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금대란 우려…시장 혼란 불가피

[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 발표 후 시장 혼란이 예측되고 있다. 금융감독위원회는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으로 주택담보대출 심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1년 전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대출규제를 풀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정이다. 이에 따라 시중 은행들도 거치식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때문에 2~3년 뒤 주택시장에 불어닥칠 잔금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또한 정부가 거치식 대출에 대한 책임을 은행에 떠넘겼다는 지적도 나온다.

1년 전과 정반대 결정…엇박자 정책 지적
전월세난 심화·내 집 마련 더 어려워지나

정부는 가계부채 관리 협의체(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금융감독원·한국은행 등)가 마련한 ‘가계부채 종합 관리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롭게 제시된 가계부채 종합 관리 방안은 분할상환을 유도하는 방식을 전제로 한다.

5년 이상의 주택마련용 장기 대출과 주택가격·소득에 비해 대출금액이 큰 신규 대출의 경우 분할상환 방식으로 취급하고, 거치기간은 통상 3∼5년에서 1년 이내로 유도한다.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건 등도 분할상환으로 전환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주택 담보 대출은 처음부터 원금과 이자 모두 나눠서 갚아야 한다. 기존에는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렸을 때, 이자만 내다가 만기가 왔을 때 원리금을 갚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자와 원금을 바로 함께 갚아야 하는 것이다.

또 대출자의 상환능력 심사가 강화된다. 주택담보대출 심사 방식이 담보 위주에서 대출자의 상환능력 위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소득 범위 내에서 대출 취급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계산이 깔려 있는 방안이다.

때문에 앞으로는  대출자의 실제 소득을 입증할 수 있는 정부기관의 증빙자료로 상환능력을 확인한다. 신용카드 사용액을 신고 소득 자료로 이용할 경우 은행 내부 심사 단계가 까다로워진다. 또 최저생계비를 소득으로 활용하는 대출 관행도 사라진다.

금융감독위원회(이하 금융위)는 해당 내용을 반영해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중 분할상환 및 고정금리 비중 목표치를 각각 올해 35%, 2017년 45%로 높였다. 기존 분할상환 및 고정금리 비중 목표치는 2015년 25%, 2017년 40%였다. 다만 고정금리는 40%를 유지한다.

정부는 이 같은 방침을 발표하면서 시중은행들에게 각 은행 사정에 맞는 세부지침을 만들고 자율적으로 적용하라고 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들은 최근 은행연합회와 태스크포스(TF)를 꾸리고 세부 지침 마련에 나섰다. 자율적 적용이 가능하지만 사실상 거치식 대출 상품을 더 이상 취급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원금은 놔두고 이자만 갚는 ‘장기 거치식 주택담보대출’의 퇴출인 셈이다.

문제는 이 정책의 내용이 1년 전 정부의 정책과 정반대의 내용이라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이유로 대출규제를 완화했다.

양극화 부르나

당시 정부는 “빚을 내 집을 사라”고 유도하기 위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시켰다. 규제를 완화하면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엇박자 정책이 나온 셈이다.

금융위가 국회 정무위원회 박병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일시상환대출은 39조1000억 원이다. 거치기간이 끝나 분할상환이 시작되는 거치식 대출은 27조4000억 원에 달한다. 내후년인 2017년에 만기되는 대출과 거치식 대출은 44조3000억 원에 이른다.

때문에 정부의 새 방침으로 인한 혼란을 우려하는 시선이 많다.

우선 바뀐 대출 방식이 적용되는 2016년부터 주택시장 매매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그동안 주택매매를 주도했던 이들이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30대였기 때문에 주택담보대출이 강화되면 주택거래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 기존에 빚을 내서 집을 샀던 30~40대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거치기간을 연장하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과 혼란이 커지고 있다. 전세난에 떠밀려 주택을 구입한 경우 원리금 상환이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대다수가 이자만 내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증가할 전망이다. 그동안은 아파트 전세난과 월세에 지친 이들이 연립·다세대주택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최근 부동산시장에서 연립·다세대주택의 인기가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원금상환과 이자를 함께 부담하게 되면 이마저도 쉽지 않다.

이로 인해 전·월세난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줄어든 매매수요에 따라 전세가격은 더욱 높아질 것이고, 전세매물을 찾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2~3년 뒤 신규 분양 아파트 잔금대란이 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원하는 만큼 대출금을 받지 못한 입주자들로 인해 잔금대란이란 부메랑 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신규 분양 아파트의 경우 건설사가 건설사 신용에 따른 집단대출을 통해 중도금 대출을 지원한다. 집단대출로 이뤄지는 중도금 대출은 일부 무이자대출을 제외하면 거치식 일시상환 방식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2~3년 후 입주 시기가 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최종 잔금은 건설사에서 계약자로 대출 명의를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아파트 거래량 감소로 인한 집값 하락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건설사들의 주가도 영향을 받고 있다. 정부의 정책 발표가 있던 날 현대건설과 대림산업 등은 일제히 주가가 하락했다.

현대건설은 전날 대비 5.85% 하락했으며, 대림산업은 3.61% 하락했다. 이외에 코오롱글로벌과 GS건설, 현대산업개발은 각각 4.65%, 4.35%, 7.55% 하락했다.

다만 신규 분양주택에 대한 수요는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집단대출 형태로 분양시장의 수요자 증가를 예상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규 분양주택의 수요가 늘어나도 문제는 존재한다. 신규분양 시장만 살고 기존 주택거래와 전·월세 시장이 위축되는 양극화 현상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seun897@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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