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김기춘 첫 비서실장이 물러나고 현직 국정원장이던 이병기 실장이 임명되자 ‘새정연’ 문재인 대표는 “인사의 기본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탄식했다. 김영록 새정연 수석대변인도 “최악의 회전문인사이자 민의를 배제한 독선적 인사”로 표현했다. 문 대표는 인사의 기본까지 완전 무너져 참담하다고까지 했다.
그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현실인식이 이정도 밖에 안 되는지 참담하고 암울하다”며 “국정운영의 동력도 민심도 모두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재인 대표가 이런 경고를 했던 지난 1월달은 그가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가 되기 위해 대표 최고위원 후보로 나섰을 때다. 새정연의 ‘친노’ ‘비노’ 간 싸움이 절정을 이룰 때 그의 이 탕평인사 주장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어쨌든 그는 무난히 당대표에 당선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표 당선 후의 ‘새정연’ 그림은 전혀 딴판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직 인선을 둘러싼 새정연의 내홍이 친노와 비노의 전면전으로 치닫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진짜로 암울한 문재인 대표의 현실인식으로 해서 ‘비노’의 당무 거부 사태가 빚어지고 중진급 인사들의 탈당사태가 일어나면서 신당, 분당론의 야권 재편론이 더욱 힘을 받는다. 이제 새정치연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환생해 와도 안 된다는 자조적 분위기에 빠졌다.
문 대표가 최재성 사무총장 임명을 강행해 친노세력이 혁신을 명분으로 20대 총선 공천에서 ‘비노’를 대거 목 칠 것이라는 우려를 종식시키지 못하는 한, 당 혁신위원회가 외부인사 3분의2 이상으로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를 구성키로 한 것 역시 의도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분위기다. 세월호 참사 등 정부여당이 완전 불리한 여건 속에 치러진 지난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완패했던 악몽을 곱씹는 상황이 분당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렇게 혁신의 첫 과제로 내세운 ‘계파청산’ 구호는 출항도 못한 채 닻을 내린 꼴이다. 서로를 적대시 하면서 공멸이 무서워 가지도, 오지도 못하는 모양새가 언제까지 유지될지 모르겠다. 이처럼 계파 이익에만 몰두하는 정치, 민생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정치, 몸은 국회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 마음은 이미 선거판에 가있는 의원들, 이런 국회가 국민 혈세 갉아먹는 일에서는 여야의 손발이 척척 맞았다.
살모사가 허물을 벗었다고 해서 살모사가 아닐 수 없듯이 우리 정치의 한계를 보는 것 같아 진실로 국민이 참담한 지경이다. 문재인 대표의 사무총장 임명 강행에 반대해 최고위원회 참석을 거부하다가 20여일 만에 복귀한 유승희 최고위원은 “그동안 문 대표가 지나치게 전시성 행사에 치중했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의 이용득 최고위원은 “역시 우리당은 변함이 없다. 제도와 생각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며 “여러 가지 혁신안이 나와도 바람 잘 날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했다.
지난 야당 역사를 더듬어 보면 이 최고위원의 주장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이해가 된다. 문재인 대표가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최고위원 회의에서 “혁신의 목적은 우리당을 내년 총선에서 이기는 정당, 그리하여 종국적으로 집권할 수 있는 정당으로 만드는 것으로, 그 목적을 위해 우리당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밝힌 강한 발언이 공허롭게만 들리는 이유를 문 대표가 좀 정확하게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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