰받기), 넷째 친인척의 문병 문화 등을 들었다. 메르스 확산은 대통령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주로 메르스를 처음 접하는 의료진의 기술적인 미숙과 환자의 의료 쇼핑 등에 기인했다는 지적이었다.
미국에서도 작년 가을 에볼라 전염병 감염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다. 여기에 여론은 정부의 ‘초기 대응이 너무 안이하고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한 냉철한 처신을 성공적으로 잘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일부 국민들과 언론은 한결같이 박 대통령이 메르스 확산을 막지 못했고 무능을 드러냈다며 메르스와 관련된 모든 책임을 그에게 떠넘겼다. 앞서 인용한 대로 WHO의 메르스 확산 원인 분석 결과가 대통령보다는 의료진의 미숙과 의료 쇼핑 등에 연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우리 국민들과 언론은 연일 대통령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대통령의 권위와 신뢰를 망가트렸다. 미국처럼 대통령이 ‘대중을 안심시키기 위한 냉철한 처신을 성공적으로 잘 이어가고 있다.’는 식의 신뢰 표출은 찾아볼 수 없다.
미국인들은 여야를 초월해 국가 최고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의 권위를 한껏 존중해준다.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이 국회에서 시정연설을 위해 입장하고 퇴장할 땐 여야 당적을 떠나 일제히 기립박수로 맞이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11월 국회에서 처음 국정연설을 마쳤을 때 야당 의원들은 한 사람만 빼고 모두 기립하지 않았다. 작년 새정치연의 장하나 의원은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규명에 나서지 않는다며 “당신은 국가의 원수”라고 저주했다.
우리 정치권과 언론은 국가가 불의의 재난에 직면하게 될 땐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 떠넘기면서도 대통령이 앞장서서 해결하라고 아우성친다. 세월호 참사 때도, 오늘의 메르스 공포에서도 그렇다. 그로 인해 권위가 실추될 대로 실추된 대통령의 리더십(지도력)은 제대로 먹혀들어갈 수 없다. 권투선수의 두 팔을 묶어놓고 링 위에 올라가 싸워 이기라는 주문과 다르지 않다. 감정적인 국민들과 야당의 대통령 리더십 죽이기이다.
물론 대통령의 잘못에 대해선 혹독하게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온 국민이 대통령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대처할 수 있도록 대통령의 권위도 세워주어야 한다. 북한 김정은과 같이 우상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국가 비상시 국민들이 대통령을 믿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대통령에게 책임만 전가할 게 아니라 함께 손잡고 나아 갈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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