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60대 노인 살인사건’ 4년만에 해결

2007년 3월 2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소재 한 여관에서 60대 남자 노인이 사망한 채 발견됐었다. 발견 당시 이 노인은 전선에 의해 양손이 등 뒤로 묶여 있었고, 하의는 모두 벗겨지고 성폭행을 당한 모습이었다. 당시 경찰은 수사 전담반을 편성해 2년여 가량 사건을 수사해 왔으나 용의자를 밝혀내지 못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해운대 60대 노인 살인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는 듯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9개월이나 흐른 지난 11월 24일, 부산 해운대경찰서는 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김모(26)씨를 붙잡아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경찰이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떻게 용의자를 잡을 수 있었을까.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본다.

11월 23일 12시 30분, 서울 영등포역 앞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행인으로 위장한 부산 해운대 경찰서 소속 형사 몇 명이 조심스레 사방을 살피며 한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때 길 건너편에서 한 노숙자가 어슬렁거리며 길을 건너오고 있었다. 형사들이 재빨리 이 남자를 둘러쌌고 노숙자는 포기한 듯 순순히 수갑을 찼다. ‘해운대 60대 노인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 김 씨가 체포되는 순간이었다. 약 2주간 끈질기게 이어진 경찰의 소재추적 및 탐문수사가 결실을 맺은 것이었다.


현장에 떨어진 담배꽁초 하나가 유일한 단서

해운대 경찰서는 2007년 2월 23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 소재 모 여관 6호실에서 장기투숙객 이모(68)씨의 목을 졸라 사망케 한 혐의로 김씨를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생활보호대상자로서 구청의 보조금을 받아 여관에서 혼자 살던 이씨는 사건 발생 8일 뒤인 3월 2일, 여관 주인에 의해 발견됐다.

사건당시 경찰은 살인 현장에 범인의 흔적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방 안에 버려진 담배꽁초 등에서 용의자의 것으로 보이는 DNA 시료를 채취해 보관해 왔을 뿐이다. 당시로써는 바로 그 DNA가 3년 9개월이 지난 후에 사건을 해결 할 수 있으리라고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경찰이 김씨를 용의자로 지목할 수 있었던 것은 올해 7월 ‘DNA 신원확인정보의 이용과 보호에 관한 법률’, 이른바 ‘DNA 정보법’이 국회에서 통과됐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 법이 통과된지 꼭 한 달여 만에, 강도상해죄로 형을 살고 출소한 김씨의 DNA를 출소직전 채취할 수 있었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이 DNA가 당시 사건현장의 DNA시료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통보 받고 검거에 나서게 됐던 것이다.

경찰은 만기출소 당시 남긴 핸드폰 번호를 단서 삼아 서울 영등포 일대에서 수색했으며, 끈질긴 탐문수사 끝에 노숙생활하고 있는 김씨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성 충동을 못 이겨 노인에게 달려들어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노숙생활을 하며 알게 된 피해자 이씨와 종종 함께 술을 마시며 친해진 사이였다. 사건 당일 역시 이 둘은 함께 술을 마신 후 이씨가 날도 추우니 자신의 여관방에서 함께 자자고 김씨에게 청해 여관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여관방에서도 계속 술을 마셨다.

그러다 김씨는 방안에 놓인 포르노 잡지를 보았고, 순간 욕정이 일어난 이씨에게 성관계를 요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이씨의 반항과 거친 욕설이었다. 이에 화난 김씨는 전선줄로 이씨의 양손을 뒤로 결박한 후 성관계를 다시 시도했으나, 이씨의 거친 반항에 실패했다. 그러다 결국 충동적으로 이씨의 목을 졸라 질식 사망케 했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은 이 사건의 엽기적인 죄질을 감안해 김씨를 구속한 후 그 행적을 바탕으로 다른 여죄에 관해 집중 수사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용의자 김씨가 진술한 내용 외에 다른 범행동기가 있었는지 다양한 방면으로 수사 중에 있다. 특히 피해자 이씨가 당시 생활보호대상자로 구청에서 보조금을 받아 여관에서 혼자 살아온 점으로 미뤄 금품을 노린 범행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집중 수사하고 있다.


DNA 정보법, 향후 장기미제 사건의 해결의 열쇠 될듯

한편 이번 사건 해결을 계기로 앞으로 DNA를 이용해 미제사건이 줄이어 해결될 가능성을 열었다는 것이 경찰 관계자의 전망이다. 법안 통과 당시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켰던 DNA정보법이 장기미제사건 해결의 실질적인 도움이 되면서 향후 논란이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DNA정보법은 1995년 영국을 시작으로 미국·독일·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 등 선진국이 10여년 전부터 도입해 활용해 온 제도로 우리나라는 올해 7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정부는 혈액·머리카락 등을 통해 살인, 강도, 강간·추행, 약취·유인, 체포·감금, 상습 폭력, 조직 폭력, 마약, 청소년 대상 성범죄, 방화, 군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유전자 정보를 모아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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