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는 일상적인 책무에서 벗어나 일정 기간 쉬면서 스포츠나 오락 등을 통해 기분을 전환하고 원기를 회복하는 데 있다. 바삐 쫓기던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생긴다.
박근혜 대통령과 미국·유럽 선진국 지도자들의 휴가 양태는 다르다. 박 대통령은 대체로 휴가를 떠나지 않고 청와대 관저에 머문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구미(驅美) 국가 원수들은 훌훌 털고 밖으로 나가 활력 넘치는 스포츠나 오락을 즐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첫 해인 2013년 휴가를 고작 1박2일 경남 거제도 저도로 가는데 그쳤다. 그는 작년 4월 세월호 사태를 이유로 그 해 7-8월 휴가를 청와대 관저에서 보냈다. 그는 그 때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남아 있는 많은 일들’ 때문에 ‘휴가를 떠나기에는 마음에 여유로움이 찾아들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올 여름에도 7월 27일부터 5일간 휴가에 들어갔으나 역시 청와대 관저에 머물렀다. 청와대 측은 올 여름 휴가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공식적으로 종식되지 않는 점 등을 고려, ‘조용한 휴가’를 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우리 국민 모두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는 데서 휴가는 ‘마음에 여유’가 없더라도 떠나야 한다. 대통령이 휴가에 나서지 않으면 고위 공직자들은 휴가 에 부담을 느끼게 된다. 대통령은 휴가 철 국민들에게 즐겁고 유쾌한 휴가 분위기 진작을 위해서도 휴가에 나서는 게 좋다. 그는 7월13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내수 진작을 위해 “정부 각 부처가 국내 여행 가기 운동을 솔선수범”하라고 당부하였다. 대통령 자신은 ‘여행 가기’를 ‘솔선수범’하지 않았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작년 8월9일 백악관에서 이라크 공습을 명령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는 공습 명령 직후 매사추세츠 주의 휴양지 마서스 비니어드 섬으로 2주일간 휴가를 떠났다. 백악관 측은 “대통령이 통신장비를 갖추고 다니며 국가안보 보좌관 등이 수행하기 때문에 군 최고 사령관으로서 요구되는 결정을 얼마든지 내릴 수 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도 통신장비와 보좌관이 휴가 때 수행하므로 대통령으로서 “요구되는 결정을 얼마든지 내릴 수 있는”데도 청와대를 떠나지 못했다. 내가 없으면 안된다는 강박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구미 지도자 만큼 아랫 사람 믿고 권한을 위임하는 데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휴가를 빠짐없이 챙긴다. 그는 작년 1월6일 겨울 휴가 때 세계적 스키장인 스위스의 생 모리츠로 떠나 스키를 즐겼다. 스키 사고로 왼쪽 골반에 금이 가 3주간 누워 있어야 했다. 목발을 집고 출근, 각료회의를 주재하거나 외국 지도자들을 접견했다. 그는 휴가 때가 되면 험준한 알프스 산을 오르거나 스키를 타곤 했다. 박 대통령 보다 훨씬 더 바쁜 ‘철의 여인’ 메르켈은 ‘마음에 여유’가 없다며 관저에 머물지 않았다. 휴가를 즐기면서도 세계를 좌지우지하며 장기 집권도 하고 여론 지지도도 높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도 긴축재정으로 형편이 몹시 어려웠던 2011년 4월 휴가를 떠났다. 그는 저가 항공사의 이코노미 티켓을 직접 구입, 저렴한 3성급 호텔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는 비록 이코노미 석을 타고 3성급 호텔에 투숙해도 휴가는 빼놓지 않았다.
우리 경제는 세계 15대 규모에 1인당 국민총소득(GNI) 2만8180달러에 이르렀다.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었고 레포츠(오락+스포츠)를 즐긴다. 휴가는 묶여있던 일에서 잠시 벗어나 기분을 전환하고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재충전의 황금시간이다. 박 대통령도 선진국 정상들처럼 ‘마음에 여유’ 따지지 말고 휴가를 떠났으면 한다.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골반에 금이 갈 걸 무릅쓰고라도 말이다.

■ 본면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