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틈 타 꼬리 자르고 숨나

이명박 대통령의 40년 지기인 천신일 세중나모회장이 지난 1일과 2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동열)는 지난 3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천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로 했다. 천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인 임천공업 이수우(구속기소) 대표에게 은행대출과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고 도움을 주는 대가로 40억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동안 검찰이 천 회장에 대한 수사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지난 8월 임천공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이면서도 천 회장의 도피성 출국에는 전혀 제재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의혹’은 민주당 쪽에서 영부인 김윤옥 여사를 로비의 ‘몸통’으로 지적한 바 있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남 사장 연임 로비 의혹’으로까지 수사를 확대하지 않고 개인 비리로 사실상 수사가 마무리 될 가능성이 커 자칫 후폭풍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천 회장은 검찰의 임천공업 수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무렵인 8월 19일 출국했다. 사실상 해외 도피로 일본과 미국 등지를 오가며 검찰의 세 차례에 걸친 소환 통보에도 불응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잇단 불응에 체포영장 청구가 검토되기도 했다.


연평도 사태로 어수선한 가운데 귀국

천 회장 관련 의혹은 민주당 강기정 의원의 ‘김윤옥 몸통설’ 발언으로 절정에 달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지만 최근 연평도 사태로 정국이 온통 포격전으로 어수선해 진 이후인 지난달 30일 슬며시 귀국을 했다.

천 회장은 귀국하자마자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휠체어를 타고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으로 직행해 VIP 병동에 입원했다. 검찰은 그동안 소환통보에도 버티기로 일관해 온 천 회장의 요구에 병원행도 허락하고 조사 일정도 하루 늦춰주는 배려를 보여줬다. 그러나 천 회장의 건강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통상적인 수사관행에서 벗어난 조치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도피성 체류를 하다 귀국한 피의자는 현장에서 체포영장을 집행하고, 귀국 직후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해 신병도 확보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검찰 출두 시에도 천 회장은 지팡이를 짚고 출두했지만 여론의 시선은 여전히 따갑다.


검, 천 회장 개인비리 입증 자신

검찰은 천 회장을 두차례나 소환 관련 의혹을 모두 밝혀 내겠다고 공언해 왔다. 그러나 영장 내용을 보면 몇가지 의혹이 남는것도 사실이다. 천 회장 개인 비리는 규명될 것으로 보이나 권력형 비리는 의혹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임천공업 이 대표로부터 받은 정확한 액수 파악과 세무조사 무마로비 의혹, 금융권 대출 로비 의혹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검찰은 천 회장 개인비리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이 대표의 구체적인 진술도 확보한 상태인데다 혐의를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물증도 상당수 마련해 둔 상태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대표와 운전기사에게서 2008년께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천 회장 자택으로 찾아가 수차례에 걸쳐 26억 원을 건넸다는 진술을 확보했으며 돈을 건넨 시기 전후에 임천공업의 경리 직원이 회사 돈을 인출한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2006년 임천공업 계열사의 산업은행 대출금 130여억 원을 출자전환 할 수 있게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청탁을 했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당시 임천공업은 이 대출금을 출자전환해 부도를 면했다.

하지만 천 회장은 검찰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으며 “대가성 없이 기부금으로 받은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적극적으로 혐의를 부인했다.


남 사장 연임로비 의혹은 어디로

그러나 사실상 문제의 핵은 ‘남상태 사장 연임 로비 의혹’이다.

이귀남 법무부장관, 김준규 검찰청장은 국회 대정부질문과 국정감사에서 “남상태 사장 연임 로비 의혹 사건도 전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남 사장 연임로비 의혹 수사는 지난 8월) 임천 공업을 압수수색할 때부터 시작됐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남 사장 연임 로비의혹 수사는 별다른 진전 없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민주당 강기정 의원은 지난 1일 국회 대정부질문 당시 “남 사장이 지난해 1월 김윤옥 여사를 만나 로비 청탁을 했으며, 연임 로비를 하면서 1000달러짜리 아멕스(아메리칸익스프레스)수표 다발을 사례금 명목으로 건넸다”며 ‘김윤옥 몸통설’을 제기해 상당한 파문을 야기했다. 권력 실세와 대통령 측근까지 연루된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강 의원은 “지난 7월 로비의혹과 관련해 대우조선해양 압수수색영장까지 작성했다가 외압에 의해 폐기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귀남 장관은 “영장 반려 사실을 국정감사에서 알았다”며 영장 반려 사실을 시인했다.

이 같은 의혹들을 따라가다 보면, 천 회장의 의혹은 사실상 권력형 비리 의혹에 가깝다. 대출 로비청탁, 금품 수수, 정권 실세 연루 의혹 등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강 의원의 발언 역시 천 회장의 남 사장 연임 로비 의혹과 연결된 것으로 의혹 해소가 필요하다. 이미 ‘박연차 게이트’ 때부터 천 회장이 남 사장 연임을 위해 정권실세에게 로비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왔었다. 때문에 이번 검찰 조사가 천 회장과 이 대표 간 개인 비리에 국한된다면 ‘꼬리 자르기’식 수사라는 의혹을 해소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남 사장은 “서울대 병원은 물론 어린 시절 이후 어디에서도 영부인을 만난 적이 없으며, 아내는 일생 동안 단 한 번도 청와대에 들어가 본 일이 없다”며 강 의원이 제기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한편 천 회장은 박연차 게이트에서 탈세 등의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번 사건으로 또다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게 되면 실형선고가 불가피해 보인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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