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자 성폭행 소송 전말

지난달 29일, 대전지법은 대전에서 발생한 지적 장애를 앓는 여중생을 성폭행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B(17)군 등 4명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대전 지적장애여성 성폭생사건 엄정수사, 처벌촉구 공동대책위는 지난 2일 대전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전의 모든 고등학생이 이번 판결을 지켜보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왜 이들이 그토록 이 사건에 분노했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 사건은 소설가 공지영씨가 지난달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 일파만파 퍼지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적 장애인 소녀를 16명의 고등학생이 화장실에서 집단 성폭행 했는데 전원 불구속이랍니다. 이유는 ‘적극적으로 반항하지 않았다’… 정말 이게 제정신으로 하는 짓일까요? 이 나라에서 딸 키울 수 있나요?”라는 짧은 글이지만 수만의 네티즌들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가해 학생 16명이 모두 불구속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급기야 같은 달 19일 열린 대전지방경찰청 국정감사에서는 ‘경찰의 엄격한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기류가 형성됐다. 당시 민주당 장세환 의원은 “솜방망이보다 더 못한 처벌이다”며 “오늘로써 끝날 문제가 아니고 수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장애인 인권 외면돼도 좋은가

지적장애를 갖고 있는 여중생 A(14)양은 지난 5월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B(17)군과 만났다. 이후 B군이 A양을 대전 서구 둔산동 소재 건물의 남자화장실로 유인해 집단 성폭행했다. 이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B군은 A양의 연락처를 주변 친구들에게 알려줬고 이후 B군을 포함한 고등학생 16명이 A양을 수십 차례 성폭행했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A양을 끊임없이 불러내 상가 화장실이나 아파트 옥상, 노래방 화장실 등 구석지고 음침한 곳으로 끌고 다니며 성폭행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경찰청이 최영희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A양 집단 성폭행 사건은 지난 5월 25일에서 6월 20일까지 약 25일 사이에 무려 13일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특히 6월 12일에서 20일까지는 단 하루만 빼놓고 피해자는 매일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피해 여중생에게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상처를 남긴 범죄였지만 당시 사건을 담당한 대전지방경찰청 성폭력특별수사대는 피의자 16명에 대해 검찰에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

사건발생 이후 A양은 장기간에 걸쳐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전학을 갔으나 정상적인 수업은 받지 못한 채 학교 보건실에서 오전, 오후를 보내고 있다. 16명의 가해 학생들이 멀쩡하게 학교를 잘 다니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가해자 불구속 수사 이유와 관련 일부 언론은 “경찰관계자에 따르면 피해자가 강하게 저항하지 않아 불구속 했다”고 보도했으나 본지 조사 결과 사실과 다르다.


‘처벌 원치 않는다’ 합의 했다며 불구속

[일요서울]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경찰은 사건 발생 이후 피해자의 지적장애 정도를 정확히 알기 위해 서울 소재 아동센터 등 전문가에게 의뢰하여 “피해자가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정신연령을 가지고 있으며, 성적 침해 행위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고, 성폭력과 친밀감을 구분하기 어려우며 피해자 나름대로 성폭력에 저항한 것으로 보인다”는 감정결과를 받아 이를 수사에 반영했다고 한다. 따라서 피의자 16명 전원 범죄가 인정된다고 판단, 몇몇 피의자를 구속하기 위해 수사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이 피의자들 일부에 대해 합의를 하고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내용의 탄원서 등을 제출하면서 이 사건을 초기부터 전담 지휘한 검사의 지휘에 의해 불구속 송치하게 됐다”는 것이 수사를 담당했던 경찰의 주장이다.

한편 국정감사 이후 ‘솜방망이 처벌이 외압에 따른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정도로 궁지에 몰렸던 검찰은 지난 11월 24일 검찰시민위원회를 열어 ‘시민의견과 검찰판단’이라는 구색을 갖춰 구속영장을 법원에 다시 청구했다. 그러나 같은달 29일, 법원은 다시 “피해자와 피의자들이 합의했고, 피의자들이 반성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법원 관계자는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고, 영장 발부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상황에서 일부 시민의 법 감정만을 고려해 영장을 발부할 수 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입장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번 ‘지적장애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과 관련하여 누리꾼들과 시민단체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불구속, 구속 수사여부를 떠나 여성 장애인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너무 허술하다는 것이다.


장애여성 성폭행 수사의 현주소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전지부 한민승 간사는 “성폭행 피해를 입고 절망한 장애 여성들이 법 조항 탓에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사건을 기회 삼아 관련 법 개정안 상정을 촉구해야한다”고 밝혔다.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6조는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해 여자를 간음하거나 추행한 사람을 강간이나 강제추행의 죄로 처벌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항거불능’의 해석이다. 일선 수사기관에서는 항거불능을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국한해 엄격하게 해석한다. 이처럼 항거불능의 범위를 좁게 보다보니, 장애를 갖고 있는 여성에 대한 항거불능이 인정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려워 가해자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최영희 국회 여성가족위원장은 장애인 대상 성폭행에 대해 ‘항거불능’요건을 삭제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이지영 기자] sky1377@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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